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계속되는 ‘호랑이 사냥’… “측근 관리로 종신집권 노려” [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5일 01시 40분


친강 전격 해임으로 본 中 고위층 사정
집권 초반엔 정적 ‘4인방’ 제거 집중
가족-부하 먼저 체포하는 등 압박
각종 소문 유포 후 낙마 발표

《최측근도 날린 시진핑의 ‘호랑이 사냥’
‘시진핑 키즈’로 불렸던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하루아침에 경질됐다. 10년 넘게 고위공직자 사정 작업인 ‘호랑이 사냥’으로 권력을 강화해 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측근 관리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꼽혔던 친강(秦剛) 전 외교부장(장관)이 지난달 25일 전격 해임됐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한 달 만이고, 외교부장에 임명된 지 7개월 만이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외교 분야에서 시 주석의 ‘복심’이자 중국 외교의 실질적 사령탑인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5년에 걸쳐 이뤄낸 승진을 단 3개월 만에 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인물조차도 설명 한 줄 없이 사라지는 곳이 중국이다.

친강이 낙마하면서 그동안 하루아침에 스러져간 중국의 고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시 주석은 2012년 말 권력을 잡은 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고위층 사정(査正) 작업, 이른바 ‘호랑이 사냥’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 왔다. 그런데 매 시기 사정 작업의 대상은 조금씩 달랐다. 집권 1기(2012∼2017년) 때는 정적 제거에 몰두했고, 2기(2017∼2022년) 전반부에는 부패 공무원, 그리고 2기 후반부터 지금까지는 측근 관리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친강 부장도 이 과정에서 낙마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 5년 내내 ‘4인방’ 제거에 몰두


시주석은 집권 1기 내내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시 주석의 권력 장악에 불만을 품은 ‘4인방’ 제거에 집중했다. 이들을 숙청시키면서 시 주석의 경쟁 세력인 ‘상하이방’이 몰락했고 반대로 시 주석의 권력은 강화됐다. 상하이방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이다.

4인방은 총리급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부총리급 예우를 받았던 링지화(令計劃)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겸 당 중앙통전부장이다. 4명 중 쉬차이허우는 옥중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3명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시작은 보시라이 전 서기다. 그는 시 주석과 경쟁하며 중국 최고지도자 등극에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는 공산당을 찬양하고 부패를 척결하자는 구호인 ‘창홍타흑(唱紅打黑·붉은 노래 부르기와 검은 세력 소탕)’을 앞세워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12년 뇌물수수, 직권남용, 공금횡령 등 온갖 혐의로 체포되며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시라이는 충칭시 부시장이자 공안국장으로 그의 심복이었던 왕리쥔(王立軍)을 제거하려다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왕리쥔이 미국 망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보시라이의 온갖 정보가 미국과 시 주석 손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는 ‘충칭의 왕’에서 ‘부패의 왕’이 돼 버렸다. 그는 공산당에서 퇴출됐고 2013년 9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다음은 중국공산당 서열 9위 상무위원 출신 저우융캉이었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시절 사법권 총수로 여겨지는 정법위 서기를 겸할 만큼 위세가 대단했지만 역시 부패로 추락했다.

● 치밀한 호랑이 사냥
저우융캉이 연관된 비리 금액은 천문학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이 몰수한 금액만 900억 위안(약 16조2500억 원)이다. 드러나지 않은 것과 가족, 친척들에게 이미 넘어간 것들까지 합하면 1500억 위안(약 27조 원)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다수 여성과 간통하고 돈으로 여성을 사는 행위 등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당과 국가의 기밀도 유출했으며 전 부인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도 연관된 혐의로 결국 2015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저우융캉 처벌로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 출신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 불문율도 깨졌다.

시진핑의 저우융캉 사냥은 치밀했다. ‘호랑이’를 먼저 치지 않고 주변의 가족과 부하들부터 자른 뒤 마지막에 호랑이를 공격했다. 홍콩과 대만 언론들은 이 과정을 6단계로 구분하기도 했는데 이 방식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적용됐다.

먼저 1단계에서 내외신이 비리 조사 등 소문을 보도한다. 이어 2단계에서 가족이나 측근들이 체포되고, 3단계에서 ‘호랑이’가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연출한다. 4단계 때 관영매체들이 ‘호랑이’의 비리를 언급하고, 5단계에서 공식 낙마를 발표한다. 이어 6단계에서는 관영매체가 심층 비판 보도를 내보낸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에 이어 쉬차이허우와 링지화도 비리 혐의로 모두 낙마했다. 이들의 수사 과정은 모두 공개됐다. 쉬차이허우의 경우 베이징 자택에서 1t 이상의 현금과 금은보화가 압수됐다. 이를 옮기는 데 트럭 10대가 동원됐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까지 지낸 링지화 역시 고향에 숨겨둔 금괴 등이 트럭 6대 분량이었다. 쉬차이허우는 재판을 기다리다 2015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링지화는 2016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 집권 2기 파리 사냥→측근 관리
4인방을 숙청하면서 시 주석의 정적(政敵)은 사라졌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부패 사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번엔 정적 대신 공무원을 겨냥했다. 이 과정에서 감찰위원회도 신설했다. 1기 때 공산당 중앙기율위가 반부패전쟁을 주도했지만 공산당원만을 사정 대상으로 삼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신설된 감찰위원회는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국립대, 국영기업 간부 등을 포함해 공직자 전반을 사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

감찰위원회 활동으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차관급 이상 고위 관료 92명이 처벌됐다. 2021년 한 해 중국에서 부정부패 혐의로 처벌받은 공무원이 62만 명일 정도다.

이시기 대표적 부패 고위 관료가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시 서기다. 쑨정차이는 약 1억7000만 위안(약 288억 원)에 달하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2018년 5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도 자오정융(趙正永) 전 산시성 당 서기, 쑨리쥔(孫力軍) 전 공안부 부부장, 왕리커(王立科) 전 장쑤성 정법위 서기, 푸정화(傅政華) 전 사법부장 등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체포돼 대부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시주석의 사정 작업은 끝나지 않았지만 집권 2기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방향이 다소 바뀌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측근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 인물이 왕치산(王岐山) 전 국가부주석이다. 시 주석은 집권 3기가 시작되자마자 왕치산의 핵심 보좌진을 수뢰,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당적과 공직을 모두 박탈하는 처분을 결정했다. 왕치산은 시 주석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동지이면서 집권 1기 당시 사정 작업을 주도해 ‘호랑이 사냥꾼’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왕치산은 지난해 특별한 처분 없이 정계를 은퇴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시 주석의 칼끝이 측근으로 향했다는 분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장기집권(3연임)에 돌입하면서 측근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시 주석이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로켓군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작업에 대해서도 이 연장선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중국 5대 군 중 하나로 분류되는 로켓군의 지휘관과 정치위원은 시 주석의 측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 사정 당국은 사령관과 부사령관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일에는 아예 로켓군 사령관을 새로 임명했다.

중국 엘리트 정치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권력에 대항할 인물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시 주석의 적은 시 주석 자신뿐”이라면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 주석이 종신집권을 위해 가장 중요한 측근 관리를 집중적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측근으로 분류된 친강 부장의 전격 경질이 이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시진핑#호랑이 사냥#측근 관리#종신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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