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늙었잖아” 비판을 받아친 대통령의 한 마디[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0일 12시 00분


‘아킬레스건’ 나이 문제 선수 치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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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기자단 만찬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조 바이든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조 바이든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Call me old, I call it being seasoned. You say I am ancient, I say I‘m wise.”
(당신들을 나를 나이가 많다고 한다. 나는 연륜이라고 하겠다. 당신들은 내가 케케묵었다고 한다. 나는 현명하다고 하겠다)
요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바쁩니다. 한국 대통령을 위한 만찬을 개최한 지 사흘 만에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에 오르자 환호가 터졌습니다. 나이 문제를 꺼낸 바이든 대통령. 고령(高齡)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old’와 ‘seasoned,’ ‘ancient’와 ‘wise’를 대치시켰습니다. ‘you say, I say’(당신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라는 식으로 대치시키면 됩니다.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WHCD)라고 불리는 백악관 기자단 만찬은 워싱턴의 전통입니다. 1924년 시작돼 내년이면 100주년이 됩니다. 1962년까지는 남성 기자들만 참석할 수 있는 행사였습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여성 기자들이 참석할 수 없다면 나도 안 가겠다”라고 보이콧을 선언해 여기자에게도 문호가 개방됐습니다. 그때 케네디 대통령을 설득한 사람이 ’백악관 터줏대감‘ 여기자 헬렌 토머스입니다.

만찬에서 기자들은 무대에 오르지 않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대통령 연설입니다. 대통령 연설의 성공의 척도는 ‘객석에서 얼마나 많은 웃음이 터지게 했느냐’입니다. 그냥 웃기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풍자를 넣어서 웃겨야 합니다. 내년 대선 도전을 공식 발표한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약점인 나이를 꺼낸 데에는 선거 시즌 때 문제 삼지 말고 지금 웃고 넘어가자는 희망이 깔려 있습니다. 성공적인 기자단 만찬 연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88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88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t’s been said that preparing me for a press conference was like reinventing the wheel. It‘s not true. I was around when the wheel was invented, and it was easier.”
(내가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것은 헛수고라고 한다. 틀린 말이다. 바퀴가 발명될 때 내가 있었는데 훨씬 쉬운 일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1988년 기자단 만찬에서 나이 문제를 꺼냈습니다. 당시 77세였던 레이건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자주 말실수를 했습니다. 말실수 때문에 기자회견을 망쳐 열심히 준비한 참모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바퀴는 고대 발명품으로 지금도 생활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퀴는 이미 존재하니까 지금 바퀴를 다시 발명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reinvent the wheel’(바퀴를 재발명하다)은 ‘헛수고’를 말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나를 위한 기자회견 준비는 헛수고라는 얘기가 나온다”라고 운을 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틀렸다는 겁니다. 이어 “바퀴가 발명됐을 때 내가 있었는데 바퀴 발명이 기자회견보다 쉽더라”라는 펀치라인이 나옵니다. 바퀴가 발명됐을 때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신의 많은 나이를 슬쩍 비꼬는 것입니다. ‘be around’는 ‘살다’ ‘활동하다’라는 뜻입니다. 미국인들은 “또 보자”라고 작별 인사를 할 때 “I’ll be around”(내가 근처에 있을게)라고 합니다.

2000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방송된 ‘마지막 나날들’ 동영상. 세차하며 시간을 보내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온다. 위키피디아
2000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방송된 ‘마지막 나날들’ 동영상. 세차하며 시간을 보내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온다. 위키피디아


I wanna buy a smoked ham!”
(훈제 햄을 사고 싶단 말이야!)
대통령이 물러나는 해에 열리는 기자단 만찬은 서글픈 분위기가 감돕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6분짜리 동영상을 제작해 만찬장의 우울한 분위기를 날려버렸습니다. ‘Final Days’(마지막 나날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 시기여서 할 일이 없습니다. 중요한 기자회견을 해도 기자가 참석하지 않고, 참모들은 모두 자리를 비웠습니다. 뉴욕 상원의원에 출마한 부인 힐러리 여사를 위해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쫓아가 보지만 유세로 바쁜 힐러리 여사는 차를 타고 떠나버립니다.

너무 한가해 인터넷 쇼핑에 재미를 붙인 클린턴 대통령의 대사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가정주부의 쇼핑 품목이라서 한바탕 웃음을 터졌습니다. 훈제 음식을 한국에서는 그냥 ‘스모크’라고 하지만 ‘연기에 그을렸다’라는 뜻이므로 ‘smoked’(스모크트)입니다. ‘smoked ham’(스모크 햄), ‘smoked salmon’(훈제 연어), ‘smoked rib’(훈제 갈비) 등이 인기가 높습니다.

2005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부인 로라 여사를 소개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George and I were just meant to be. I was the librarian who spent 12 hours a day in the library yet somehow I met George.”
(조지와 나는 천생연분이다. 하루 12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는 사서인 내가 조지와 만나게 됐으니 말이다)
기자단 만찬에는 퍼스트레이디도 참석합니다. 대부분 조용히 앉아 있는 역할이지만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가 무대에 올라 부시 가문의 이미지를 부숴놓았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터프한 부시 대통령이 실은 저녁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인 바바라 부시 여사는 따뜻한 할머니 같지만 실제 영화 ‘대부’의 냉혈한 마피아 두목 돈 코를레오네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로라 여사는 부시 대통령과 결혼하게 된 스토리도 얘기했습니다. ‘mean’의 수동형인 ‘meant’와 ‘to be’가 결합되면 ‘의미되어지다’ ‘운명이다’라는 뜻입니다. 남녀관계에서 쓰면 ‘천생연분’이 됩니다. 부시 대통령은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루의 절반을 도서관에서 보내는 사서 출신인 자신과 도서관과 한참 거리가 먼 부시 대통령이 만난 것은 천생연분이라는 겁니다. ‘somehow’(썸하우)는 ‘어찌저찌 해서’ ‘어떻게 하다보니’라는 뜻입니다.

로라 여사의 연설이 히트를 치면서 각본을 쓴 랜든 파빈이라는 스피치라이터까지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빈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개그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로라 여사가 수차례 리허설을 했으며 로라 여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앞서 무대에 오른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일부러 재미없게 구성했다는 뒷얘기를 전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2011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2011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기자단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2011년 연설입니다. 이 자리에는 기업가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버서 운동’을 벌이던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조롱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객석에 앉아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대통령들은 연설 때 각기 다른 ‘클로징 멘트’ 스타일이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May God bless our troops”(신이시여 미군에게 축복을 내리소서)라는 구절로 끝맺는 것을 좋아합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클로징 멘트에서 미군의 안전을 별로 언급하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기자단 만찬 연설을 이렇게 끝냈습니다.

God bless America and may God bless our troops and keep them safe.”
(신이시여 미국을 보호하소서, 미군에게 축복을 내리시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소서)
오바마 대통령은 만찬 직전에 스피치라이터 존 파브로에게 특별 주문까지 했습니다. “연설 중에 미군 축복 클로징 멘트를 잊지 말라는 사인을 보내 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파브로는 대통령의 주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따랐습니다. 기자들도 색다른 클로징 멘트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유는 다음날 밝혀졌습니다. 다음날 미군 특수부대는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에 성공했습니다. 극비 작전에 대해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전에 투입되는 군의 안전을 기원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군사작전을 코앞에 두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연설 무대를 휘어잡은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습니다.

실전 보케 360
CNN 앵커 돈 레몬(가운데)이 방송 중에 “50대 여성은 한창 때가 지났다”고 말하는 장면. CNN 방송 캡처
CNN 앵커 돈 레몬(가운데)이 방송 중에 “50대 여성은 한창 때가 지났다”고 말하는 장면. CNN 방송 캡처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단 만찬에서 자신의 나이를 얘기할 때 CNN 앵커 돈 레몬을 언급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더러 ‘한물갔다’(over the hill)라고 하지만 돈 레몬은 나를 향해 ‘저 사람 한창 때야’(in his prime)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습니다.

요즘 “in prime”은 미국의 유행어입니다. 최근 레몬은 방송 중에 여성 정치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가리켜 “50대 여성은 한창 때(in her prime)가 지났다”라고 말했다가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비난이 빗발쳐 해고됐습니다.

레몬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CNN의 스타 앵커였습니다. CNN 앵커들 중에서 가장 독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는 지났습니다. 레몬은 강성 발언 스타일로 수차례 구설수에 올랐다가 이번에 해고된 것입니다. 레몬은 트위터에 해고된 것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After 17 years at CNN I would have thought that someone in management would have had the decency to tell me directly,”
(CNN에 17년 동안 근무했으니 경영진이 나에게 직접 말해주는 품위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decency’(디슨시), ‘decent’(디슨트)는 일상대화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입니다. ‘제대로 된 품성’ ‘기본적인 예절’이라는 뜻입니다. 상대가 “심성이 바른 사람”이라고 칭찬할 때 “he is a decent person”이라고 합니다. 방문을 노크하면서 “are you decent?”라고 물어보면 “지금 네 상태가 품위가 있느냐” 즉 “문을 열어도 될 만큼 옷을 갖춰 입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have the decency’는 ‘품성을 갖추다’라는 의미입니다. “He didn’t have the decency to apologize”라고 하면 “그는 사과하는 예절도 없었다”라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레몬의 입장에서는 CNN에 오래 근무한 정을 봐서 경영진이 자신에게 직접 해고 통보를 전하는 정도의 품위는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해고된 것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것이 기분 나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CNN 측은 해고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사전에 면담 기회를 줬지만 레몬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9월 14일 소개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기자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4년 동안 한번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은 코로나19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방역수칙을 무시해 근접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9월 14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914/102915077/1

2020년 대선 유세 때 마스크를 들어 보이며 “쓸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위키피디아
2020년 대선 유세 때 마스크를 들어 보이며 “쓸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위키피디아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적지 않은 갈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 갈등의 최전선에 기자들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참모들을 밀착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은 백악관이 기본적인 방역수칙도 지키지 않아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If you don’t take it off, you are very muffled.”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소리가 안 들린다)
얼마 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마스크를 쓴 채 질문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짜증을 내며 벗으라고 독촉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쓴 채 말하면 잘 안 들린다는 겁니다. 소리가 답답하게 들리는 것을 “you are(또는 sound) muffled”라고 합니다. ‘muffle’(머플)은 ‘덮다’ ‘덮어서 소리를 죽이다’라는 뜻입니다. 자동차의 머플러, 겨울철 목에 두르는 머플러 등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There was absolutely no social distancing.”
(전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았다)
백악관 담당 기자들은 좁은 공간에서 취재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협소하고 밀폐된 에어포스원 내부 취재는 위험도가 매우 높습니다. 한 기자는 에어포스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취재한 경험에 대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에어포스원을 타고 대통령을 취재할 기회가 있어도 거절하는 기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We are doing more than they are out of an abundance of caution.”
(만약을 대비해 우리는 그들보다 잘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out of an abundance of caution’은 필수 단어였습니다. ‘caution’은 ‘주의’라는 뜻이고, ‘abundance’는 ‘풍부’라는 뜻입니다. ‘주의를 풍부하게 해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만약을 대비해’라는 뜻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면 ‘the event is canceled out of abundance of caution’이라는 공고문이 붙습니다. 백악관 기자들도 자주 썼습니다. 그들(트럼프 행정부 사람들)은 방역수칙을 안 지키지만 우리는 만약을 대비해 잘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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