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유출 사건은 ‘전면 조사’ 중입니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6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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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호루라기를 불어라
미국 역사를 바꾼 휘슬블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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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 군사기밀을 유출한 잭 테세이라 일병. 잭 테세이라 소셜미디어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 군사기밀을 유출한 잭 테세이라 일병. 잭 테세이라 소셜미디어 캡처


There is a full-blown investigation going on.”
(전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미국에서 군사기밀이 온라인상에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잭 테세이라라는 21세의 공군 일병이었습니다. 그는 게임 채팅 플랫폼에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정부 기밀을 올렸습니다. 그중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대해 한국 정보 당국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유출 사실이 알려지자 “전면 조사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full-blown’(풀블로운)은 범죄사건이 일어나면 수사당국이 쓰는 단골 단어로 뒤에 ‘investigation’(조사)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크게’(full) ‘부풀린’(blown)이라는 뜻입니다. ‘blow’는 활용도가 높은 단어입니다. ‘blow away’는 ‘감동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blow out of proportion’은 ‘뻥치다’입니다. ‘out of proportion’(프로포션)은 ‘비율에서 벗어난’ ‘과도하게’라는 뜻입니다.

기밀 유출은 대개 내부자 소행입니다. 기밀을 유출하는 이유는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 정치적 신념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이런 중요한 정보를 다룬다’라고 과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테세이라 일병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whistleblower’(내부고발자)라고 합니다. 주변에 알리기 위해 호루라기를 분다는 뜻입니다. 여기 또 ‘blow’가 나오네요. 미국 역사상 유명한 내부고발자를 알아봤습니다.

마크 펠트 전 중앙정보국(FBI) 부국장이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내부고발자라는 사실을 밝힌 베니티페어 기사. 위키피디아


I’m the guy they called Deep Throat.”
(내가 바로 딥스로트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딥스로트’라고 불리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내부고발자는 마크 펠트 전 중앙정보국(FBI) 부국장입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불법 도청을 알리겠다는 신념과 FBI 국장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부고발자가 됐습니다.

펠트 부국장이 딥스로트라는 소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사실로 확인되기까지는 30여 년이 걸렸습니다. 2005년 존 오코너라는 연방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시사잡지 베니티페어에 펠트 부국장의 딸 조앤 펠트를 만나 사실을 추적하게 된 경위를 밝힌 기사를 게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92세의 펠트 부국장은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지만 정신이 맑을 때 딸에게 자신이 딥스로트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딥스로트의 정체를 공개한 베니티페어의 유명한 기사 제목입니다. ‘guy’ 대신에 ‘one’(바로 그 사람)을 써도 됩니다. ‘they’는 불특정 다수를 가리킵니다.

‘펜타곤 문서’를 언론에 유출한 대니얼 엘스버그의 1972년 기자회견 모습. 위키피디아
‘펜타곤 문서’를 언론에 유출한 대니얼 엘스버그의 1972년 기자회견 모습. 위키피디아


I felt that as an American citizen, as a responsible citizen, I could no longer cooperate in concealing this information from the American public.”
(미국 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더는 정보를 미국 대중으로부터 숨기는 일에 협조할 수 없었다)
해리 트루먼부터 리처드 닉슨에 이르기까지 4개 행정부에 걸친 미국의 베트남전 불법 개입의 역사를 폭로한 것은 대니얼 엘스버그 연구원입니다. 랜드연구소의 군사 분석가였던 그는 베트남전을 포함한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 ‘펜타곤 문서’(Pentagon Papers)의 주요 내용을 뉴욕타임스에 유출했습니다.

엘스버그 연구원은 펠트 부국장과 달리 자신이 내부고발자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간첩죄, 음모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1971년 그는 검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기밀 유출에 대해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용기 있는 보도와 더불어 널리 알려진 발언입니다. 닉슨 대통령이 엘스버그 연구원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혐의로 풀려나 반전운동가로 변신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유출한 첼시 매닝의 2018년 언론 인터뷰 모습. 위키피디아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유출한 첼시 매닝의 2018년 언론 인터뷰 모습. 위키피디아


People tried to say, ‘This all happened because you were trans.’ It’s like, no.”
(사람들은 내가 성전환자라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한다. 아니거든요)
2010년 이라크에 파견된 정보분석가 브래들리 매닝은 내부고발 전문 인터넷 매체 위키리크스에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기밀문서 75만 건을 넘겼습니다. 사건 당시 매닝은 23세로 테세이라 일병과 비슷한 나이였습니다. 20대 초반의 낮은 계급 군인이 국가 기밀문서를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은 당시에도 큰 논란이 됐습니다.

매닝은 또 다른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성정체성 문제였습니다. 매닝은 2013년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이름을 ‘브래들리’에서 ‘첼시’로 바꾸고 성별도 ‘he’(그)에서 ‘she’(그녀)로 바꾼다고 밝혔습니다. 내부고발자라는 것보다 성전환자라는 사실이 더 화젯거리였습니다.

매닝은 2022년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성전환 과정의 혼란 때문에 기밀을 유출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인들은 성전환자를 의미하는 ’transgender’ ‘transsexual’을 짧게 ‘trans’(트랜스)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내부고발자처럼 자신도 권력의 비리를 알리기 위해 기밀을 유출했다고 했습니다. 매닝이 유출한 문서 중에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는 증거가 없고 미군이 이라크 민간인을 살상했다는 등의 민감한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명언의 품격

미국 건국의 주역 벤저민 프랭클린. 위키피디아
미국 건국의 주역 벤저민 프랭클린. 위키피디아
기밀 유출의 원조는 미국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이자 100달러 화폐에 그려진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독립 전인 1773년 우정공사 자격으로 영국에서 근무 중이던 프랭클린은 이상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식민지 매사추세츠주를 다스리던 토머스 허친슨 주지사가 몇 년 전 영국 본국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식민지 주민들의 본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날로 커지고 있어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매사추세츠 보스턴 출신인 프랭클린은 영국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은 무시한 채 반발 제압에만 초점을 맞춘 편지 내용은 옳지 않다고 봤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비밀리에 편지를 보스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보냈습니다. 편지는 여러 명을 거쳐 ‘보스턴 가제트’에 보도됐습니다. 이 사건을 ‘허친슨 편지’(Hutchinson Letters)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건은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보스턴 주민들은 편지에서 “반발을 통제해야 한다”라는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주민들의 분노는 지역 특산물인 차(茶)를 바다에 내다 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으로 이어져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국 정부는 허친슨 편지를 프랭클린에게 보낸 범인 색출에 나섰습니다. 프랭클린은 편지를 전달받은 경위를 추궁받았습니다. 3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건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자 프랭클린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편지 유출은 자기 혼자만의 책임이라는 내용입니다.

I think it incumbent on me to declare that I alone am the person who obtained and transmitted to Boston the letters in question.”
(문제의 편지를 받아서 보스턴에 보낸 것은 내가 혼자 벌인 일이라고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의무라고 본다)
‘incumbent’(인컴벤트)는 ‘자리에 있는’ ‘재임 중인’이라는 뜻입니다. 현직 대통령을 ‘incumbent president’라고 합니다. 뒤에 ‘on’이 붙으면 ‘책임을 지다’ ‘의무다’라는 뜻이 됩니다. 우정공사에서 해임돼 미국으로 돌아온 프랭클린은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허친슨 편지 사건을 계기로 프랭클린은 건국의 핵심 주역 7인 중 한 명으로 떠올랐습니다. 프랭클린에게 문제의 편지를 보낸 인물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실전 보케 360

방송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결혼 생활에 관해 얘기하는 미셸 오바마 여사. ‘CBS 모닝스’ 캡처
방송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결혼 생활에 관해 얘기하는 미셸 오바마 여사. ‘CBS 모닝스’ 캡처
미셸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을 떠난 지 7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인기 있는 전직 퍼스트레이디입니다. 요즘은 두 번째 저서 ‘The Light We Carry’(한국명 ‘자기만의 빛’) 홍보에 여념이 없습니다. 첫 번째 책 ‘비커밍’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다룬 자서전이었다면 이번 책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삶의 교훈을 담은 내용입니다.

미셸 여사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요즘 젊은이 중에는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뛰어들었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If I fell out with him for 10 years, and we had a great 20 years, I’d take those odds anytime,”
(만약 그와 10년간 사이가 좋지 않고, 20년간 행복한 내기가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그 내기에 응하겠다)
‘odds’(오즈)는 ‘내기’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chance’와 비슷한 뜻입니다. ‘take odds’ 대신에 ‘take chances’라고도 합니다. ‘내기를 받아들이다’ ‘게임에 응하다’라는 뜻입니다. ‘내기를 받아들이다’라는 것은 ‘수긍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30년간 결혼 생활을 한 미셸 여사는 20년은 행복한 시간이었고 10년은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3분의 2만 행복해도 결혼이라는 게임에 응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결혼은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과 ‘가까워지다’ 또는 ‘멀어지다’라고 할 때 ‘fall in(또는 out) with’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9월 30일 소개된 ‘우크라이나 스캔들’ 내부고발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2019년 9월 30일 PDF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930/97646533/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조사까지 몰고 간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자신의 정적인 민주당의 조 바이든 부자가 연루된 우크라이나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압박했고, 이런 사실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자 통화 녹취록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백악관에 배속됐던 중앙정보국(CIA) 소속 내부고발자가 “통화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다”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정보당국 감찰관실에 보내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 조사에 불을 댕겼습니다. 이 고발장은 내용과 형식이 모두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DNI)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조사를 촉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의회에서 증언하기에 앞서 선서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DNI)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조사를 촉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의회에서 증언하기에 앞서 선서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기자는 글을 쓰는 직업입니다. 논리적이고 유려하면서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는 글을 써야 하지요. 하지만 사실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 조사의 도화선이 된 내부고발자의 고발장이 바로 그런 글입니다. 9쪽으로 구성된 이 문건은 내용도 중요하거니와 스타일도 훌륭합니다.

This had to be the best composed, best written, best documented complaint I've ever seen.”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구성이 잘 돼 있고, 가장 잘 썼고, 가장 사실관계가 잘 기록된 문건임에 틀림없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DNI)이 CNN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국가기밀과 관련된 모든 내부고발자 문건은 DNI에게 보고됩니다. 클래퍼 국장은 7년 동안 DNI를 맡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발장을 봤겠습니까. 자신이 본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건이라고 합니다.

The whistleblower gets right to the heart of the matter.”
(내부고발자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간다)
고발장을 심층 분석한 뉴욕타임스 기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고발장은 첫 문장부터 핵심을 치고 들어갑니다. “긴급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보고를 하겠다”라는 구절로 시작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조사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백악관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get right to’는 ‘곧바로 가다’라는 뜻입니다. ‘right’는 생략 가능합니다. ‘heart of the matter’(사건의 본질) 대신에 짧게 ‘point’(요점)라고 해도 비슷한 뜻입니다.

The whistleblower uses active verbs.”
(내부고발자는 능동형 동사를 쓴다)
한국말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행동 주체가 확실하지 않거나 숨기고 싶을 때 수동태 동사를 써서 살짝 넘어갑니다. 반면 고발장에서는 능동태 동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컨대 고발장에는 “White House officials intervened to lock down all records of the phone call”(백악관 관리들이 통화에 대한 모든 기록 제거에 나섰다)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것을 “All records of the phone call were locked down”이라는 수동형으로 썼다면 밋밋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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