2011년 내전 발발 후 ‘시아파 맹주’ 이란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는 시리아의 파이살 메크다드 외교장관이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다. 시리아 정부 관계자의 사우디 방문은 내전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이란과 사우디가 국교를 정상화한 후 양국의 해빙 무드가 가속화하면서 나머지 시아파 국가와 사우디의 관계 또한 화해 모드로 접어들었다. 사우디가 대표적 반미 국가인 이란, 시리아 등과 협력할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 관계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메크다드 장관과 이란 대표단은 12일 사우디 2대 도시 지다를 찾아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을 만났다. 두 장관은 시리아와 사우디의 영사 업무 재개, 항공편 정상화,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 논의 등에 합의했다. 사우디 측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도 초청했다. 현직 이란 대통령이 사우디 영토를 방문한 것은 2012년이 마지막이다.
사우디가 주축인 ‘아랍연맹’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내전 발발 후 반대파에게 금지된 화학무기 공격을 가하는 등 전쟁 범죄를 자행했다며 시리아를 연맹에서 사실상 퇴출시켰다. 이번 양국의 관계 개선으로 아랍연맹이 다음 달 19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연맹 정상회의에 아사드 대통령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미국의 우방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셰일가스 혁명’ 이후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양국은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인권’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전부터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면서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8년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숨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배후에서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함마드 왕세자가 자신의 외교적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란과의 국교 정상화,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 등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우디가 이란과 국교 정상화를 단행할 때 미국 아닌 중국을 중재자로 택한 것,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고물가에 시달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증산 요구를 줄곧 거절한 것 등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러시아를 비롯한 비(非)OPEC 산유국의 연합체 ‘OPEC+’가 최근 미국의 증산 요구를 거부하고 감산을 결정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결정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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