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면 때문에 신문을 못 끊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신문사에서는 스포츠 기자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
스포츠 전문 매체 ‘애슬레틱(The Athletic)’의 앨릭스 매더 공동 창업주(43)는 2017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매더 창업주는 “출혈경쟁을 해서라도 능력 있는 기자들을 계속 영입하겠다”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에 있는 모든 신문의 스포츠면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트니스 트래킹 애플리케이션(앱) ‘스트라바’ 제작사에서 일했던 매더 창업주는 “돈을 주고도 고품질 스포츠 기사를 읽고 싶어 안달인 독자가 세상에 수백만 명은 있을 것”이라며 직장 동료 애덤 핸스먼(35)과 함께 미디어 스타트업 애슬레틱을 설립했다. 애슬레틱에는 처음부터 광고가 전혀 없었다. 대신 독자에게 구독료로 1년에 60달러(약 7만5000원)를 받았다.》
애슬레틱은 설립 후 7년이 지나 ‘스포츠 기자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목표 하나를 이뤘다. 지난해 1월 5억5000만 달러(약 6950억 원)에 애슬레틱을 인수한 NYT는 이달 10일 “스포츠부를 없애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신 애슬레틱에 스포츠면 제작을 맡겼다. NYT는 “기존 스포츠부 기자들은 부서를 옮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과 얽혀 있는 스포츠 이슈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NYT 스포츠부는 ‘스포츠 저널리즘의 원칙’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직이다.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채드윅(1824∼1908)이 NYT를 통해 타율, 평균자책점 같은 야구 기록을 소개했고,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2013년 퓰리처상 수상작 ‘스노폴’을 제작한 존 브랜치 기자(56) 역시 부서가 없어지기 전까지 NYT 스포츠부 소속이었다.
‘모든 신문사 스포츠면을 대체하겠다’고 떵떵거렸던 애슬레틱은 어쩌다 신문사 조직 일부가 된 걸까. 반대로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때도 그리스에 취재 기자를 파견했던 NYT 스포츠부는 어쩌다 8년 차 신생 미디어에 지면을 내주게 된 걸까. 제일 큰 이유는 ‘좋은 뉴스를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 21세기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디트
애슬레틱은 2019년 11월 12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휴스턴이 전자 장비로 사인을 훔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MLB를 뒤흔든 사인 훔치기 파동의 시작을 알린 기사였다. 이 기사 이후 MLB 감독 3명과 단장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기사를 보면 애슬레틱이 추구하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기사가 길다. 한국 신문에서는 200자 원고지 10장만 넘어가도 ‘큰 기사’로 취급받는다. 사인 훔치기 기사는 원고지 70장도 넘는다. 두 번째는 ‘스타 기자’다. 이 기사를 쓴 켄 로즌솔 기자(51)는 폭스 스포츠, 에번 드럴릭 기자(37)는 휴스턴 크로니클에서 각각 간판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애슬레틱은 온라인 매체지만 ‘클릭 수’로 성과를 측정하지 않는다. 해당 기사를 읽고 유료 독자가 된 ‘전환율’에 더 무게를 둔다. 기사를 많이 쓰는 것보다 ‘돈을 내고서라도 읽고 싶은 기사’를 쓰는 게 중요하다. ‘속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는 2, 3일이 지나더라도 본인만의 관점과 ‘뒷이야기’ 등으로 차별화된 기사를 쓰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덕에 애슬레틱은 이전 회사에서 기사를 쓰고 또 쓰는 데 지쳐 있던 스타 기자를 대거 영입할 수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뿐 아니라 영국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취재하던 기자들도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올스타 취재진’을 꾸리자 특종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애슬레틱이 연이어 특종 기사를 터뜨리면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가지고 있던 스포츠 언론 최고 공신력을 애슬레틱이 가져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주겠다’는 조건만으로 스타 기자들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스타 군단을 유지하려면 인건비도 그만큼 많이 들었다. 애슬레틱은 2020년 구독자 100만 명을 확보했지만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0, 2021년 2년간 쓴 돈(1억 달러)이 벌어들인 돈(7300만 달러)보다 많았다. 애슬레틱은 결국 2021년 직원 46명을 정리 해고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애슬레틱에 손을 내민 곳이 바로 NYT였다. 애슬레틱 공동 창업주 두 명은 매각 결정 이후 “NYT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스포츠 저널리즘에 가장 헌신해온 매체다. 우리가 뽑은 기자들이 최종적으로 이런 곳(NYT)에서 일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매더 창업주는 “‘왜 파느냐’고 묻는다면 ‘NYT가 저널리즘이라는 미션에서 우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NYT와 함께한다면 우리가 ‘슈퍼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보병 400명 vs 파일럿 40명
문제는 애슬레틱이 ‘육군 보병’이 가득한 매체인 반면 NYT 스포츠부에는 ‘공군 파일럿’이 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NYT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에서도 ‘큰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매일 벌어지는 프로 스포츠 리그 경기 결과를 전하기보다 올림픽이나 테니스 메이저 대회 같은 국제적인 이벤트에 취재 역량을 집중하고 있던 것이다.
이런 ‘고공 전략’은 NYT가 스포츠부 기자 40명 안팎으로도 ‘압도적인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던 이유였다. 반면 애슬레틱은 400명 넘는 기자가 일하는 조직이었다. NYT에서 애슬레틱을 인수하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됐다.
조직 문화도 달랐다. NYT 기자들은 리그 최우수선수(MVP)나 명예의 전당 헌액자 등을 선정하는 ‘기자단 투표’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기자는 뉴스를 전하는 사람이지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이유였다. 반면 애슬레틱 기자들은 투표가 끝날 때마다 ‘내가 이렇게 표를 던졌다’고 자랑하기 바쁘다.
애슬레틱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던 NYT 스포츠부 기자들은 9일 데이비드 퍼피치 NYT 이사(46)에게 부서의 미래에 관해 묻는 e메일을 보냈다. 퍼피치 이사는 애슬레틱 인수를 주도한 뒤 발행인을 맡고 있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NYT 회장(43)과 사촌이기도 한 퍼피치 이사는 e메일을 받은 다음 날 ‘스포츠부를 없애기로 했다’고 답장을 보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전문석사(MBA) 학위를 받은 퍼피치 이사는 2011년 경영 컨설턴트 자격으로 NYT의 유료화 작업을 이끈 인물이다. 이후 애슬레틱뿐만 아니라 낱말 풀이 게임 ‘워들(wordle)’, 상품 리뷰 매체인 ‘와이어커터’ 인수에도 앞장섰다. 그는 “우리는 매체가 아니라 팬덤(fandom)을 인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덤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NYT의 애슬레틱 인수는, ‘스포츠부를 없애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윈윈’이었다. 애슬레틱은 NYT에 인수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구독자를 330만 명으로 늘렸다. NYT 전체 온라인 유료 독자도 2022년 말 960만 명을 넘어섰다. 당초 2025년까지 1000만 구독자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던 NYT는 2027년까지 온라인 유료 독자 1500만 명을 확보하는 것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애슬레틱은 그래도 적자다. ‘할인 이벤트’를 통해 구독자를 늘린 영향이 크다. 지난 1년간 애슬레틱의 적자 규모는 3700만 달러 수준으로 NYT의 전체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애슬레틱은 결국 지난달 기자 20명을 추가로 해고했다. 퍼피치 이사는 2025년이 되면 애슬레틱의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실제 결과는 시간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 좋은 저널리즘, 좋은 비즈니스
NYT 쪽도 사정이 녹록지만은 않다. NYT 경영진이 애슬레틱에 스포츠면 제작을 일임하자 NYT 노동조합은 “노골적인 노조 파괴 시도”라며 규탄하고 나섰다. 노조가 없는 애슬레틱 기자들에게 스포츠면 제작 업무를 맡기는 것 자체가 신문 제작을 ‘외주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NYT 노사는 최근 2년간 임금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NYT 편집국 노조원 약 1500명의 연봉은 2년간 동결 상태였다. NYT 노조는 지난해 12월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파업까지 했다. 결국 5월 극적으로 새 단협을 체결했지만 이번 사태로 봉합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노사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스티븐 던바존슨 NYT 인터내셔널 회장은 “좋은 저널리즘은 좋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NYT처럼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매체조차 기대만큼 돈을 많이 벌기가 쉽지 않다.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면 돈이 생각보다 정말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연구 기관인 렌페스트 연구소의 짐 프리들릭 최고경영자(66)는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가격결정권(pricing power)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언론사에서 ‘프리미엄급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정한 가격에 내놓는다면 독자들은 ‘그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불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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