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23일(현지시간) 미 통신칩 설계기업 브로드컴과 조 단위 규모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올 초 6월 계약이 만료되는 브로드컴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자체 개발한 통신칩을 설계할 것으로 예측돼 왔지만 브로드컴과 계속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애플이 자체 통신칩 개발 난항 속에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동시에 미국산 반도체 비중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계약에 따라 브로드컴은 아이폰 등 무선 통신 기기에서 송수신 신호를 분리해주는 부품인 FBAR 필터를 포함해 5세대(5G) 통신용 칩을 개발해 애플에 공급하게 된다. 애플은 브로드컴과의 공급 계약 연장을 미국 투자 확대로 설명하며 “최첨단 5G 통신 칩을 콜로라도주 포트 콜린스를 비롯한 미국 내 설계 및 생산 시설에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급계약은 애플이 2021년 “미 공급 업체 및 제조업체에 5년 동안 4300억 달러(567조4000억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투자 협약의 일환이다. 브로드컴과의 공급 계약 기간과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2026년까지 150억 달러(19조8000억 원) 이상으로 내다보고 있다. 브로드컴 매출에서 애플 비중은 20% 수준이라 이날 뉴욕증시에서 브로드컴 주가는 장중 2.5%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 주가에 근접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제조업의 독창성, 창의성, 혁신 정신을 활용하는 약속을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애플의 모든 제품은 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를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브로드컴 공급 계약 체결은 퀄컴 의존에서 벗어나 공급망을 다양화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애플이 자체 통신칩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로도 본다. 애플은 이미 컴퓨터 제품 군에선 인텔 칩 대신 자체 칩으로 대체해 왔지만 통신칩 개발에는 어려움을 겪어 왔다.
애플이 이번 계약을 ‘미국 투자 강화’ 메시지에 방점을 두고 있어 2024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는 TSMC 애리조나 공장 등을 활용해 미국 생산량을 더욱 늘릴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애플은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을 시작하는 등 중국 공급망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또 협력사 공개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던 애플이 지난해 TSMC 기공식에 참석하는 등 부품의 ‘원산지’를 강조하는 배경에 대해 미 정치권의 압박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중 관계 악화 속에 애플이 중국 제조업체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미 정부의) 조사를 받아 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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