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전 미중 협력 올바른 선택해
100세-100번 이상 방중 특별 의미”
‘미중간 긴장 관리 의지’ 해석 나와
키신저 “양국관계, 세계평화와 직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1970년대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핑퐁외교’의 주역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여러 차례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났다. 하지만 미중 양국이 반도체 규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좀처럼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만남이라 이목이 쏠렸다. 시 주석이 특히 키신저 전 장관을 향해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며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면서 잇단 미 고위급 인사의 방중에도 진전을 보지 못하는 관계 정상화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 ‘오랜 친구’ 키신저 환대한 中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5호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접견하고 “키신저 박사가 최근 100세 생일을 맞았고 중국을 100번 이상 방문했다”면서 “‘두 개의 100’이 겹쳤다는 점에서 이번 방중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뜻의 ‘대덕필수(大德必壽)’라는 성어도 언급했다.
이날 두 사람이 만난 국빈관 5호는 1971년 당시 비밀리에 방중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키신저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만났던 곳이다. 시 주석은 “52년 전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저우 총리, 닉슨 대통령과 당신은 탁월한 전략적 안목으로 중-미 협력이란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서 “이는 양국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은 정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는 라오펑유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신뢰하는 외국의 고위급 인사를 지칭할 때 ‘라오펑유’라는 표현을 쓴다.
시 주석은 “중국과 미국은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섰다”면서 현재 미중 관계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미중 관계의 3대 원칙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상생’을 강조한 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양국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에 대해 논의할 용의가 있고, 이는 양국 모두는 물론 세계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신과 미국의 지식인들이 중-미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를 두고 시 주석이 미중 수교의 발판을 만든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양국 간 긴장을 관리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키신저는 “미중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세계 평화와 인류 사회의 진보와도 직결된 문제다”라고 화답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키신저 전 장관이 개인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았지만, 귀국하면 현지에서 받은 인상을 미 정부에 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케리 기후특사, ‘빈손 방중’ 마쳐
키신저 전 장관은 18일 중국 방문 직후 가장 먼저 미국의 제재 대상인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장관)을 만났고, 19일에는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도 회담했다. 이를 두고 미 정부가 사실상 리 부장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양국 간 단절된 군사 소통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 미 고위급들의 잇단 방중에도 미중 갈등에 직접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16일부터 베이징을 방문한 존 케리 미 백악관 기후특사도 공동성명 없이 19일 일정을 마쳤다.
케리 특사는 “솔직한 대화를 나눴고 결과에 실망하지 않는다. 대화 자체가 진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반면 시 주석은 19일 한 행사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이르기 위한 수단과 속도는 중국 스스로 결정하고 다른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연설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양국 간 대표적인 협력 분야로 꼽히는 기후변화 이슈에서도 중국은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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