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 마지막을 향해 가는 3분,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의 손이 너무 빨라 손 여러 개가 겹쳐 보이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비현실적이란 생각까지 들 때쯤, 임윤찬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동시에 멈췄고,순식간에 관객들이 일어나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관객 2200여명이 용수철처럼 한꺼번에 일어나 우레와 같은 ‘브라보’를 외치는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에서 막을 내린 임윤찬의 첫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는 의심할 여지없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과 임윤찬은 힘차게 포옹했는데 그것조차 감동적이었습니다. 40분이 넘는 시간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 주고받으며 최고의 공연을 선보인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였으니요. 일부 관객들도 감정이 복받치는 듯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해 6월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으로 이름을 알린 임윤찬은 이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첫 협연에서 우승곡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3번을 연주했습니다. 콩쿠르 공연 실황이 유튜브에서 1124만 회 이상 조회될 정도로 주목을 받은 곡이죠. 특히 콩쿠르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초연때 쳤던 오리지널 카덴차(협주곡 중 연주자 솔로 부분)를 연주했다면 뉴욕 필하모닉 협연에서는 좀더 웅장한 다른 버전의 ‘오시아 카덴차’를 연주해 관객들을 놀래 켰습니다.
지휘자 개피건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신들린 테크닉, 깊은 영혼의 음악성에 너무 좋은 성격까지 갖췄다”고 극찬하며 “이런 뜻깊은 순간에 함께해 영광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70대 청중은 “3일 내내 보러 왔다”며 “이런 천재적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드물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어요.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 씨도 이날 공연을 찾아 SNS에 “대단한 데뷔 무대였다”고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데보라 보르다 뉴욕필 최고경영자(CEO)가 임윤찬의 클라이번 콩쿠르 실황을 보고 직접 협연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임윤찬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증명하듯10~12일 3회 공연은 일찍부터 전부 매진됐고, 공연 당일 서서 보는 ‘스탠딩 티켓’이라도 얻고자 아침부터 줄이 늘어설 정도였습니다. 스탠딩 티켓도 마감돼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로비 모니터로 공연 생중계를 지켜봤죠.
마지막 공연인 12일 낮 연주 후에는 관객들의 끊임없는 기립 박수에 앵콜곡을 3곡 선보였습니다. 전날까진 두 곡이었거든요. 3곡을 마친 후에도 관객들이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박수로 감동을 표현하자 난감해하는 임윤찬의 모습이 포착될 정도였습니다. 관객들은 감동을 잊지 못하고 그의 콩쿠르 실황 유튜브 영상으로 돌아가 다시 듣기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해당 영상 댓글창에 뉴욕필 협연 감상평이 줄줄이 달리고 있습니다. “클라이번 보다 더 빠르고 더 파워풀한 잊을 수 없는 연주”,“경이로운 연주” 등등.
NYT는 공연 전 임윤찬의 인터뷰를 아트 섹션 1면에 싣더니, 공연 리뷰기사도 톱기사네요. ‘10대 피아노 스타 임윤찬, 뉴욕에 오다’라는 제목의 공연 리뷰기사에서 NYT 평론가 재커리 울피는 “보통 좋아하는 연주를 들으면 ‘꿈 같은 연주였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임의 연주는 문자 그대로 꿈 같은 연주였다”고 극찬했습니다. 또 그의 공연 유튜브 영상이 1000만 회가 넘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조회수가 높다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명세만 있는 연주자도 있다. 하지만 임윤찬의 침착하고 시적이며 긴장감있는 라흐마니노프 연주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고 적었네요.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이 “이렇게 재미있는 곡이었나”라고 반문하기도 하는 등 리뷰 전체가 극찬으로 가득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공연 리뷰에서 “클래식계에 젊은 스타는 많지만 임윤찬처럼 흥미로운 연주자는 정말 드물다”며 “강렬한 데뷔 무대”라고 평했습니다.
임윤찬은 내년 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데뷔 무대에 오르며 ‘새로운 3개의 연습곡’ 등 쇼팽으로만 구성된 독주에 나섭니다. 카네기홀은 링컨센터 게펜홀(2200석)보다 좌석 수가 더 많은 3670석쯤 되니 표를 구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뉴욕필 데뷔 무대의 열광적 분위기로 봐서는 불안하네요. 지난달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카네기홀 공연 좌석도 가득 찼었습니다. K클래식의 멋진 연주자들, 참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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