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vs 트럼프, 4년 만의 리턴 매치?… 여론은 “둘 다 싫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7일 03시 00분


美 대선주자 인물탐구〈10·끝〉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났을 때 4년 후 대선에서 같은 후보가 다시 겨룰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아직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 모두 내년 대선 후보를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81)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7)의 재대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올 4월 재선 도전을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에겐 당내 경선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먼저 출사표를 던진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공화당 내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린다. 두 사람이 모두 최종 후보가 되면 두 명의 같은 후보가 2차례의 대선에서 연거푸 대결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다.

전·현직 대통령의 재대결이 이미 심각한 미국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혐오 발언과 막말로 지지층을 선동했고 상대 진영을 악마화했다. 이를 타개하겠다며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도 현재까지 크게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 3월과 이달 8일 각각 뉴욕 맨해튼 지검과 연방검찰로부터 형사 기소를 당하자 대선 판세를 예측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트럼프 지지층은 강하게 결집하고 있으나 중도층 및 민주당 지지자의 반트럼프 성향 또한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

● 트럼프-바이든 모두 거부감 상당

둘은 모두 강약점이 뚜렷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이라는 우위를 바탕으로 각종 유무형 자원을 쉽게 동원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직을 포함해 부통령 8년, 상원의원 36년 등을 지내며 수십 년간 워싱턴 중앙 정계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기득권 이미지, 사고뭉치 아들 헌터의 각종 사건사고 등은 약점으로 꼽힌다.

끊이지 않는 건강 이상설과 잇따른 말실수 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주요국에서 ‘젊은 지도자’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80대 대통령의 재선까지 지켜봐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그의 건강 상태가 직무 수행에 큰 지장을 줬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고작 네 살 어릴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방검찰로부터 기밀문서 유출과 사법 방해 등 37개 혐의로, 맨해튼 지검으로부터 문서 조작 등 34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이 같은 사법 위험은 공화당 대선 후보가 공식 선출되는 내년 7월까지 그를 따라다닐 가능성이 크다.

설사 유죄가 확정돼도 대선에 출마할 수는 있으나 법적 위험이 큰 인물을 후보로 선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미 헌법은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을 보유하고, 35세 이상에 미국에서 14년 넘게 거주한 사람만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기소되거나 복역 중인 사람의 대선 출마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여론조사에서는 두 사람 모두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여론조사기업 모닝컨설트가 9∼11일 실시한 조사에서 둘의 지지율은 42%로 같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선언한 지난해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약 반 년간 매주 발표한 둘의 지지율 조사에서도 두 사람 모두 40%대 초반의 지지율에 갇혀 있다.

둘 모두에 대한 거부감 또한 높다. 올 4월 NBC방송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70%, 60%였다. “둘 다 출마했으면 좋겠다”는 응답은 5%에 그쳤다.

기소 후 트럼프 지지층은 결집하고 있다. 모닝컨설트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59%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선호한다”고 했다. 당내 경선의 최대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은 19%에 그쳤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위험이 ‘예선’인 공화당 경선에서는 호재일 수 있어도 ‘본선’인 내년 대선에서는 불리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연방검찰이 기소한 사안들은 유죄 확정 시 최소 수십 년의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라며 집권 전 범죄 의혹을 다룬 맨해튼 지검의 기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평했다. 사법 위기가 계속되면 무당층은 물론이고 일부 우파 유권자도 이탈할 것으로 내다봤다.

● ‘경제·경합주 결과’가 좌우

많은 전문가는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미 경기 둔화를 꼽는다. 코로나19 초기였던 같은 해 2분기(4∼6월) 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0%였다. 미 역사상 최악의 분기 성장률이어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 또한 ‘경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등에 따른 공급망 교란 등으로 고물가가 이어져 물가 안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여론조사 회사 유고브의 지난달 27∼31일 조사에서 18%의 응답자는 이번 대선의 최고 의제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의료 복지(12%), 일자리(10%), 기후·환경(10%) 등을 제쳤다.

이를 감안할 때 두 사람 모두 미국 내 일자리 늘리기, 특히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의 부활 공약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모두 ‘미국을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란 슬로건을 썼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집권 후 1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2016년과 2020년 대선의 최대 승부처가 북동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으로 평가받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편이었지만 최근 대선에서는 양당 모두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이 3개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당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 곳이어서 민주당 패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을 얻었다. 2020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을 눌렀다.

간선제와 직선제를 혼합한 미 대선에서 각 주의 유권자는 양당 후보 중 한 사람에게 직접 투표를 한다. 여기에서 이긴 후보가 50개 주 각각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차지한다. 이를 통해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과반을 차지하는 후보가 승리한다.

50개 주 중 많은 선거인단이 배정된 주는 캘리포니아(54명), 텍사스(40명), 플로리다(30명), 뉴욕(28명) 등이다. 이 중 캘리포니아와 뉴욕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고, 텍사스는 공화당 텃밭으로 꼽힌다. 즉, 양당이 모두 사활을 걸고 있는 플로리다를 얻는 사람이 승리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2000년 대선에서도 당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미 전체 득표율에서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를 앞섰지만 플로리다에서 패하는 바람에 백악관 주인 자리를 넘겨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2020년 대선에서 모두 플로리다를 차지했다. 그의 자택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고 연방정부의 기소에 관한 재판 또한 마이애미 연방법원에서 열린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 일부 주는 이미 선거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도 경합주 결과가 승자를 결정지을 것으로 봤다.

● 문화전쟁 의제도 주목

둘은 낙태, 총기, 이민, 인종차별의 역사와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 교육 같은 ‘문화전쟁’ 의제에 대해 정반대 입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보수 성향 대법관을 3명 임명했다. 이로 인해 종신직인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법관으로 채워졌다. 이 같은 인적 구성이 지난해 6월 대법원이 1973년 이후 49년 만에 연방 차원의 낙태권 폐기를 결정한 배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모두에게 좋은 결정”이라고 옹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의 선택권은 근본권”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삼권분립 원칙이 엄격한 미국에서 행정부 수장이 사법부 결정에 정면으로 반발할 정도로 낙태가 보혁 갈등의 핵심 의제임을 보여줬다.

지난달 텍사스주의 한인 교포 부부와 이들의 어린 자녀가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졌을 때도 둘은 충돌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역대 미 대통령 중 최고의 총기 찬성자이자 총기 보유권을 명시한 ‘수정헌법 제2조’의 수호자”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나 더 많은 미국인이 죽어야 하느냐”며 공화당이 자신의 총기 규제 정책에 협조하라고 맞섰다.

미 인종 차별이 개개인의 편견이 아닌 사회 체제 자체에서 기인한다는 ‘비판적 인종이론(CRT)’ 교육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인종 차별 역사의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며 긍정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좌파의 세뇌 교육”이라며 “교실에서 CRT를 몰아내자”고 외친다.

집권 내내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은 난민 캠프가 아니다” “불법 체류자의 미 입국은 ‘침략’”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집권 중 추진한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바이든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며 “재집권하면 다시 장벽을 짓겠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합법 이민자와 불법 이민자를 구분해서 가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 개인사도 대조적… “美 우선”은 공통

둘의 개인사도 대조적이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교도인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탄광촌 스크랜턴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불과 30세에 인근 델라웨어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자수성가형이다. 이후 상원의원, 부통령을 차례로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세 번 도전해 백악관 주인이 됐으며 평생을 워싱턴 정계의 ‘인사이더’로 살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전에는 한 번도 정계에 몸담은 적 없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첫 대선 도전에서 곧바로 백악관 주인이 됐다. 그는 1946년 뉴욕주 뉴욕시에서 부유한 독일계 개신교도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뉴욕 맨해튼 도심 재개발, 인근 뉴저지주의 카지노 도시 애틀랜틱시티 등의 개발에 관여하며 큰돈을 벌었다.

2004∼2015년 NBC방송의 생존 경쟁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며 세계적 유명인이 됐다. 당시 그가 탈락한 예비 기업가에게 날리는 단골 멘트 “넌 해고야”는 국제적 유행어가 됐다. 집권 후 지금껏 적지 않은 나이에도 소셜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것 역시 평생을 대중 노출을 즐기며 살아온 성향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둘의 공통점은 ‘미국 우선주의’ 주창이다. 이로 인해 둘 중 누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도 ‘제2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미 기업 살리기 정책이 계속될 것이며 미중 갈등 또한 쉽사리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 사회 전반이 미중 갈등의 후폭풍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임은정 국립공주대 국제학부 부교수는 “미중 갈등 와중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경쟁적으로 ‘중국 때리기’ 정책 등을 고수하면 한국처럼 ‘낀 나라’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바이든#트럼프#미국 대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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