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주권국가에 대한 압박전술”이라며 제3국간 외교적 논란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개 비판에 나섰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한 ‘워싱턴 선언’ 등 대북 대응을 포함한 주요 현안에 한미가 협력을 강화하는데 대해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는 중국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고위급 소통 재개를 추진하면서도 동맹 규합을 통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본격화하고 첨단 기술 제재 등 디리스킹(탈위험)에 속도를 내면서 조급해진 중국이 동맹균열을 위한 전랑(戰狼)외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美 “中, 한국 얕잡아보는 외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명백히 압박 전술(pressure tactic)의 일종으로 보인다”며 “한국은 중요하거나 적절하다고 여기는 외교정책 결정과 관련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주권국가이자 독립 국가이며 (인도태평양) 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미국의) 훌륭한 동맹이자, 좋은 친구”라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가 “현재 한중 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싱 대사의 발언을 두둔하고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맞불 초치한 가운데 미국이 싱 대사의 발언을 ‘압박 전술’로 규정하며 사실상 내정 간섭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미국은 2016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초기 거리를 두다 2017년에야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며 중국에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당시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도 ‘동맹국에 대한 보복을 방관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번 싱 대사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선 분명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 정책에 동참하는 미국 동맹국들을 겨냥해 위협 수위를 높이자 발 빠른 대응으로 동맹 간 균열을 막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NSC 선임보좌관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공동 주최 포럼에서 최근 논란에 대한 본보 기자의 질문에 “중국은 최근에 일본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 측의 강경 발언은) 요즘 중국이 새롭게 밀고 있는 말(line)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중국의 강압적 전술에 동조하기보다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같은 편) ‘숫자’를 늘려야 한다”며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이나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 수미 테리 아시아프로그램 국장도 “한국은 이미 과거에 비슷한 경험(사드 보복)을 당했고, 헤쳐나간 경험이 있다”며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NSC 선임보좌관은 미국의소리(VOA)에 “중국이 공개적으로 한국을 얕잡아보는 외교 기조를 펴고 있다”며 “중국은 장기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역내 안보 이익에 순응하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 美와 극단 시나리오 대비나선 中
미국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인도태평양 내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가속화하고 반도체 등 중국의 첨단 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이 절박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주필리핀 중국대사는 4월 “대만 거주 필리핀 노동자 15만 명을 생각하면 대만 독립을 명백히 반대하는 게 좋다”고 했고, 같은 달 주일본 중국대사는 일본의 대만 문제 개입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3일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의 유럽 방문에 대해 “유럽 정치인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얻는 이득과 손실을 거듭 생각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자기 발에 총을 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악의 경우와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에 대비할 것”을 지시한 것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 주석이 최근 측근인 허리펑(何立峰) 부총리와 류허(劉鶴) 전 부총리 등에게 서방과의 갈등으로 제재가 강화될 경우에 대비한 경제운용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라이언 하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WSJ에 “시 주석이 중국이 극단적 상황에 견딜 수 있도록 절박감을 고조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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