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를 비롯한 새로운 대중국 패키지 법안인 ‘중국 경쟁 법안 2.0’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법안에는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수출 규제와 함께 대중 투자 제한,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응한 미국 주도 신흥국 원조 프로그램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나서 중국과의 기술 디커플링(분리) 가속화를 추진하면서 국내 산업에 타격이 우려된다.
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현지 시간) 상원 상임위원장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법(CHIPS Act)을 모델로 국가안보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전 세계에서 중국 역할에 대항하고 경쟁해야 한다”며 “새롭고 중대한 초당적 법안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슈머 원내대표는 “중국 정부에 첨단 기술이 흘러가는 것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제한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수출 규제 같은 조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의회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추가로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슈머 원내대표는 또 “중국 정부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며 “이는 재무 및 상무 장관에게 새로운 권한을 부여해 중국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자금 유입을 중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바이오, 배터리 같은 핵심 분야에서 중국 기업에 투자를 금지하는 법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넘어 더 나아가야 한다”며 미국 내 첨단 제조업 투자 유치를 위한 법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반도체법을 통과시킨 미 의회가 전방위로 대중 규제를 강화하는 패키지 법안을 추진하면서 국내 기업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커지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초기부터 중국을 견제하고 공급망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을 반도체 핵심 시장으로 둔 국내 기업으로서는 AI 반도체 관련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부정적인 신호다. 특히 내년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대중 반도체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어 중장기적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것도 우려하고 있다.
美, 첨단 AI반도체 中유입 통제… 수요 기대하는 삼성-SK 적신호
對中 투자제한-경제제재는 물론 동맹국 결합한 안보체계 창설까지 ‘中견제’ 전방위 패키지 법안 속도… AI 반도체시장 공급망 장악 의지
집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의회가 3일(현지 시간) 발표한 ‘중국 경쟁 법안 2.0’에는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수출 규제 강화는 물론이고 경제 제재, 투자 제한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가 담겨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4년 재선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민주당이 먼저 중국에 대한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것이다.
미국이 대(對)중국 수출 규제 강화와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을 가속화하면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법안에는 대만 지원과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 등 인도태평양 동맹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보여 한중 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대선 앞둔 민주당 ‘中견제’ 드라이브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14명의 민주당 소속 상원 상임위원장들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경쟁 법안 2.0’ 입법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2021년 미 상원은 ‘미국 혁신 경쟁 법안’을 내놓았고, 하원도 지난해 ‘미국 경쟁 법안’을 입법했다. 상·하원이 이 둘을 병합한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는데, 한 발 더 나아가 중국 견제를 위해 더 포괄적인 법안 패키지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슈머 원내대표는 핵심 분야로 △첨단 기술 이전 제한 △대중국 투자 제한 △미국 내 투자 확보 △경제 파트너 국가에 대한 지원 강화 △안보 파트너 보호 등을 제시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진 않았지만 수출 규제 대상 첨단 반도체 장비 기준이 강화되고, 현재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으로 제한된 반도체 제품 수출 규제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 제한은 물론이고 중국 기업과 자본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한 심사 강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법에 이어 바이오 등 주요 분야에서 미국 내 제조업 확대를 위한 법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슈머 원내대표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경제영토 확장 사업)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판 원조 프로그램 도입 계획도 밝혔다.
한국, 일본 등과의 통합 억제 체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잭 리드 상원 군사위원장은 “한국, 일본, 인도 등 모든 동맹국을 결합한 안보 체계를 창설하고 싶다. 중국인들이 무엇을 시도하든 전 세계와 맞서게 된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수개월간 공화당과 협의해 새로운 중국 경쟁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 거세지는 동맹 동참 요구…부담 커진 韓기업
국내 반도체 업계는 내년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대중 반도체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을 견인하는 엔비디아 등 현지 기업이 주요 규제 대상이지만 결국 국내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엔비디아, AMD 등 미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생성형 AI인 ‘챗GPT’ 돌풍 이후 AI 시장이 향후 대폭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이를 뒷받침할 고성능·고대역폭 메모리 수요의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을 초기부터 견제하고 공급망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중국을 주요 시장으로 두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로선 성장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본보기에 불과하다. 결국 고대역폭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주문생산)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계에도 중장기적으로 부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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