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의 국방장관 회담 제의 거부… 美 “소통채널 열어놔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31일 03시 00분


美, 내달초 샹그릴라 회담 제안에
中, “분위기 만들라”며 이례적 거부
국방부장 美제재 해제 겨냥 해석도
‘경제는 협력, 정치는 냉각’ 투트랙

중국이 다음 달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갖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시아 주요국 안보 사령탑이 총출동하는 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이 미국의 회담 요청을 거부한 것은 이례적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이 행사에서 웨이펑허(魏鳳和) 당시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 북한, 대만 사안 등을 논의했다.

중국은 명확한 거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30일 “미국은 양국 군의 대화와 소통을 위해 잘못된 행태를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2018년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의 제재를 아직 미국이 풀어주지 않는 것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방위 견제를 일정 수준 풀지 않으면 안보 분야 소통 채널 복원에 나설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 中 “美, 소통하려면 잘못 바로잡아야”
미 국방부 당국자는 29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중국은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갖자는 제안을 거부한다고 통보했다”며 “경쟁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군사 소통 채널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WSJ에 따르면 오스틴 장관은 이달 초 리 부장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샹그릴라 대화에서의 회담을 요청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중 양국 군 대화가 난항을 겪고 있는 원인을 미국이 잘 알고 있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주권, 안보, 이익에 대한 우려를 확실히 존중하고 잘못된 행태를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화와 소통을 하려면 실제 행동으로 필요한 분위기와 조건을 만들라”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미국이 리 부장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는 한 중국이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항공 기술자 출신의 리 부장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장비개발부장으로 재직하던 2018년 러시아제 수호이(Su)-35 전투기, S-400 방공 미사일체계 구매를 주도해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올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월 그를 국방부장으로 발탁하며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줬다.

● 中, 美에 대만 ‘레드라인’ 재강조할 듯
미국은 북한 미사일 대응과 대만해협 안정,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아시아 지역 핵심 안보 현안을 두고 동맹 규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안보 현안에선 미국의 압박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려고 회담을 거부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30일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는 리 부장이 샹그릴라 대화에서 대만 문제에 대한 ‘레드라인(Red Line·양보할 수 없는 선)’을 강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외부 세력이 중국 내정에 개입해선 안 된다”며 사실상 미국에 경고를 보낼 것이란 의미다.

미중 무역·통상수장이 최근 고위급 회담을 한 가운데 중국이 돌연 양국 국방장관 회담만 거부한 것을 두고 중국이 ‘정랭경온(政冷經溫·정치는 냉각기, 경제는 협력 유지)’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미국의 경제 관료를 상대할 때 영향력을 더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안보보다 경제를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국방장관 회담 거절#샹그릴라 회담 제안#대만 ‘레드라인’ 재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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