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일본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함께 참배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본 재일동포 원폭 피해자 10명은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 있던 재일동포 2세 권양백 씨(79)는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이미 (마음이) 치유됐다. 우리 피해자, 재일동포들은 정말 감개무량하고 감격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44년 생인 그는 2세 때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입었다.
권 씨는 한국인 위령비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으로 옮길 때 ‘위령비 이설 실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공원 밖에 방치돼 ‘차별의 상징’으로 불린 한국인 위령비는 재일동포와 뜻 있는 일본인들 그리고 당시 히로시마 시장이 힘을 합쳐 1999년 공원 안으로 옮겼다. 그는 “(한일 정상의 공동 참배가) 양국 관계 개선에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가 일제강점기 한인 강제징용에 대해 구체적인 사죄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가슴이 아프다’고, 마음에 있는 말을 하지 않았나. 그걸로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권 씨와 함께 참배를 지켜본 원폭 피해자 1세 박남주 씨(90)는 “평화를 느꼈다. 재일동포들 모두 잘됐다고 기뻐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두 정상이 헌화한 뒤 참배하고 돌아가는 것까지 모두 지켜봤다는 박 씨는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사이 좋게 서서 한국인 위령비에 참배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기쁘다”고 했다.
원폭 피해자 2세 김기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 단장은 “두 정상을 보면서 앞으로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히로시마 동포로서 대통령이 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윤 대통령 말에 피폭자로서 그간 섭섭했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며 “8월 5일 재일동포 원폭 피해자 위령제 때 (와 달라고) 한국 정부에 초청 편지를 쓰겠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한일 정상의 한국인 위령비 공동 참배를 주요 뉴스로 다루며 관심을 보였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위령비 방문이 이달 7일 서울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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