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9일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함께 번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며 “미중이 앞으로 더 자주 정기적으로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전략경쟁이 신(新)냉전을 부르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양국이 경제대화 정례화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중국의 희귀 금속 수출 통제 등 양국 핵심 현안에 대한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
옐런 장관은 이날 사흘 일정을 마치며 베이징 주중국 미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은 양국에는 재앙, 세계에는 불안정을 부를 뿐만 아니라 실행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측 리창(李强) 총리, 허리펑(何立峰) 부총리 등과 연쇄 회담한 옐런 장관은 “이틀간 총 10시간가량의 회담에서 미중 관계를 더 확실한 기반에 올려놓기 위한 노력에서 한 걸음 진전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반도체 등을 둘러싼 양국 경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어느 하나 도출하지 못했다. 옐런 장관은 “양국은 중대한 이견을 보였다”며 “어느 누구도 미중 문제를 하룻밤에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중국의 반(反)간첩법과 경제 보복에 우려를 표명하고 신흥국 부채 탕감 등을 압박했다. 중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 철회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매체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미중 고위급 경제대화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평가했다. 또 허 부총리가 미국의 각종 규제와 관련해 “국가안보를 일반화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제, 무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옐런, 中과 ‘윈윈’ 강조했지만… “안보 위한 맞춤형 규제는 계속”
옐런 “양국경제, 상생하는 관계 가능” ‘디리스킹’ 대신 ‘공급망 다변화’ 표현 수출규제 등 핵심 현안 이견 못좁혀 고위급 경제대화 재개 합의는 성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중(訪中)으로 미중이 정례적인 고위급 경제대화 재개에 합의하면서 무역, 기술, 산업 등 경제 전반으로 격화되던 갈등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중국의 희귀 금속 수출 통제 같은 핵심 현안에는 평행선을 그렸다. 잇단 고위급 소통으로 미중 관계 안정화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양국 간 패권 경쟁의 방향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수출 규제-경제 보복에는 ‘중대 이견’
미국과 중국은 옐런 장관 방중에 대해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상호 평가했다. 그럼에도 어느 현안 하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옐런 장관이 9일 방중 일정을 마치며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중대한 의견 차가 있다”고 말한 이유다.
옐런 장관은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미국은 국가안보를 위해 맞춤형(targeted)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경제대화 재개와는 별개로 대중 압박 조치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미국은 이달 중 중국의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미국 기업 등의 투자 제한 조치도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이 이번 방중의 주요 현안으로 지목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에 대해서도 “미국의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옐런 장관은 또 반(反)간첩법 등을 통해 중국 당국이 미국 기업의 중국 내 활동을 위축 또는 제한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지식재산권 문제와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분야 기업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지급 같은 비(非)시장 정책에 대해서도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 역시 갈륨, 게르마늄 등 희귀 금속 수출 통제 같은 미국을 겨냥한 조치들을 개선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펑(何立峰) 중국 부총리는 8일 옐런 장관을 만나 반도체 수출 규제, 첨단기술 투자 제한 같은 미국의 대중 조치들을 겨냥해 “국가안보를 일반화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제와 무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디리스킹’ 대신 ‘경제적 윈윈’ 꺼내든 美
핵심 현안에 대한 명확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중 간 경제대화 재개를 두고 양국이 갈등 관리 국면으로 가겠다는 신호를 명확히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옐런 장관은 중국 측 당국자들을 잇달아 만나며 총 10시간가량 회담 일정을 소화했다.
옐런 장관은 방중 내내 양국 경제가 승자독식이 아닌 상생하는 ‘윈윈’ 관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세계 최대의 두 경제대국을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하는 것은 양국에 재앙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할뿐더러 실질적으로 실행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방중 기간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디커플링을 대체해 쓰고 있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이라는 표현조차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중요 공급망 다변화’ ‘맞춤형 조치’ 등의 표현을 사용해 중국의 우려를 달래려고 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주목할 만한 표현 변화”라며 “(미중 관계에) 돌파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대국 사이의 냉랭한 관계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옐런 장관 방문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깊고, 솔직하고, 실무적인 교류를 진행했다. 회담이 건설적이었다”며 “양측은 교류와 상호작용을 유지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9일 “중국 매체들은 옐런 장관이 젓가락으로 중국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도하며 ‘중국 음식 애호가’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리창(李强) 총리도 7일 옐런 장관을 만나 “미중 관계에서 더 많은 무지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