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업계가 17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중국에 대한 추가적인 반도체 수출 규제를 자제해달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달 중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으로 수출 규제 확대를 추진하자 이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일방적인 규제를 반복하는 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공급망을 교란하며 중국의 지속적인 보복 확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가) 동맹국들과 완전히 조율됐는지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추가적인 규제를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발표한 데 이어 최근 낮은 사양의 AI 반도체로 수출 규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인텔과 퀄컴 등에 부여했던 화웨이에 대한 수출 승인 면허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SIA는 인텔과 IBM,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반도체 업체는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이 소속된 반도체 관련 최대 민간 단체다. SIA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반대 성명을 낸 것은 처음으로, 이는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이 추가 규제로 사실상 차단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SIA가 대중 수출 규제 강화를 공식 반대하고 나서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보다 적극적인 의견 제시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중 규제 피해를 입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던 국내 업계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의 역풍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규제를 무기로 중국과 ‘반도체 전쟁’을 벌여온 바이든 행정부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 수출 규제를 늦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은 이날 인텔과 퀄컴, 엔비디아 등 미 반도체 업계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반도체 규제 등 중국 정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백악관 회동에서도 추가 수출 규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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