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 된 대통령, 무슨 일이길래[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4일 12시 00분


“아직 다 붙어있다”
꽈당 넘어지는 순간에도 빛나는 리더의 품격
대통령들의 각양각색 낙상 사고 리액션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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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이 넘어진 뒤 건강을 과시하는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넘어진 뒤 건강을 과시하는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I got sandbagged.”
(모래주머니에 걸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잘 넘어집니다. 최근에도 낙상 사고를 당했습니다. 콜로라도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하다가 무대 위의 모래주머니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텔레프롬프터가 넘어지지 않도록 바닥에 받쳐놓은 모래주머니였습니다.

넘어진 뒤 백악관에 복귀한 바이든 대통령은 모래주머니 탓으로 돌렸습니다. 나이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모래주머니에 걸린 것은 단순한 주의 부족 때문으로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라는 의미입니다. 해명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양팔을 번쩍 들고 뛰는 제스처도 취했습니다. ‘건강에 문제 없다’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입니다. ‘샌드백’ 하면 한국에서는 권투용 샌드백을 연상하지만,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모래주머니를 뜻합니다. 권투용 샌드백은 ‘punching bag’(펀칭백)이라고 합니다.

지도자가 넘어지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리더는 강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넘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뒷수습’이 중요합니다. 리더는 넘어졌을 때 다양한 방식으로 뒷수습을 합니다. 첫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유형입니다. 해외 방문길에 에어포스원 계단에서 구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매우 아팠을 텐데도 벌떡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악수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유형도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경사진 램프를 내려가다가 넘어질 뻔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램프를 미끄럽게 만들어놓았다고 학교 측에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이든 대통령처럼 농담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유형입니다. ‘웃고 넘어가자’ ‘더는 언급하지 말자’라는 의미입니다. 유머 실력이 좋은 미국 대통령들이 선호하는 유형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순간, 넘어졌을 때 대응법을 알아봤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무대에 오르던 중 넘어지는 모습. 위키피디아


I was so fired up, I missed a stair.”
(너무 흥분해서 계단을 건너뛰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플로리다에서 재선 유세를 벌일 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습니다.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습니다. 대통령의 엉거주춤한 모습에 연신 카메라 셔터가 터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넘어질 뻔한 얘기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fire up’은 ‘작동시키다’ ‘불을 붙이다’라는 뜻입니다. “I’m fired up”이라고 하면 “장전됐다” “준비됐다”라는 뜻입니다. 빨리 무대에 오르려고 계단을 건너뛰다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fired up’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있습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선거 구호이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fired up, ready to go’(예열, 발사 준비 완료)라는 역동적인 구호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넘어지는 상황을 선거 승리와 연결 짓는 재치있는 리액션입니다.

대선 유세에서 넘어진 밥 돌 상원의원. 위키피디아


I just earned my third purple heart going over the rail.”
(난간에서 추락하면서 세 번째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밥 돌 상원의원은 19세의 나이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2개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부상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을 쓰지 못했지만, 정계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1996년 73세의 나이에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그는 유세 중에 무대 난간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고령과 거동 불편이라는 약점이 드러나는 사고였습니다. 바닥에서 일어선 돌 의원은 “세 번째 퍼플하트 훈장 감”이라고 말했습니다. 퍼플하트는 전투작전 중에 적을 공격을 받아 사망, 부상을 당한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입니다. 유세하다가 넘어진 것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것과 동격이라는 유머로 상황을 돌파한 것입니다.

돌 의원은 대선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상황을 반전시키는 유머 실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정계 은퇴 후 ‘정치 셀럽’이 돼서 비아그라, 펩시콜라 등 다수의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2018년 정치 라이벌이자 2차대전 참전 동지인 조지 H W 대통령 장례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불편한 몸을 일으켜 거수경례해서 감동을 줬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손을 잡고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I need to call Philip just to let him know that I’ve been holding hands with another man before it hits the media.”
(다른 남자와 손을 잡은 것이 언론에 나오기 전에 빨리 필립에게 알려야 한다)
2017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회담을 마친 두 정상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손을 꼭 잡고 등장했습니다. 처음 만난 두 정상이, 그것도 남녀 정상이 손을 잡고 나타나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유는 몇 개월 뒤 밝혀졌습니다. 메이 총리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사 공포증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사진 곳에서 넘어질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트럼프 대통령이 로즈가든으로 향하는 램프 경사에 다다르자 메리 총리에게 손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메이 총리로서는 손을 뺄 수도 없는 어색한 상황이었습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보좌관에게 “필립(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남자와 손을 잡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빨리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hit the media’는 ‘언론을 타다’ ‘언론에 쫙 퍼지다’라는 뜻입니다. 앞서 소개한 트럼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연단을 내려갈 때 엉금엉금 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경사 공포증 때문이었습니다.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넘어진 모습. 위키피디아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넘어진 모습. 위키피디아


I’m still in one piece.”
(나는 온전하다)
피델 카스트로는 50여 년 동안 쿠바를 통치했습니다. 2000년대부터 건강이 나빠지면서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기회가 줄었습니다. 2004년 아바나 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그는 연설을 마친 뒤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습니다. 열띤 박수를 보내던 3만여 명의 청중은 그가 쓰러지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쇼맨십이 뛰어난 카스트로는 일어서자마자 마이크부터 찾았습니다. “in one piece”는 “몸이 한 개의 조각이다,” 즉 “다 붙어있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멀쩡하다”라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멀쩡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고로 무릎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오른쪽 팔이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2개월 후 어린 소녀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공식 석상에 나타난 그는 몰라보게 쇠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을 접견할 때 잠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거의 은둔 상태가 됐습니다. 얼마 후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마거릿 대처 총리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계단에서 넘어지는 모습. 위키피디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계단에서 넘어지는 모습. 위키피디아
1982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공산화 이후 중국을 방문한 첫 영국 총리입니다. 중국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과 회담을 마치고 걸어 나오던 대처 총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계단에서 넘어졌습니다.

회담의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회담에서는 영국과 중국의 최대 이슈인 홍콩 반환 문제가 처음 논의됐습니다. 1800년대 아편전쟁을 통해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홍콩을 99년 동안 임차하는 협정을 맺었습니다. 영국령이 된 홍콩은 아시아의 무역 중심지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홍콩의 발전상을 자랑스럽게 여긴 대처 총리는 지배권을 당분간 유지한다는 협상 전략을 가지고 회담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공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대처 총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I could walk in and take the whole lot this afternoon.”
(오늘 오후라도 홍콩에 가서 점령할 수 있다)
‘whole lot’은 ‘홍콩 땅덩어리’를 말합니다. 무력을 써서라도 홍콩 통치권을 회복하겠다는것입니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덩샤오핑의 명언입니다. 충격을 받은 대처 총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There is nothing I could do to stop you, but the eyes of the world would now know what China is like.”(그렇게 한다면 막을 수는 없지만, 세계는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2년 뒤 두 나라는 홍콩 반환 협정에 정식으로 서명했습니다. 12년 동안 ‘철의 여인’으로 군림했던 대처 총리는 자서전에서 홍콩 반환을 재임 중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꼽았습니다. 홍콩 반환으로 기세가 등등해진 중국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The Iron Lady finally succumbed to Mr Deng, an opponent who was harder than steel.”(철의 여인이 철보다 더 강한 적, 덩샤오핑에게 굴복했다)

실전 보케 360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 해리 왕자는 영국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위키피디아
실생활에서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영국 해리 왕자가 런던 법원에 출석했습니다. 타블로이드 언론을 상대로 제기한 불법 정보수집 소송에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데일리미러 등 미러그룹 뉴스페이퍼(MGN) 기사 150여 건이 자신의 전화, e메일을 해킹해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라는 증언을 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변호인이 재판에 출석한 소감을 물었을 때였습니다. 해리 왕자는 한참 생각에 잠긴 뒤 감정이 북받친 듯 이렇게 답했습니다.

It’s a lot.”
(큰일이다)
공개된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경험이라는 의미입니다. ‘a lot’은 ‘많이’라는 뜻으로 ‘many’ ‘much’와 같은 의미입니다. ‘many’는 뒤에 셀 수 있는 명사, ‘much’는 셀 수 없는 명사가 옵니다. ‘a lot’ 뒤에는 셀 수 있는 명사, 없는 명사가 모두 올 수 있습니다. 해리 왕자가 한 말을 좀 더 길게 풀어보자면 “I have to go through a lot of emotions”(만감이 교차한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a lot’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이 쓰는 반면 ‘many’ ‘much’는 좀 더 격식을 차리는 상황에서 씁니다. 친구 사이에서는 “thank you very much”보다 “thanks a lot”을 많이 씁니다. “it means a lot to me”(나에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도 영어권에서 많이 쓰는 감사 표현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8월 17일 소개된 대통령의 신변 안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이 쓰러지면 경호원들이 날쌔게 주변을 에워쌉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입니다. 미국 역사에는 이렇게 긴박한 순간이 적지 않게 발생했습니다.

▶2020년 8월 17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817/102514500/1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 당시 모습. 위키피디아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인근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피신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대통령과 관계없는 총격 사건이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통령이 피신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안위와 관련된 긴급 상황들을 모아 봤습니다.

Do I seem rattled?”
(내가 놀란 것 같으냐?)
10여 분 후 상황이 정리되고 다시 회견장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놀랐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정도 상황쯤이야”라는 의미입니다. ‘rattle’(래틀)은 ‘덜컹거리다’라는 뜻입니다. ‘rattled’는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상황,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I had hoped it was a KGB agent. On second thought, he would have missed.”
(범인이 KGB 요원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만약 KGB였다면 나를 맞히지 못했을 것이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총에 맞았습니다. 정신병을 앓는 존 힝클리라는 청년이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려고 벌인 일이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회복 후 범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배우의 관심을 끌려는 정신질환자의 소행이 아니라 소련 비밀경찰(KGB)의 소행이었으면 하고 바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KGB였다면 자신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던 소련을 조롱하는 유머입니다. ‘on second thought’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부정하거나 수정할 때 씁니다.

From Dallas, Texas, the flash apparently official, President Kennedy died at 1 p.m. Central Standard Time, 2 o’clock Eastern Standard Time, some 38 minutes ago.”
(텍사스 댈러스에서 들어온 긴급 뉴스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이 38분 전인 중부시간 오후 1시, 동부시간 2시에 세상을 떠났다)

1963년 11월 22일 CBS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타계 소식입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the flash apparently official’은 언론계 용어입니다. 당시 밀려드는 통신 내용 중에서 “이건 공식 긴급 속보인 것 같다”라는 뜻입니다. 통신 속보에는 여러 등급이 있습니다. ‘flash’(플래시)는 최고 긴급 수준의 속보를 말합니다. 2001년 9·11 테러 뉴스는 ‘flash’ 속보였습니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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