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감청 논란]
“韓과 협의없이 우크라로 안옮겨
韓은 러시아-中 반응 두려워해 美 개입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
韓 “살상무기 지원 않는 원칙 불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사진)가 12일(현지 시간) “한국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무기, 탄약 전달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앞서 유출된 미국 국방부 기밀문건에는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들의 대화 내용이 상세히 담겨 감청 논란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폴란드 총리가 한국과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직접 협의했다고 밝힌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 폴란드 총리 “韓, 중-러 두려워해”
미국을 방문 중인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날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한국은 엄청난 양의 포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와 탄약 전달에 대해 한국과 이야기를 나눴다”며 “하지만 이는 미국 개입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한국과의 합의 없이는 폴란드가 무기를 절대 우크라이나로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가 한국에서 구입한 포탄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면 한국 승인을 받기 위한 별도 협상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NYT는 앞서 9일 유출된 미 기밀문건에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이문희 전 대통령외교비서관과의 대화에서 폴란드를 통한 우크라이나 우회 지원 방안을 제시한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거듭 요청하는 가운데 한국이 폴란드에 155mm 포탄 33만 발을 판매하고, 폴란드가 이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포탄 지원 시) 러시아와 중국 반응을 우려하고 있다”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일종의 안전보장 약속을 하는 등의 미국의 개입 없이는 (우크라이나에 한국의 포탄 지원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당국은 “우리가 확인해주거나 할 건 없다”고 일축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하며 “그 부분(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에 대한 정부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포탄 같은 살상무기는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K9 자주포 등과 함께 폴란드에 수출된 155mm 포탄은 수출 계약서에 ‘최종 사용자를 폴란드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 동의 없이는 이 포탄을 폴란드 정부 임의대로 우크라이나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 군 당국 설명이다.
● ‘감청 의혹’ 문건, 실제로 논의됐을 가능성
폴란드 총리의 발언을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 폴란드를 통한 우크라이나 포탄 우회 지원 방안이 실제로 논의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이 같은 대화를 감청 등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통해 확보했는지, 전언 등 인적정보(HUMINT·휴민트)를 통해 수집했는지 출처는 불분명하더라도 검토됐을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폴란드 총리 발언은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폴란드를 우회해 우크라이나에 포탄 등을 지원한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이라며 “미 기밀문건 등이 제기한 폴란드를 통한 우회 지원 의혹을 말끔히 씻어준 발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개된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에 한미가 공감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미국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폴란드 총리의 발언은 한국과 폴란드 국방당국 간의 (K9 자주포와 포탄) 수출 계약과 관련한 내용”이라면서 “(유출된 문건 내용과) 결이 다르다”고 밝혔다.
폴란드 총리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 및 미국 개입을 공개 요구하면서 한국에 대한 압박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21일 한국 등이 참여하는 우크라이나국방연락그룹(UDCG)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할 방침이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NYT에 “UDCG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포병 전력 및 탄약 공급이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탄약 소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동맹국들의 탄약 재고가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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