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위기를 겪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에너지 공급 안정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지만, 석탄발전 보조금 확대를 둘러싸고 입장이 갈리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EU의 에너지 장관들은 19일 룩셈부르크에서 회의를 열고 전력시장 개혁안을 논의했다. EU 집행위원회가 3월 마련한 초안을 바탕으로 이달 말까지 합의안을 낸다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초안에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고정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등 재생에너지의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이 담겨있다.
문제는 상반기(1~6월) EU 순환의장국인 스웨덴이 15일 석탄발전소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연장하자고 갑자기 제안하면서 벌어졌다. 전력의 70%를 석탄발전에 의존하는 폴란드가 2025년 종료 될 예정이었던 보조금 지급 허용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석탄보조금의 취지에 대해 “각국이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전력 용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의 에바 부쉬 에너지장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나라인 만큼, 폴란드의 전력 상황을 안정화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스페인과 프랑스도 폴란드의 사정을 고려해야한다는 데에 공감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은 스웨덴에 이어 다음달부터 6개월간 EU 순환의장국을 맡을 예정이다.
반면 오스트리아와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은 탄소중립을 향한 EU의 노력을 무산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인 석탄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룩셈부르크의 클로드 투르메스 에너지 장관은 “믿을 수 없고 충격적인 제안”이라고 비판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은 “석탄은 독일에게도 중요한 자원이지만, 추가 보조금까지 제공하는 것은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독일 전체 에너지원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3%에 이른다.
결국 이날 카드리 심슨 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전력시장 개혁 잠정 합의안을 내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각국은 논의를 이어가며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 전까지 입법 절차를 마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세계은행은 15일 발표한 보고서 ‘개발을 디톡스하다(Detox Development)’에서 “화석연료 등에 대한 보조금은 세계 기본자산의 파괴를 촉진하고 사람, 지구,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며 ‘환경 유해 보조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국가들이 재정을 통해 화석연료에 직접 지원한 규모는 5770억 달러(약 740조 원)로,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조성하기로 한 기금인 연간 1000억 달러(약 128조 원)의 6배에 이르렀다. 보고서는 “한쪽에선 화석연료에, 다른 쪽에선 기후변화 대응에 돈을 쓰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며 보조금 개혁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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