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수출규제와 투자 제한 조치 등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 및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이 구형(legacy)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구형 반도체를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정보기술(IT) 제품에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기존 스마트폰이나 군용 전자장비 등에 필요한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AI나 슈퍼 컴퓨팅 같은 첨단 산업에 사용되는 반도체 및 제조 장비 수출을 미국이 규제한 지난 9개월 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세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22%, 23% 감소했다. 미국이 미국 반도체 장비를 사용해 외국 기업이 제조한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영향이 컸다. 반도체 수입 감소분의 40%는 대만산, 30%는 한국산이었다.
중국은 구형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구형 반도체를 최첨단 AI에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를 위해 미국 수출규제를 받지 않는 구형 반도체 생산 장비와 시설을 늘리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은 중국 판매 증가로 올 2분기(3~6월) 매출이 27%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또 중국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구형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2026년까지 8인치, 12인치 웨이퍼(반도체 기판) 제조 공장을 26개 건설할 예정이다. 미국은 현재 16곳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의 구형 반도체 생산 확대를 우려하며 이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미 블룸버그통신이 지난달 31일 전했다. 구형 반도체는 오래된 기술이지만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및 군용 하드웨어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따라서 중국이 세계 태양광 발전용 패널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것처럼 구형 반도체 시장에서도 독점적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서방 진영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구형 반도체 공급난으로 애플 및 자동차 업체 매출 손실은 수천 억 달러에 달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주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 토론회에서 “우리는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구형 및 신형 반도체 투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고위관리는 “구체적인 대응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모든 옵션이 논의 석상에 올라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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