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심부름중에 주소 착각해
머리-팔에 권총 맞아 응급 수술
가해자 집앞 주민 수백명 항의 시위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총에 맞았어요.”
13일 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주택에 사는 제임스 린치(42)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어디선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조용한 동네여서 밤에 소리가 들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땅에 쓰러진 채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린치는 마당과 울타리를 지나 이웃집 앞으로 향했다. 린치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흑인 소년(16)이 쓰러져 있었다. 머리와 팔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소년의 손목에선 아직 맥박이 뛰고 있었다. 린치는 소년의 손을 잡으며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조금 전 부모 심부름으로 집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부모는 소년에게 주소가 ‘115번 테라스’인 집으로 가서 열한 살 쌍둥이 동생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소년은 어둑한 골목에서 그곳을 찾다가 주소를 잘못 보고 ‘115번 스트리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는 참혹했다.
집주인인 앤드루 레스터는 84세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흑인 소년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유리문을 뚫고 소년의 머리에 맞았다. 레스터는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팔에 또다시 총을 쏜 것으로 조사됐다.
린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레스터를 곧바로 체포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주법에 따른 ‘기소 전 구금 가능 시간’이 지나 풀려났다. 이에 주민 수백 명이 레스터 집 앞으로 몰려와 항의 시위를 하는 등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경찰은 17일 중범죄 혐의로 레스터를 기소했다.
소년의 이름은 랠프 얄(사진)이다. 부모는 라이베이라 이민자이고, 학교에서 비디오 게임과 운동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년이다. 얄은 심각한 뇌손상을 입긴 했지만 응급 수술을 받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얄이 레스터의 집 문턱을 넘지 않았고, 총격이 이뤄지기 전 어떠한 말도 오간 흔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이 인종 관련 동기로 발생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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