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맞서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이 수도 모스크바로 돌진하던 중 극적으로 반란을 멈췄다. 러시아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를 통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철군하는 조건으로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하며 사태는 36시간 만에 일단락됐다. 하지만 ‘스트롱맨’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더해 통제력 약화까지 노출시키며 23년간의 장기 집권 중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24일(현지 시간)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기지로 철수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무장 반란의 이유에 대해 “그들(러시아군)이 바그너그룹을 해체하려고 해 우리는 23일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모스크바로) 정의의 행진을 시작한 것”이라며 “하루 만에 모스크바 200km 이내까지 왔다”며 전력을 부각시켰다.
중재를 이끌어낸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푸틴 대통령과 합의하에 루카셴코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협상했다”고 밝혔다. 합의 도출 직후 바그너그룹은 이날 오후 늦게 반란을 통해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푸틴 대통령이 긴급 TV 연설을 통해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이라며 ‘가혹한 대응’을 예고했지만, 합의 도출 이후 크렘린궁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을 취소했다.
무장 반란은 36시간 만에 중단됐지만 2000년 집권 이후 강력한 통솔력으로 ‘스트롱맨’으로 불린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 바그너그룹은 하루 만에 800km를 진격해 모스크바 코앞까지 다다랐다. 푸틴 대통령이 통제하지 못하는 세력이 얼마든지 모스크바로 빠르게 진격해 권력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반란은 실패했지만 그 충격파는 몇 달간 계속돼 정치적 불안정을 부채질하고 푸틴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적합한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6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세에도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악의 길을 택하는 자는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며 이번 사태를 반격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달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반격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24∼48시간이 상황 전개에 결정적인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프리고진, 푸틴 집권후 크렘린궁 연회 주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 만들어 해결사 역할
北, 바그너그룹에 미사일 등 제공 반란 이후엔 바로 푸틴 편들어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나 이번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바그너그룹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 북부 부차 등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용병 모집을 위해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인 재소자, 후천면역결핍증(AIDS) 환자 등도 받아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이들의 잔혹함과 각종 만행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여론전에서 크게 밀리는 계기가 됐다.
프리고진은 1961년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2대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절도, 강도, 사기 등으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들었고 출소 후 핫도그 장사로 돈을 벌었다. 1997년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의 눈에 들어 그와 가까워졌다. 푸틴의 집권 후 크렘린궁의 연회에 각종 음식을 제공했고 당시 러시아를 찾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인사를 접대해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20여 년 전 자녀들과 동화책을 펴낸 이력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한 2014년 프리고진은 체첸 전쟁에서 활약한 전직 특수부대원 드미트리 웃킨 등과 바그너그룹을 만들었다. 나치 독재자 히틀러를 추종하던 웃킨이 히틀러가 좋아한 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이름을 붙였다.
바그너그룹은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친러 세력을 지원하며 우크라이나 정부와의 대립을 부추겼다. 시리아 리비아 수단 말리 등 중동과 아프리카 주요국에서는 현지 독재 정권을 도우며 광물 채굴 등 각종 이권 사업을 따냈다. 바그너그룹이 챙긴 돈의 대부분이 푸틴의 통치 자금으로 쓰였다는 관측이 많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해 1월부터 수천 명의 바그너 요원을 우크라이나로 보내 사회 불안을 조장했다. 침공 이후에는 “2, 3일 만에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할 수 있다”고 호언하던 러시아 정규군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자 프리고진이 푸틴의 신임을 믿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파워게임을 벌인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반란으로 양측의 불화가 사실로 드러났다.
현재 바그너그룹이 어느 정도 전력을 유지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영국 국방부는 올 1월 “바그너그룹이 우크라이나에서 5만 명의 전투원을 지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바그너그룹과 북한의 관계도 관심이다. 지난해 12월 미 백악관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 쓰일 미사일, 로켓 등을 러시아군 대신 바그너그룹에 인도했다”며 양측의 밀착을 공식화했다.
다만 김정은 정권의 전복을 가장 두려워하는 북한은 반란 이후 바그너그룹이 아닌 푸틴 정권의 편에 섰다. 2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임천일 외무성 부상은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대사를 만나 “반란이 순조롭게 평정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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