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치닫던 미중 관계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국면 전환 계기를 맞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양국 관계가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또한 “매우 좋은 일”이라며 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두 정상이 올해 안에 대면회담을 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목표였던 미중 군사 소통채널의 복원은 무위로 돌아갔다. 시 주석이 중국을 미국의 동등한 파트너로 대해 달라는 소위 ‘신형 대국관계’를 주장한 데다 블링컨 장관 또한 미 안보를 위해 공급망 등 경제 분야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 조치를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를 감안할 때 양국 관계에서 당장 큰 변화나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두 나라가 물밑 신경전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블링컨 방중 성과 호평한 美中
바이든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간) 취재진에게 “블링컨 장관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 우리는 올바른 경로에 있다”고 호평했다. ‘미중 관계의 진전을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진전은 이미 이뤄졌다”고 답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블링컨 장관이 시 주석과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또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갈등으로 비화하지는 않도록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정상의 통화 및 회담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 답할 내용이 없다”면서도 “대통령도 언젠가는 (시 주석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 9월 인도 뉴델리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에서 양국 정상이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간 미국을 강하게 비판해온 중국 관영매체 환추시보 또한 20일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미중 관계에 긍정적 진전을 이뤄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존 케리 미 기후특사 등 미 고위 관리가 중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으며 양국 정상의 정상회담 초석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 美 “디리스킹 계속” vs 中 “美 언행일치 중요”
다만 양국이 군사 통신선 재개 합의에 실패한 만큼 미중 관계가 진정한 해빙 국면에 접어들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블링컨 장관 또한 중국을 떠나기 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군사 소통 재개에 동의하지 않았다. 진전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며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대중 반도체 규제를 고수할 뜻도 밝히며 “(시 주석에게) 미 국가안보를 위해 맞춤형 조치를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우리 입장이더라도 같은 일을 했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반도체, 양자컴퓨터 등의 첨단기술 협력 확대를 논의하기로 했다. 모디 총리가 방미 중 무인 공격기 ‘스카이가디언’ 등 미국산 최신 무기 구입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스카이가디언은 인도와 중국이 국경 분쟁 중인 히말라야산맥 인근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언론은 미국의 ‘언행일치’를 거론했다. 환추시보는 “이제 미국의 신뢰성을 검증할 시간”이라며 “양국 관계의 안정 여부는 미국의 ‘언행일치’에 달려 있다”고 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 또한 “미중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복잡한 정치 지형이 야기한 중국에 대한 편견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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