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치령 북마리아나 제도에 속한 티니언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 폭격기들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발진하던 곳이다. 미군은 1944년 7월 24일 이 섬에 상륙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해 8월 2일 섬을 점령했다. 미군은 당시 이 섬 동부와 북부에 웨스트 필드 비행장(현 티니언국제공항)과 노스 필드 비행장을 건설해 일본 본토를 공습할 기지로 만들었다. 미군 B-29 폭격기들은 연일 이 섬에서 출격해 도쿄를 포함한 일본 주요 도시를 폭격했다. 이곳에서 발진한 B-29 폭격기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도 했다. 지금도 원자폭탄 탑재 지점 표지판이 남아 있다.
티니언섬에 F-22 모인다
티니언섬은 면적이 약 101㎢밖에 되지 않는다. 사이판에서 남쪽으로 5㎞, 괌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져 있으며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발견하면서 식민지가 됐다. 이후 이 섬은 1899년과 1914년 각각 독일, 일본 손에 넘어갔다. 일본은 1939년 이곳에 비행장 등 군사기지를 만들었는데 당시 많은 조선인이 징용으로 끌려갔다. 일본군은 미군에 패해 이 섬에서 후퇴하면서 조선인들을 죽이거나 자살하도록 강요했다. 당시 살아남은 조선인은 2500여 명으로, 이들 중 일부가 원주민인 차모로족과 결혼해 섬에 남았다. 섬 전체 인구 3500여 명 중 40%가 이들의 후손이다.
미국이 최근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와 F-35A를 티니언섬에 배치하는 훈련을 빈번하게 실시하고 있다. 미 공군은 3월 1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있는 F-22를 처음으로 티니언섬에 배치했다. 괌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가장 중요한 군사 요충지 중 하나다. 미군은 그간 본토와 하와이, 알래스카, 일본 등에 흩어져 있던 F-22 25~28대를 괌에 집결하는 훈련을 실시해왔다.
F-22는 중국과 군사적 충돌 상황이 발생할 때 미국이 가장 먼저 투입하는 전략 자산이다. 5세대 전투기인 F-22는 스텔스 기능이 뛰어나 적 레이더망을 뚫고 핵심 시설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최고속도는 마하 2.5, 작전 반경은 2177㎞에 달한다. 미 공군은 F-22 180여 대를 보유 중인데, 정비 등으로 절반가량만 임무에 투입할 수 있다. 미 공군이 임무 수행이 가능한 F-22 중 30%에 가까운 전력을 괌에 집결하는 작전을 벌여온 목적은 중국을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미 공군은 통상적으로 F-22 6~12대를 특정 지역에 배치한다.
문제는 중국이 F-22가 집결하는 괌을 둥펑(DF)-26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1300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250여 기는 중국 본토에서 4800㎞ 떨어진 괌의 주요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중국은 훙(H)-6 전략폭격기에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해 괌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북한도 IRBM 화성-12형으로 괌을 위협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선 괌에 공군력을 집중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中 의사결정 복잡하게 만들 것”
미 공군은 약점을 보완하고자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중앙·분산 체계)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허브 앤드 스포크는 물류 및 운송 분야 용어다. 각각의 출발지(spoke)에서 나오는 물량을 중심 거점(hub)에 모아 분류한 후 도착지(spoke)로 배송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전거 바퀴의 중심축과 바퀴살을 연상케 한다. 미국 측 전략은 각 지역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 공군 전력을 괌에 집중 배치했다가 이를 인근 지역들로 분산하되 유사시 최단시간 내 이를 전개할 능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미 공군은 허브 앤드 스포크 전략의 숙달을 위해 ‘신속한 전투임무 전술’(Agile Combat Employment·ACE)을 수시로 훈련하고 있다. F-22가 괌에서 티니언섬으로 신속히 이동한 것도 이 전술의 일환이다. 미 공군은 2월 F-35A 스텔스 전투기를 티니언섬에 이동·배치하는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미군은 현재 활주로가 하나밖에 없는 티니언국제공항을 확장하고 있으며, C-17 수송기를 이용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했다.
티니언섬 남쪽 항구에도 공항까지 연료 공급용 파이프가 건설되고 있다. 연료 저장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존 클라인 미 공군원정센터 사령관은 “허브 앤드 스포크 전략은 중국의 의사결정 매트릭스를 복잡하게 만들려는 것”이라며 “그들이 한 지점을 공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투력을 투사할 또 다른 곳이 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도 “중국군이 보유한 장거리 정밀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의 양과 질이 증가하고 있다”며 “더 많은 지역에 공군 전력을 분산하면 생존력이 그만큼 향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 공군은 사이판에서 남쪽으로 136㎞, 괌에서 50㎞ 떨어진 로타섬에도 티니언섬처럼 군사기지를 만들고 있다. 미국 자치령인 로타섬은 면적이 약 85㎢로 2400여 명밖에 살지 않지만 활주로가 1개인 국제공항이 자리한다. 미 공군은 이곳에 F-22 등 전투기들을 이동·배치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공군은 북마리아나 제도의 가장 큰 섬인 사이판에서도 F-22와 F-15 등을 분산 배치할 수 있도록 국제공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필리핀이 제공하는 9개 군사기지에 전투기 등을 분산 배치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필리핀은 2월 미국과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기존 5곳 이외에 추가로 군사기지 4곳을 미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만과 인접한 북부 카가얀주의 카밀로 오시아스 해군기지와 랄로공항, 이사벨라주의 멜초르 델라 크루즈 훈련장,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군 기지를 구축한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에 인접한 발라박섬이다. 기존 군사기지 5곳은 팔라완섬 안토니오 바티스타 공군기지와 마닐라 북부 클라크 공군기지 등이다.
이들 기지는 필리핀 주권 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주요 시설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일부 기지에 탄약 저장소, 지휘 통제 시설 등을 설치할 수는 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필리핀 정부와 협상을 통해 전투기 등 공격용 무기를 배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필리핀·호주·파푸아뉴기니와 협력
미국은 호주 북부에도 비행장을 공동 개발하는 등 더 많은 군사 자산을 배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최근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와도 국방협력협정을 맺고 이 지역 시설에 접근하는 권한을 확보했다. 미 공군은 도서 지역 활주로를 임시 기지로 신속히 전환할 수 있도록 소규모 인력으로 ‘항공 모빌리티 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활주로를 신속하게 준비하고 급유 시설을 구축하는 임무를 맡는다.
미 공군은 서태평양의 자국 영토인 웨이크섬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비밀 군사기지로 만들고 있다. 웨이크섬은 하와이로부터 3700㎞, 일본 본토로부터 3204㎞, 괌으로부터 2430㎞, 중국 본토로부터 5000㎞ 떨어져 있다. 면적이 약 7.4㎢, 전체 해안선 길이가 19㎞에 불과한 이곳은 일종의 산호섬이다. 미국은 일본의 태평양 진출을 막고자 1935년부터 이곳에 비행장을 건설하는 등 군사기지를 설치한 바 있다. 이곳을 거점으로 하면 일본군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얘기를 들어온 이 섬을 두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과 일본군이 격전을 벌였다.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군이 한때 섬을 점령했지만 미군 반격으로 패퇴했다. 6·25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이곳에서 비밀 회담을 하기도 했다.
웨이크섬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과 북한이 괌의 미군 기지들을 공격하면 미군이 공군 전력을 이동·배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B-52H 등 전략폭격기들을 이곳에 배치하기 위해 활주로를 확장했고, 연료 등 보급시설을 대폭 보강했다. 전략폭격기는 3㎞에 달하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 지금까지는 미국 본토나 괌에서 출격해왔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웨이크섬을 포함해 서태평양 섬들에 활주로 등 군사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중국의 공격에 대비하는 동시에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이 어디에서 자국을 공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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