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다음 미국 대통령이 결정될 수 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3일 10시 00분


|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38)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기나긴 금리 인상 여정의 종착점?
“일부 은행의 파산으로 금리 인상이 추가로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이달 끝날까.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최근 금리 동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준이 13~14일(현지 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3월 연 0.25%에서 지난달 5.25%까지 무려 5%포인트나 상승했다. 2007년 이후 16년 만에 금리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인상 속도 또한 역대급이었다. 연준은 최근 15개월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인플레이션이 12%를 웃돌았던 198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 이렇게 단기간에 금리를 높게 올린 적이 없었다.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부터 ‘빅스텝(0.50%포인트 인상)’,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까지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파월이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배경에는 인플레이션이 있다. 금리 인상의 원인이었던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가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6월 9.1%(전년 대비 상승률)로 고점을 찍고, 올 4월 4.9%까지 계속 하락했다.

올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B) 등 미국 중대형 은행이 금리 인상 여파로 잇달아 쓰러지면서 긴축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SVB 사태’는 신비월드 33회, “아니, 이 금리에 어떻게 은행이 망해?” 기사 참고.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324/118509474/1

은행 파산이 사실상 금리 인상 효과를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SVB 사태’ 전후로 미 은행들이 대출을 조였다. 기업들의 대출 수요도 쪼그라들었다.

연준이 최근 각 은행 대출 담당자들에게 설문한 결과, 올해 1분기에 기업 대상 대출 조건을 강화했다고 답한 비율이 46%로 지난해 4분기 44.8%보다 늘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신용이 더 좋은 기업에만 대출을 승인해줬다는 의미다. 대출 담당자의 55.6%는 “대출을 원하는 기업 숫자가 줄었다”고도 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해당 비율이 31.3%에 불과했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SVB 사태에 따른 대출 강화 여파가 미미하더라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5%포인트는 낮출 것”이라고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은행이 대출을 조이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해 긴축 효과가 나타난다”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금리 인상의 종착점이 눈앞에 있을까.
일러스트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피노키오 된 이코노미스트들
연준 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연준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5월 FOMC 회의 의사록을 보면 몇몇(several) 참석자들은 파월의 의견에 동조했지만, 일부(some) 참석자들은 “물가 하락 속도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다.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가(상승률)가 4.9%로 많이 내려왔지만, 연준의 목표인 ‘2%’에 도달하려면 이달에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근 고용 및 소비 지표만 보면, ‘몇몇 위원’보다 ‘일부 위원’ 의견에 힘이 실린다. 5%대 금리에도 미국 경제가 쉽게 식지 않고 있어서다.

미 노동부는 4월 일자리(비농업 신규 고용)가 25만3000개 증가했다고 5일 발표했다. 시장 예상인 18만 명을 크게 웃돌았다. 미국 내 신규 고용은 1월 47만2000명에서 2월 32만6000명, 3월 16만5000명으로 떨어지다가 이번에 반등했다. 4월 실업률은 3.4%를 기록했다. 196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시간당 평균 임금도 전년 대비 4.4% 증가해 전망치(4.2%)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소비가 아직 뜨겁다. 지난달 26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4월 개인소비지출(PCE)은 전년 동월 대비 4.4% 상승했다. 시장 전망치(4.3%)보다 높았다. 전월보다는 0.4% 올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도 3월보다 0.4% 증가했다. 미국 사람들이 경제매체나 금융가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의미다. PCE는 소비 추이를 체크할 수 있어서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지수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난달 초 “긴축의 여정이 출발점보다는 종착점에 훨씬 가까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6일에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천천히 내려온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높은 금리에 경기가 곧 얼어붙을 것이라던 전문가들은 피노키오가 됐다. 레이 패리스 크레디트스위스(C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들이 반년마다 ‘6개월 후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면서 “다음 달이 되면 학자들은 여전히 ‘6개월 후 경기 침체’를 언급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은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올려 올해 중반쯤에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이 경제를 식히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권총 품은 연준 의장
파월이 2021년의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당시, 파월은 “현재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가 물가가 계속 치솟자 오판을 인정하고, 뒤늦게 금리를 올렸다. 이번에는 자칫 금리 인상을 일찍 멈췄다가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

1979년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연준 의장에 취임했던 폴 볼커(1927∼2019)가 이 같은 일을 겪었다. 볼커는 재임 동안 금리를 연 10%에서 22%까지 올리며 인플레이션이 12%까지 갔던 최악의 고물가 상황을 제압했다. 당시, 시민단체·기업·정치권 등에서 금리를 내리라는 요구가 상당했다.

카터 정부는 1980년 여름 대선을 앞두고부터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물가가 어느 정도 잡혔고,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물론, 숨은 이유는 ‘재선’이었지만. 7월 볼커는 17%대 금리를 9%로 떨어뜨렸는데, 물가가 다시 치솟았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19%로 기존보다 더 올려야 했다.

참고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 볼커는 ‘권총 품은 의장’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가 품에 권총을 지니고 다닌 습관 때문이다. 높은 금리에 시민단체와 농민들이 연준 건물을 에워싸는 등 들고 일어났고, 무장 괴한의 습격도 있었다. 볼커는 총을 차고 다니면서까지 금리를 지켰지만, 정치권 압력은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카터 다음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1984년 백악관 집무실 옆 서재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면담했는데,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레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베이커는 ‘대통령이 선거 전에 금리를 인상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과거 미 대통령들이 연준 의장을 괴롭혔던 이유는 인플레이션이 지갑 두께와 계좌 잔액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74년 제럴드 포드 미 부통령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나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됐는데, 당시에도 인플레이션, 실업률 급증이 문제였다.

포드는 미국 물가상승률이 12% 수준일 때 ‘WIN(Whip Inflation Now·고물가 때려잡기)’이라는 약어로 인플레이션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결국 카터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뒤를 이은 카터 역시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카터의 취임과 퇴임에 ‘인플레이션’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폴 볼커(1927∼2019)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볼커 얼라이언스)


● 바이든 운명 손에 쥔 ‘연준’
미국에선 파월이 인플레이션을 ‘잘’ 잡느냐에 따라 내년 미국 대통령이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깊은 경기침체를 겪지 않으면서도 물가를 잡는 게 핵심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일어날 일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연준이 이번 임무(인플레이션 잡기)를 완수하는지와 그 과정에서 심각한 경기 침체를 유발하는지에 따라 내년 대선이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미국 국민이 현재의 인플레이션 책임이 팬데믹(대유행) 부양정책에 서명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2020년 4월부터 총 5조 달러(약 6630조 원)의 돈을 풀며 강력한 재정 부양에 나선 바 있다. 이 양적완화 정책은 미국의 물가를 끌어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올 4월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바이든이 취임했을 때보다 13.4% 올랐다. G7(주요 7개국)의 근원 물가보다 더 많이 상승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를 적시에 올리지 못한 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너지 비용 상승) 등도 물가를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지만,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인 사람은 바이든이었다”고 지난달 전했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다고 본다. 이들은 내년 재선의 유력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제를 더 잘 다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수십 년간 대통령·의회 선거를 분석해 온 레이 페어 미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 행정부의 경제적 성과를 기반으로 다음 대선 결과를 최근 예측했다. 그는 미국 인플레이션이 올해와 내년 각각 3%, 2%를 기록하고, 동시에 내년 경제가 4% 성장하면 내년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올해 5% 내년 4% 수준이고 성장률이 2%로 위축된다면,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페어 교수는 “어느 때보다 연준의 노력에 따른 정치적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 “좋은 경제적 성과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출마 명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P뉴시스)


● 통장 잔액: 5000억 달러(약 662조 원)
그런데, 5%대 금리에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왜 이렇게 천천히 떨어질까. ‘헬리콥터 머니(막대한 통화공급 확대)’의 여파가 가장 커 보인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은 ‘팬데믹 초과 저축의 흥망성쇠’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연구 결과를 지난달 초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당시 가계가 전례 없는 속도로 역대급의 초과 저축을 축적했다.

실업보험, 세금 공제, 급여 보호 프로그램 같은 직접 지원이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2020~2021년 지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통장에 돈이 급격히 불어났다. 미국 가계의 초과 저축액은 2021년 8월 2조1000억 달러(약 2789조 원)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말 월평균 340억 달러(약 45조 원)씩 감소했다. 그러다가, 금리가 지난해 속도가 붙어 월 1000억 달러(약 133조 원)씩 줄었다.

그럼에도, 아직 통장에 쓸 수 있는 돈이 꽤 남아있다. 함자 압델라흐만 샌프란시스코 연은 경제연구원은 “올해 3월까지 누적 인출액은 1조6000억 달러(약 2117조 원)에 달했지만, 아직 5000억 달러(약 662조 원)의 초과 저축이 남아 있다”면서 “초과 저축은 올해 말까지 가계 지출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 국민의 소비가 여전히 뜨거운 이유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탐욕’이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기업이 원가 상승 요인 이상으로 제품 가격을 여러 차례 올려 물가를 계속 끌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펩시코, 코카콜라, 프록터앤드갬블(P&G), 네슬레 등 미국 소비재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보면 판매량은 줄어든 반면, 매출은 증가했다. 제품 가격을 올려서 만회한 것이다. 의류 업체 랄프로렌은 최근 평균 상품 가격을 7% 올렸다.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면서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소에는 고객들이 화를 내는 것을 두려워해 기업들이 가격을 잘 올리지 못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핑계를 대면서 판매 감소를 가격 상승으로 상쇄하고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역대 경기침체 직후 가계 초과 저축액 추이. 미국 가계의 초과 저축액은 2021년 8월 2조1000억 달러(약 2789조 원)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빠르게 감소했다. 샌프란시스코 연은은 아직 미국 가계에 5000억 달러(약 662조 원)의 초과 저축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역대 경기침체 직후 가계 초과 저축액 추이. 미국 가계의 초과 저축액은 2021년 8월 2조1000억 달러(약 2789조 원)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빠르게 감소했다. 샌프란시스코 연은은 아직 미국 가계에 5000억 달러(약 662조 원)의 초과 저축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 PPP와 핑계플레이션
미 블룸버그는 기업들이 핑계(excuse)를 대면서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주도하는 현재 상황을 ‘핑계플레이션(Excuseflation)’이라고 표현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이 고객들에게 일종의 ‘바가지요금’을 청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랄프로렌이나 펩시코처럼 가격결정력(상품값을 올려도 사고 싶은 마음이 크게 줄지 않는)이 있는 기업들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 미 시장조사업체 코르부 엘엘씨의 사무엘 라인스 전무이사는 “우리는 이를 새로운 ‘PPP(Pepsi Pricing Power·펩시의 가격결정력)’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펩시코가 전쟁 이후 러시아 시장을 잃고 이를 만회하고자 가격을 크게 올렸는데, 고객들이 다른 대안을 찾지 않고 대체로 제품을 구매했다”고 했다.

경제 뉴스나, 제품값 인상 소식이 쏟아지면서 고객들이 ‘가격’에 덜 민감해진 것도 있다. 가격 인상 행렬에 묻어가는 기업도 있었을 것이다. 라인스는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문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품값을 여러 번 올려 본 회사들이 인플레이션 같은 특정 이슈가 있을 때 (가격 인상에 대한) 고객들의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을 알아챘다”면서 “기업들이 이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들 사이에서 ‘탄력성’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리 고객들이 제품 가격의 변화(사실상 인상)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체크하면서 가격 정책을 짜는 것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전략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 시기를 거치면서 ‘수익성 방어’의 핵심 전술로 떠올랐다.

미국 생활용품 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의 안드레 슐튼 CFO는 “우리의 탄력성은 여전히 양호하다”고 밝혔다. 슐튼은 P&G의 최근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3% 감소했지만, 가격을 평균 10%가량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미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의 경제학자 이사벨라 웨버는 “펩시나 코카콜라처럼 뚜렷한 경쟁상대가 있는 기업마저도 시장 점유율을 잃을 걱정 없이 가격을 함께 올렸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판매자 인플레이션’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펩시코, 프록터앤드갬블(P&G), 큐리그(음료업체), 유니레버, 네슬레 등이 올해 1분기 판매량 감소를 가격 인상으로 상쇄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을 가격 인상의 핑계로 삼고 있다는 점이 실적에서 드러났다”고 지난달 25일 전했다. (WSJ)


● 소비·고용 언제쯤 식을까
연준은 지난해부터 고용과 임금 상승 추세가 꺾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사람들이 가격표를 확인하게 하려면, 월급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부터 꺼뜨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19일 ‘팬데믹 시대의 소비 폭주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글에서 “신용카드 잔액이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소매점의 취미 용품 매출이 1년여 만에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높은 금리와 경기침체 우려 탓에 덜 필요한 것부터 소비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할인 등 특가 상품 판매도 늘었다. 대형 할인매장 티제이엑스는 “1분기 고객 당 평균 매출이 감소했지만, 전체 매장 방문 수는 증가했다”면서 “저가 상품을 찾는 신규 고객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EY의 소매파트 리더인 짐 듀셋은 “우리는 엄밀히 말해 불황 상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경기침체의 위기감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민’이 인플레이션에서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시행해온 ‘타이틀 42’ 행정명령이 지난달 11일 자정을 기해 3년 만에 종료됐다. 타이틀 42는 ‘국제적 위해의 전염병이 창궐해서 미국에 퍼질 위험이 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국경을 무조건 닫을 수 있다’는 미국 보건법 제42호를 뜻한다.

타이틀 42 해제로 미국으로 이민이 급증해 임금 상승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꽤 많은 이민자가 노동 시장에 투입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약 140만 명이 미국으로 순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 이전보다 3분의 1 증가한 수치”라고 전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르스텐 슬록은 “노동 시장을 냉각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늦추려는 연준에 이민자 증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민에 큰 기대를 걸지 말라는 일부 의견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노동 공급이 늘어나 임금상승률을 낮출 수는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 “오히려 상품, 서비스, 임대료 등을 상승시킬 수 있어 지켜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타이틀 42 정책이 폐지된 이후 바이든 정부가 여전히 엄격하게 입국을 통제하고 있어서 당장은 인플레이션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다수 미 백인이 이민에 부정적이다)

AP뉴시스


● 마침표 또는 쉼표
연준이 이달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마침표가 아닌 ‘쉼표’일 가능성도 있다. 차기 연준 부의장에 지명된 필립 제퍼슨 연준 이사는 지난달 31일 워싱턴DC에서 열린 금융 정책 연례 콘퍼런스에서 “금리 인상을 건너뛰면 FOMC가 추가 긴축 결정을 내리기 전에 더 많은 데이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했다. 이어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유지한다는 결정이 나오더라도 우리가 이미 최고 금리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가 인상의 문은 열어둔 셈이다.

1년 반만의 금리 동결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지 않아, 내년 이맘때도 비슷한 기사를 쓰고 있을까 봐서다. 2022년 6월 신비월드에서 인플레이션을 다룰 때, 1년 후 같은 주제를 또 쓰게 될지 생각지도 못했다.

▶신비월드 15화, “치솟은 주가가 지구로 돌아왔다. 파티는 끝났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20605/113793005/1

기사를 쓰기 싫어서가 아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빨리 잡혀야, 미국뿐만 아니라 각국의 금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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