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 시간) 초유의 무장 반란을 일으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프리고진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양측이 내내 혈투를 벌여온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요충지 바흐무트를 장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바흐무트와, 프리고진이 반란 과정에서 점령한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는 불과 195km 떨어져 있다. 러시아가 내분에 대응하느라 바흐무트 등을 사수하는 데 공백이 생겼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던 대반격 속도를 대폭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휩싸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의 추가 무기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허용을 촉구했다. 다만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큰 내상을 입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오히려 우크라이나 공격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쟁 판세에 대한 양측의 유불리는 아직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젤렌스키 “F-16 지원-나토 가입 허용”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악(惡)의 길을 택하는 이는 자멸한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더 오래 머물수록 러시아가 황폐해질 것”이라며 빠른 철군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을 향해 “F-16 전투기와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지원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또한 허용해 달라”고 촉구했다. 나토 회원국을 위협하는 러시아에 대한 공동의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러시아 엘리트 사이의 분열이 명백하다”며 푸틴 정권이 사태가 해결된 듯 행동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나 말랴르 국방차관 또한 “우리에게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반겼다. 벨라루스 매체 넥스타는 러시아군이 바그너그룹과의 내분으로 헬리콥터 6기, 항공관제기 1기 등 최소 7대의 비행기를 잃었다고 전했다.
서방 주요국도 우크라이나 지지를 재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휴양지 캠프데이비드 방문 계획을 잠시 미루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과 통화했다. 네 정상은 모두 우크라이나 지원을 다짐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당초 27일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 곳곳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대가로 이들 나라의 광물 사업 등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제재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것이 푸틴 정권과 바그너그룹 사이에서 푸틴 측을 편드는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제재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 전했다.
● 우크라 영토 수복 속도 빨라질 듯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바그너그룹이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한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총괄하는 러시아 남부군관구의 지도력에 상당한 타격을 안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영국 가디언 또한 러시아군의 사기가 떨어지면 우크라이나가 올여름 빼앗긴 영토를 빠르게 수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부터 돈바스에 병력을 대거 배치했다. 지금까지 최소 5만 명의 용병을 투입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반격으로 러시아 정규군이 쉽사리 장악하지 못했던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은 바흐무트 전투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유혈이 낭자한 전투”라고 평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에 탄약 등 물자 보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바흐무트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을 봤다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정규군 수뇌부를 줄곧 비판했다.
러시아의 내분 소식을 접한 우크라이나에서는 바그너그룹의 탱크와 장갑차가 로스토프나도누에 입성하는 영상을 보고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속속 목격됐다. 반(反)푸틴 성향이 강하며 전쟁 종식을 원하는 일부 러시아인도 마찬가지였다. 적지 않은 로스토프나도누 시민은 프리고진이 24일 도시를 떠나기 전에 박수를 보내고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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