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제1야당인 중도우파 국민당(PP)이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집권 사회노동당(PSOE)을 제치고 1당에 올랐다. 국민당은 5월 지방선거에 서도 17개 광역자치주 중 11개를 석권한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사회당을 눌렀다.
전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물가와 반(反)난민 기조가 확산되면서 복지를 강조하는 좌파 정당이 힘을 못 쓰는 흐름이 뚜렷하다. 다만 국민당과 사회당 모두 하원 350석의 과반(176석) 확보에는 실패해 다른 정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해졌다. 당분간 스페인 정계의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개표 결과 국민당은 2019년 총선(89석)보다 47석이 증가한 136석을 얻었다. 사회당은 122석으로 4년 전(120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난민, 반낙태 및 동성애, 카탈루냐와 바스크의 독립 반대 등을 외치는 극우 정당 ‘복스’는 33석을 가져갔다. 좌파 정당 연합 ‘수마르’는 31석을 차지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민당의 승리 배경으로 “소득 재분배 같은 좌파 이념보다 투자 촉진 같은 경제성장 화두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제난 또한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2019년 12월 0.8%에 불과했던 스페인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7월 10.8%까지 치솟았다. 유권자가 피부로 느끼는 식료품 물가는 올 6월 10.3%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4분기(10~12월) 가구당 가처분소득은 2019년 4분기에 비해 2.4% 줄었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EU) 전체는 1.3%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전유럽을 강타한 폭염 등 이상기후로 스페인이 큰 타격을 입은 가운데 산체스 정권의 지지부진한 기후위기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다.
다만 4년 전 총선에서 52석을 얻었던 복스가 19석을 잃는 바람에 국민당이 복스와 연정을 구성한다 해도 과반에는 7석 못 미치는 169석에 그친다. 1975년 스페인의 민주화 후 사상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집권에 참여할 가능성을 경계한 유권자들의 반극우 표가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과 수마르의 합계 의석은 이 보다 더 적은 153석이다.
국민당과 사회당 모두 바스크국민당, 카나리아연합 등 군소정당과의 추가 연합이 불가피해상당기간 정국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정 협상에는 시간 제한이 없어 몇 달 동안 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아예 총선 재실시 가능성마저 거론한다.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국민당 대표는 산체스 총리를 제치고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1당이 확정된 후 연설에서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모든 정당과 대화하겠다”며 연정 협상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북서부 갈리시아주 출신으로 주(州) 우정공사 사장, 주 주택장관 등을 지냈으며 중도우파 개혁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민당 대표로 취임한 지 1년 3개월 만에 총선 승리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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