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다. 2021년 기준 중국계(홍콩 출신 포함) 이민자는 170만여 명으로, 캐나다 전체 인구(약 3690만 명)의 4.7%를 차지한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인 토론토만 해도 전체 인구 279만여 명 가운데 10%가 중국계다. 중국계 인구가 많은 만큼 총선이나 주 단위 지방선거에서 중국계 표심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캐나다에는 중국공산당에 반대해 망명해온 인사도 상당히 많다.
캐나다 자유당 지원한 中
중국 정부는 교민 등을 관리하고자 캐나다 주요 도시에 이른바 ‘비밀경찰서’를 운영해왔다.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 공안부가 ‘해외 110 복무점(서비스센터)’이라는 명칭으로 해외에서 비밀경찰서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인권단체는 중국 정부가 53개국 102곳에서 비밀경찰서를 운영하며 중국 출신 해외 거주 인사들을 감시·협박하는 등 각종 공작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 단체에 따르면 캐나다에는 중국 비밀경찰서가 토론토에 3곳, 밴쿠버에 1곳, 브로사르에 1곳이 있다.
중국 정부가 2019년,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자유당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선거에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캐나다 언론들은 자국 정보기관인 보안정보국(CSIS)의 비밀문서를 입수해 중국 정부가 자국에 유화적인 자유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유학생과 교민 등을 대거 동원해 2019년,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최소 11명의 자유당 후보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에 있는 중국계 교민 사회와 협회 등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자유당 후보들에게 현금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정부가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유학생들을 동원해 야당인 보수당 후보들에 대한 가짜정보를 퍼뜨리도록 했다고도 밝혔다. 캐나다에는 중국인 유학생 10만여 명이 있다. 중국의 캐나다 총선 개입은 비밀경찰서가 주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유당은 야당인 보수당보다 중국에 타협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 같은 보도로 캐나다 정치권에선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보수당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캐나다 의회는 중국의 총선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공개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중국의 총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로 결정하고 특별 조사관을 임명했다. 트뤼도 총리는 의회도 외부 세력의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중국 정부는 “캐나다 내정 개입에 관심이 없다”며 총선 개입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3월 3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을 따로 만나 “캐나다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라며 “중국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한 적이 없고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캐나다 국민은 대부분 중국이 자국 총선에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 연방경찰인 왕립캐나다기마경찰(RCMP)은 중국 비밀경찰서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에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존재한다는 점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RCMP가 수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정보기관들도 심각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멍완저우 체포가 쏘아 올린 갈등
중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2018년 중국 최대 통신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체포 사건 이후 줄곧 악화해왔다. 당시 캐나다 정부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밴쿠버국제공항에서 멍 부회장을 체포해 구금했다. 화웨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 회장의 딸인 멍 부회장은 2016년부터 이란에 화웨이 제품을 수출해 이란 제재법 위반 혐의로 미국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 수배된 상태였다. 미국 정부는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멍 부회장의 신병을 인도해줄 것을 캐나다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자 멍 부회장은 캐나다 법원에 신병 인도를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가택 연금 상태로 있었다.
중국 정부는 멍 부회장이 체포된 지 9일 만에 캐나다인 2명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해 구금했다. 당시 중국 정부의 의도는 멍 부회장을 미국으로 넘기지 말라고 캐나다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캐나다산 돼지고기, 카놀라유 수입을 중단하는 등 경제 보복 조치도 내렸다. 미국 연방 검찰은 멍 부회장에 대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고 멍 부회장도 2022년 9월 석방돼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이후로도 중국과 캐나다는 날카롭게 대립해왔다.
캐나다 정부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는 등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했다. 캐나다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도 금지했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날 선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뤼도 총리를 만나 “우리가 정상회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모두 언론에 유출됐다”며 “이것은 부적절하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당시 시 주석은 통역관의 발언마저 도중에 끊으면서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더 좋은 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작심 비판했다.
틱톡 금지한 캐나다
양국의 갈등과 대립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최근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에서 중국 기업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사용을 전격 금지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에 이은 조치다. 캐나다 정부는 “틱톡의 데이터 수집 방식이 이용자를 사이버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은 ‘정찰 풍선’을 놓고도 공방전을 벌였다. 캐나다 정부는 중국 정부가 정찰 풍선을 이용해 자국 영공과 영해에서 정찰 활동을 해왔다고 비난했고, 중국 정부는 과학 연구를 위한 풍선이라고 반박했다.
캐나다 의원을 상대로 한 중국 정부의 ‘인질 공작’이 들통 나는 바람에 양국이 서로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정면충돌한 일도 있었다. 캐나다 언론들이 CSIS 비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신장웨이우월(위구르)자치구 등의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해온 보수당 소속 마이클 청 연방 하원의원을 압박하려고 홍콩에 거주하는 그의 친인척을 사찰해왔다는 것이다. 홍콩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청 의원은 2021년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인종 학살’로 규정하는 캐나다 의회의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중국 정부의 제재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바 있다. 청 의원은 홍콩의 친인척 신원이 파악될 경우 중국 정부의 조직적인 탄압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수년 전부터 연락을 끊어왔다. 그럼에도 중국 외교관이 청 의원에 대한 뒷조사로 각종 정보를 수집해 자국 정부에 전달해왔다.
캐나다 정부는 5월 8일 청 의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온 토론토 주재 중국영사관 소속 자오웨이 영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해 추방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도 5월 9일 상하이 주재 캐나다 외교관인 제니퍼 랄론드 영사에 같은 조치를 내렸다.
“中 보복 겁먹지 않을 것”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이번 조치와 관련해 적반하장으로 캐나다 정부에 보복 경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주캐나다 중국대사관은 “캐나다 정부는 추방 조치에 따른 모든 후과를 책임져야 한다”며 “캐나다 정부에 ‘낭떠러지에서 말고삐를 잡아채 멈추기’(懸崖勒馬·현애늑마)를 권한다”고 경고했다. ‘위험에 빠져야 정신을 차린다’는 뜻의 현애늑마는 중국이 주로 다른 나라에 강력한 보복을 경고할 때 사용하는 사자성어다. 중국이 앞으로 무역 분야 등에서 캐나다에 보복 조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트뤼도 총리는 “보복이 무엇이든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에 맞받아쳤다.
캐나다 정부는 최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점점 더 파괴적인 글로벌 파워(increasingly disruptive global power)’로 규정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군사·안보·무역·외교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캐나다 정부는 한국·미국·일본에 새로운 안보 협력체제인 ‘신(新)쿼드’ 구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신쿼드는 기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와는 다르다.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같이해온 캐나다가 먼저 ‘안보 협의체’를 제안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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