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왕세자의 개혁·개방 성과 알리는 이벤트 UAE, 카타르보다 뒤늦게 뛰어든 ‘국제 이벤트’ 유치 경쟁에서 성과 내야 사회문제는 더욱 논란되고 부각될 수도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함께 내일을 향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놓고 한국(부산), 이탈리아(로마)와 경쟁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의 엑스포 테마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2차 총회의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사우디는 왕실 구성원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부 장관(왕자)와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공주)를 중심으로 이브라힘 알 술탄 리야드 시장, 칼리드 알 팔레 투자부 장관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사우디 정부에서 영향력과 글로벌 감각을 갖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출동한 셈이다.
이들은 PT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총리)가 취임한 뒤 달라지고 있는 사우디의 모습을 강조했다. 리야드에 개발될 예정인 세계 최대 도시공원(킹 살만 공원), 복합 문화 지구인 ‘뉴 무라바(새로운 광장) 프로젝트’, 최첨단 도심 철도망 구축 등이 소개됐다.
칼리드 장관은 공격적인 ‘오일머니’ 투입 계획도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는 2030년까지 3조3000억 달러(약 4314조750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인데, 이 중 30% 이상이 리야드에, 엑스포에는 78억 달러(약 10조 20924억 원)가 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BIE 행사장 밖에서도 사우디의 공격적인 홍보가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는 19일 명품 브랜드의 전시회와 상품 발표 행사 등이 자주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건축물로 에펠탑 근처에 있는 ‘그랑팔레’에서 BIE 회원국 대표단 초청 행사를 열었다. 파리 택시에도 리야드 엑스포 관련 광고를 부착시켰다. 말 그대로 엑스포에 ‘올인’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일단 앞서 나가는 사우디…프랑스, 중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지지 확보
현재 사우디는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우디 최대 영자지인 아랍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79개 BIE 회원국 중 60개국 이상이 공식적으로 사우디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튀르키예, 중국도 포함돼 있다. BIE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프랑스가 이웃 나라이며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에서 오랫동안 협력해온 이탈리아 대신 사우디 지지를 공개 선언한 건 이례적이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모니터에 따르면 아랍의 ‘주적’ 이스라엘도 사우디를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다. 이스라엘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9월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관계 정상화)’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우디가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선전하고 있는 배경에는 당연히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 엑스포 유치 역시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지휘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처럼 직접 PT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BIE 총회 기간 중 파리를 찾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는 등 이른바 행사장 밖에서의 ‘고공 플레이’에 집중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2030 엑스포 유치는 자신이 기획한 국가 중장기 발전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추구해 온 사우디의 개혁‧개방 성과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88)의 나이를 감안할 때, (사우디가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엑스포를 국왕의 신분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등장과 성장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사우디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아직 유치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사우디가 유치에 성공한 대규모 국제 이벤트는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 정도다. 2030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사실상 사우디 건국이래 처음으로 현지에서 열리는 전세계적인 이벤트인 셈이다. 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로서는 엑스포 유치를 국가 위상 제고, 관광 자원 개발, 투자 유치, 국민의 자부심 고취 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며 “한국의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와 유사한 효과를 노린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국제 이벤트 ‘아랍 최초 유치’를 UAE, 카타르에게 내준 아쉬움
‘국가 자존심’ 차원에서도 사우디는 2030 엑스포를 특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이른바 이슬람권과 아랍권의 맹주다. 이슬람교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 메디나)를 보유하고 있다. ‘성지 수호국’이다. 사우디 국왕의 공식 명칭에는 ‘두 성지의 수호자’란 표현도 들어간다.
특히 사우디는 같은 종파(이슬람 수니파), 언어‧문화(아랍), 정치체제(왕정), 경제구조(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지리(아라비아반도와 걸프만)를 공유하는 국가들(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사이에서의 중심국이다. 사우디는 이 나라들과 함께 1981년 5월 정치경제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과 종교 면에서 ‘중심 국가’의 면모를 확실히 갖췄고,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영향력이 큰 나라지만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전세계적 주목을 받는 국제 이벤트를 유치하지 못했다는 건 사우디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특히 이웃나라인 UAE와 카타르가 각각 2020 엑스포(코로나19로 실제로는 2021년 10월~2022년 3월에 열렸다)와 2022 월드컵을 유치한 건 사우디의 아쉬움을 더욱 키운다.
아랍, 나아가 중동 문화에서 부족(집안 혹은 왕실) 간 경쟁 의식은 상당하다. 가령, ‘마즐리스(Majlis‧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가족행사를 여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를 화려하고, 독특하게 꾸미는 문화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강하다. 엑스포를 포함한 국제 이벤트 유치에서도 이런 경쟁 문화가 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UAE나 카타르처럼 ‘작은 나라’가 아랍과 중동의 대표처럼 문화산업에서 주목을 받는 건 사우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삼성물산, 삼성전자, KOTRA에서 근무하며 사우디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윤여봉 중동경제통상포럼 대표는 “GCC 국가들 간에도 경쟁 의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카타르에게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아랍 최초 개최’를, UAE에게 ‘아랍 최초 엑스포 개최’를 빼앗긴 만큼 사우디로서는 2030 엑스포를 유치해 파격적인 규모와 성과를 보여주려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 인권문제 등 더욱 부각될 수도
사우디는 엑스포 유치를 통한 비석유 산업의 육성과 해외 투자 유치 같은 경제 효과도 기대한다. 또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대한 관심 역시 크다.
하지만 ‘사우디가 정말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느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는 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적잖다. 사우디는 중동지역본부를 자국에 둔 기업만 정부와 공공부문 사업 입찰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2021년 초에 밝혀 큰 논란을 빚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를 전세계적인 인물로 부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네옴 프로젝트’ 역시 세부 전략이나 계획에서 잦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국제PR)는 “중·장기적으로 한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는 정책과 제도의 안정성도 포함된다”며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들은 인프라나 이벤트 같은 하드웨어적 홍보 수단 못지않게 정책과 제도의 안정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2030년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 등과 관련된 인권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타르도 2022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큰 논란이 됐었다. 이 교수는 “사우디가 최종적으로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인권문제는 물론이고 다른 사회문제들도 꾸준히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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