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는 대통령보다 인기 있는 존재가 산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7일 12시 00분


“내 개가 ‘워스트 독’?”
나를 욕하는 건 참아도 내 개를 욕하는 건 못 참아
미국 대통령의 눈물겨운 ‘퍼스트 펫’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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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려견 챔프와 즐겁게 지내는 모습. 챔프는 2021년 세상을 떠났다. 백악관 홈페이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려견 챔프와 즐겁게 지내는 모습. 챔프는 2021년 세상을 떠났다. 백악관 홈페이지


Our hearts are heavy today as we let you all know that our beloved German Shepherd, Champ, passed away peacefully at home.”
(우리의 사랑하는 독일 셰퍼드 챔프가 평화롭게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마음이 무겁다)

최근 한국 대통령이 관저에서 반려동물들과 지내는 모습이 한 동물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됐습니다. 대통령은 11마리의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려동물 하면 백악관입니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때부터 백악관에서 동물을 키웠습니다. 지금까지 46명의 미국 대통령 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대통령은 3명에 불과합니다. 현대 대통령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2021년 반려견 챔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애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 어떤 백악관 성명보다 대통령의 진심이 가득 담긴 글이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our hearts are heavy”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습니다. 이어 챔프가 생전에 어떤 개였으며, 투병 기간 동안 상태가 어땠는지 등이 자세히 담겨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챔프와 비슷한 시기에 반려견 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미셸 여사는 인스타그램에 각각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백악관에서 대통령만큼 반려동물도 스타입니다. 백악관이 공개하는 사진 중에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것은 반려동물 사진입니다.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받는 질문의 상당수는 “반려동물은 잘 지내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인들은 반려동물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의 못 말리는 반려동물 사랑을 알아봤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반려견 팔라 동상. 위키피디아
워싱턴에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반려견 팔라 동상. 위키피디아


He’s Scotch and all these allegations have made his little soul furious. He has not been the same dog since.”
(우리 개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어서 지금 혐의 때문에 그의 작은 영혼이 분노하고 있다. 더 이상 옛날의 그 개가 아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4선에 도전할 때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반려견 팔라를 데리고 북태평양 알류샨 열도에 휴가를 다녀온 뒤 이상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실수로 팔라를 휴가지에 남겨두고 왔으며, 팔라를 데려오려고 해군 구축함을 급파해 수백만 달러의 국민 세금이 낭비됐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야당인 공화당이 선거를 앞두고 퍼뜨린 흑색선전으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유머로 대응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팔라가 세금 낭비 혐의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성격이 불같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스코티시 테리어 종의 팔라는 스코틀랜드 혈통이어서 다혈질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Scotch’(스카치)는 스코틀랜드 출신을 말하는 구식 단어로 요즘은 ‘Scottish’(스카티시)라고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더 이상 예전의 팔라가 아니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라디오로 생중계된 유세 연설 중에 팔라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팔라는 연설의 주제가 아니었지만 가장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연설을 들은 국민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팔라를 언급한 대목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영화배우 오손 웰즈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려견에 대한 재치있는 유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미지를 순화시키며 4선에 기여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동행했던 팔라는 워싱턴에 건립된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 동상에 함께 등장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대통령 반려견 동상이 있는 것은 팔라가 유일합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반려묘 삭스와 반려견 버디.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반려묘 삭스와 반려견 버디.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 did better with the Palestinians and the Israelis than I‘ve done with Socks and Buddy.”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중재하는 것이 삭스와 버디 중재보다 쉽더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두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웠습니다. 취임 초부터 반려묘 삭스를 키웠고, 퇴임을 1년 여를 앞두고 반려견 버디가 합류했습니다. 삭스와 버디는 극도로 사이가 나빴습니다. 당시 백악관 안주인이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따르면 삭스는 버디가 백악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주인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질투심이 발동했습니다. 백악관 직원들은 삭스와 버디가 싸우지 못하도록 거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을 정도였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 최대 난제는 중동 평화 정착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 어렵다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중재보다 반려견-반려묘 중재가 더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부부는 퇴임 후 삭스와 버디를 비좁은 뉴욕 자택에서 함께 키울 수 없었습니다. 삭스를 보좌관에게 넘겼습니다.

‘워싱토니언’ 잡지가 가장 못생긴 개로 선정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반려견 밀리. 위키피디아
‘워싱토니언’ 잡지가 가장 못생긴 개로 선정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반려견 밀리. 위키피디아


I’d like to know who did the ‘Best and Worst.’ I’d like to know how you picked the ugliest dog. President George Bush.”
(최고와 최악 기사를 누가 담당했는지 알고 싶다. 가장 못생긴 개를 어떻게 뽑았는지 알고 싶다. 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다)
‘아버지 부시’로 통하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반려견 밀리를 키웠습니다. 밀리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시사잡지 ‘워싱토니언’에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이 잡지는 워싱턴에서 가장 잘 생기고 못생긴(Best & Worst) 개를 선정하면서 밀리는 가장 못생긴 개로 뽑았습니다.

워싱토니언은 스프링어 스패니얼 종인 밀리의 큰 귀, 축 처진 입 등을 못생긴 개 선정 이유로 꼽았습니다. 발끈한 부시 대통령은 잡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접수원이 전화를 받자 “개 순위 기사 담당자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접수원이 찾는 이유를 묻자 “못생긴 개 순위를 어떻게 정했는지 알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접수원이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누가 걸었는지 말해달라”라고 하자 “조지 부시 대통령”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사건 후 밀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가 됐습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Millie’s Book’(밀리의 책)을 내놓았습니다. 개의 시각에서 본 백악관 생활을 바버라 여사가 받아쓴 형식입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부시 대통령 자서전보다 더 많이 팔렸습니다. 바버라 여사는 인세로 받은 100만 달러를 자신이 운영하는 문맹 퇴치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반려견 체커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반려견 체커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닉슨의 반려견인 코커스패니얼종의 체커스는 그를 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부통령 러닝메이트 결정을 앞두고 닉슨이 1만8000달러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러닝메이트 결정을 미루고 자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닉슨은 대국민 연설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불법 재산을 축재하지 않고 청렴하게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반려견 체커스가 등장합니다. 체커스는 어린 딸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텍사스의 한 지지자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I just want to say this right now, that regardless of what they say about it, we’re going to keep it.”
(이것만은 말하겠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우리는 체커스를 키울 것이다)
강아지를 지지자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은 불법 정치모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법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을 반려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후 논리는 약하지만, 유권자의 감정에 진국으로 호소하는 연설을 ‘체커스 연설’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연설 덕분에 체커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1년을 먹고도 남을 식량과 수백 개의 목줄이 선물로 답지했습니다. 연설을 들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인 마미 여사는 감동을 받아 남편에게 “닉슨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며 러닝메이트로 정할 것을 설득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실전 보케 360
반려견 보가 처음 백악관에 들어오던 날 함께 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반려견 보가 처음 백악관에 들어오던 날 함께 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반려견 보가 죽었을 때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애도 성명에서 ‘empty nester’(엠프티 네스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빈 둥지 부모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집을 떠나기 때문에 이때 상실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딸이 집을 떠난 뒤 적적함을 보와 함께 보내면서 이겨냈다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날(6월 18일)에 자녀들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것”이라는 말했습니다. 소박한 소망입니다. 빈 둥지 부모인 오바마 대통령은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Nothing beats it.”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beat’에는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동사로 썼을 때 ‘때리다’ ‘이기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nothing beats it’은 ‘어떤 것도 그것을 이길 수 없다’ ‘그것만 한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I am beat”이라고 하면 “내가 졌다” “나는 녹초가 됐다” 등의 뜻입니다. 미국 광고를 보면 “nothing beats the real thing”이라는 문구가 자주 나옵니다. “진짜만 한 게 없다” “우리 상품이 진짜”라는 뜻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4월 5일 소개된 바이든 대통령의 반려견 메이저에 관한 내용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려견 2마리와 함께 백악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마리는 세상을 뜬 챔프이고, 다른 한 마리는 메이저입니다. 메이저는 자꾸 사람을 물어 백악관을 포기하고 바이든 대통령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챔프와 메이저가 모두 떠난 자리에 커맨더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2021년 4월 5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405/106242507/1

조 바이든 대통령이 델라웨어 동물보호소에서 메이저를 입양했을 때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델라웨어 동물보호소에서 메이저를 입양했을 때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챔프와 메이저, 두 마리의 독일 셰퍼드를 백악관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메이저가 자꾸 문제를 일으킵니다. 두 차례나 사람을 물어 의료진이 출동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Out of an abundance of caution, the individual was seen by WHMU and then returned to work.”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그 사람은 백악관 의료팀의 치료를 받고 업무에 복귀했다)
메이저는 얼마 전 백악관 직원을 물어 바이든 대통령의 델라웨어 자택으로 이송돼 특별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백악관 복귀 후 다른 직원을 또 물었습니다. 백악관은 경내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를 공개할 의무가 있습니다.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의 대변인은 메이저가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out of an abundance of caution’은 ‘풍부한 경계심에서’ ‘혹시 몰라서’라는 뜻입니다. 가벼운 사고였지만 혹시 몰라서 의료 처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Oh man, not a very exciting story.”
(아이고, 별로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
지난해 대선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한동안 절뚝거리며 다녔습니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메이저였습니다. 흥분한 메이저를 진정시키려다 미끄러져 발목을 삔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개를 쫓다가 상처를 입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별로 즐거운 얘기가 아니다”라고 한탄했습니다.

Eighty-five percent of the people there love him. All he does is lick them and wag his tail.”
(거기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메이저를 사랑한다. 메이저가 하는 일은 핥고 꼬리를 흔드는 것뿐이다)
그래도 바이든 대통령은 메이저에게 무한 애정을 보여줍니다. ABC방송 인터뷰에서 “85%의 백악관 직원들은 ‘메이저를 사랑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eighty-five percent’(85%)는 바이든 대통령이 무작위로 거론한 숫자가 아니라 ‘대다수’(most)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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