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부족 시달리는 러시아, 北 170㎜ 장사정포·구형 소총 구매 의사 타진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8월 5일 1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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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중률 낮고 폭발 위험성 큰 구형 무기… 우크라이나군 “노획한 북한제 탄약 불발 많아”


러시아가 북한에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170㎜ 장사정포. [뉴스1]
러시아가 북한에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170㎜ 장사정포. [뉴스1]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이제 520일을 훌쩍 넘겼다. 개전 초 파죽지세로 우크라이나 국토를 유린한 러시아군은 수세에 몰린 지 오래다. 이제 공격하는 쪽은 우크라이나군이 됐고, 러시아는 화력과 병력 모든 면에서 열세다. 러시아군은 지뢰와 장애물에 의지해 우크라이나군을 힘겹게 막아내는 실정인 데다, 사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장비 손실도 극심해 자국 군수산업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전 초 위세를 자랑하던 러시아의 첨단 전차와 장갑차는 이제 1950년대 생산된 노후 모델로 대체됐다. 일부 전선에서는 제정러시아 때 채택된 단발 볼트액션 소총을 쓰는 병사들이 보일 정도다.

소련 시절 무기로 버티는 러시아군


6월 12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진영을 향해 다연장로켓포 BM-21 ‘그라드’를 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6월 12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진영을 향해 다연장로켓포 BM-21 ‘그라드’를 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러시아군의 무장 상황을 보면 최신 전차나 장갑차, 포병 무기는 대부분 사라졌다. 전차는 1980년대 초 생산돼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퇴역한 구형 T-72 초기 모델이나 T-62 등이 주력이다. 1960년대 소련군 주력이던 BTR-60 장갑차가 힘겹게 병력을 수송하고 있다. 6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러시아군 포병 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곡사포를 복원해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 소련군 시절의 구형 장비를 사용해본 적 없는 일선 장병들이 무기를 지급받고도 쓰지 못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인간은 그저 도구로 취급된다. 8월 초 기준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수치로만 2571명에 달하는 장교와 장성을 잃었다. 무능한 지휘관들의 호령에 러시아군은 ‘우라(우리말로 만세, 아자라는 의미) 돌격’만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한 주요 격전지를 러시아 장병들은 ‘고기 분쇄기’라고 부른다. 러시아 고위 지휘관 입장에서 휘하 장병은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도구이자 군사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돌격하는 군인들은 자기 중대장, 대대장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 데다, 일단 발사만 되면 그게 뭐가 됐든 손에 쥐고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돌격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부대의 러시아군 장병들은 항명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주요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역습을 시도하다가 자신들이 깔아놓은 지뢰밭에서 폭사하는 황당한 상황마저 관측되고 있다. 제58연합군 사령관 등 일부 러시아군 야전 지휘관이 무의미한 돌격 명령을 거부했다가 숙청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최근 러시아는 병력이 부족해지자 병역법 개정을 통해 징집·동원 연령을 조정했다. 이에 따라 적게는 50만 명에서 많게는 200만 명 병력을 추가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병력을 충원해도 이들에게 쥐어줄 무기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너무도 많은 무기를 잃었다. 군수산업 시스템도 고질적인 부정·부패 탓에 국가 지도부가 생각했던 것만큼 충분히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러시아는 최근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통해 북한에 대규모 무기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으로부터 북한제 다연장로켓포 등을 노획해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만큼 러시아의 무기 수급이 달리는 것이다.

러시아, 北 자주포·소총·탄약 등 구입 추정


7월 26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7월 26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러시아의 반(反)부패 인권운동단체 ‘굴라구넷’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쇼이구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여러 종류의 북한제 무기를 사들였다. 러시아가 구입한 무기들은 북한에서도 노농적위군 같은 준군사조직에서나 쓰는 구형이다. 6·25전쟁 때 일명 ‘따발총’으로 불린 PPSh-41 기관단총과 RPD 덱탸료프 경기관총, 중국제 AK-47인 56식 소총과 북한판 AKM인 68식 소총 및 탄약 등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러시아가 복원해 전장에 투입하고 있는 T-54/55 전차에 필요한 100㎜ 포탄, T-62 전차용 115㎜ 포탄, ‘불새’ 대전차 미사일 등도 도입 대상이다.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생산된 것들이다. 이들 장비가 실제로 도입되면 러시아군은 단번에 1960년대로 퇴보하는 셈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PPSh-41 기관단총. [위키피디아]
러시아가 북한에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PPSh-41 기관단총. [위키피디아]
러시아가 도입을 희망한 북한제 무기 중 가장 주목받는 게 포병 무기다. 개전 초만 해도 하루에 포탄 6만~8만 발을 쏟아붓던 러시아는 이제 현대화된 포병 전력을 거의 다 잃었다.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개발된 구형 견인포를 쓰는 실정이다. 현재 러시아군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D-20 152㎜ 견인곡사포와 D-30 122㎜ 견인곡사포는 완전 수동 방식이라 병사 8명이 달려들어도 사격 준비에 10분 이상 소요된다. 사거리도 표준탄 기준 17㎞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의 서방제 M777 견인곡사포 등 주요 화포는 짧게는 24㎞, 길게는 50㎞까지 포격할 수 있다. 명중 정밀도 역시 러시아군 야포를 압도한다. 이런 사거리 차이 때문에 러시아는 6월부터 하루 평균 2~3개 대대 규모의 야포를 잃으며 화력에서 엄청난 열세에 몰리고 있다.

굴라구넷이 러시아군이 구매했다고 폭로한 M1989 자주포는 포병 열세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이 자주포는 북한에서 ‘주체포’로 불린다. 북한이 중국제 63식 장갑차를 복제해 생산한 신흥호 장갑차 차체에 170㎜ 곡사포를 얹은 것이다. 이른바 ‘서울 불바다’ 위협 당시 북한이 240㎜ 방사포와 함께 서울을 초토화할 무기라며 선전한 자주포다. 한국 언론에서는 흔히 ‘장사정포’라고 지칭한다.

주체포는 15m에 달하는 엄청난 포신 길이와 170㎜ 대구경의 장점을 이용해 사거리를 극단적으로 늘렸다. 로켓보조추진탄(RAP)을 사용할 경우 최대 54㎞ 사거리를 발휘한다. 다만 이 정도 사거리를 구현하려면 탄체 중량이 20㎏에 불과해져 한국군 표준 155㎜ 고폭탄 M10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화포의 핵심인 위력이 대단히 형편없어지는 것이다.

북한제 170㎜ 자주포의 낮은 위력과 명중률은 이란-이라크 전쟁 때 악명을 떨쳤다. 당시 이란군은 북한으로부터 170㎜ 자주포 36문을 사들여 실전에 투입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5분에 1발꼴인 낮은 발사 속도, 표적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에 떨어지는 형편없는 명중률과 낮은 위력이 드러났다. 전쟁이 끝난 직후 이란군은 170㎜ 자주포를 전량 퇴역시켰다. 반면 이란군이 비슷한 시기에 구입한 한국제 KH179 곡사포는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북한제 170㎜ 자주포의 성능과 신뢰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북한 ‘주체포’, 차체 반동으로 명중률 낮아


주체포는 이란군이 사용한 M1978 ‘곡산’ 모델보다 개량된 버전이지만, 여전히 기술적으로 명확한 한계를 보인다. 북한은 주체포를 개발할 때 소련제 2S7 203㎜ 자주포의 주퇴복좌기를 베꼈다. 이 또한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곡사포 부품을 모방한 것이다. 한편 주체포 차체는 중국제 63식 장갑차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서 내구성이 상당히 취약하다. 주체포는 54㎞라는 긴 사거리 구현을 위해 엄청난 압력의 ‘고장약’을 사용한다. 구닥다리 설계가 적용된 주퇴복좌기와 빈약한 차체는 고장약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반동을 견뎌내지 못한다. 실제로 북한이 공개한 주체포 사격 훈련 영상을 보면 발사할 때 차체 앞부분이 위로 들릴 정도로 엄청난 반동이 발생한다.

자주포 개발에서 포탑과 차체의 조화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폴란드는 자국산 ‘크랩(Krab)’ 자주포를 만들어놓고도 차체가 반동을 받아내지 못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결국 한국산 K9 자주포 차체를 수입해 크랩 자주포 포탑과 결합했다. 사격할 때 차체가 요동치면 명중률이 현격히 낮아져 자주포가 무기로서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사격 시 총을 제대로 파지하지 않아 총구가 위로 들리면 조준점보다 높은 곳으로 탄이 날아가기 마련이다. 곡사포도 포구 진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조준한 곳에 포탄을 맞힐 수 없다.

주체포에 사용되는 탄약 문제도 심각하다. 연평도 포격전 때 드러났듯이 북한군의 탄약 보관 상태는 최악이다. 당시 북한군이 쏜 170여 발 가운데 90여 발은 연평도에 닿지도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다. 연평도에 떨어진 80여 발도 제대로 된 탄착군을 형성하지 못한 채 대부분 도로와 야산 등 엉뚱한 곳에 불규칙하게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화포 자체의 노후화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장약 불량 탓에 발생한다. 장약은 약실 내에서 폭발해 그 가스로 포탄을 날려 보내는 역할을 한다. 연탄처럼 구멍이 뚫린 아주 작은 추진체들이 금속이나 천으로 된 케이스에 빼곡하게 들어 있는 형태다. 이 추진체도 화약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습기를 머금어 뭉개지거나 뭉칠 수 있다. 이런 장약을 쓰면 불완전연소가 일어나기에 설계 값에 맞는 추진 가스가 발생하지 못한다. 즉 대포를 조준해 쏘더라도 밀어내는 힘이 제각각이라서 포탄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북한제 탄약의 위험성은 우크라이나군 내에서도 유명하다. 이미 상당량의 북한제 탄약이 러시아군에 유입됐고, 우크라이나군도 그걸 노획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7월 말 우크라이나군은 자국 취재진을 초청해 122㎜ BM-21 다연장로켓 발사 장면을 공개했는데, 이때 제47기계화여단 포병대대의 포대장(콜사인 ‘루슬란’)이 북한제 탄약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당시 그는 “탄약 부족이 심해 어쩔 수 없이 노획한 북한제 탄약을 쓰기는 하지만, 북한제 탄약을 쓸 때 절대 화포 근처에 있어선 안 된다”며 “불발로 탄이 발사되지 않을 수 있고, 발사 직후 바로 앞에 떨어져 터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장교 “北 탄약 노획해 쓰지만 위험”


러시아군이 북한제 포병 장비를 실제로 다량 구매해 사용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진지 후방에서 러시아군 포병이 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포격을 했다가 자칫 장약 불량으로 당초 계산과 달리 자국군 진지에 떨어질 수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쓰는 서방제 자주포만큼 사정거리가 긴 포병 무기로 포병 열세를 극복하고 싶을 테다. 그러나 명중은 고사하고 아군 머리 위로 떨어질 위험이 큰 북한제 무기는 러시아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문제를 러시아 측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포병 장비를 사서 전선에 배치해야 할 만큼 다급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북한제 무기를 받아들고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도 감수할 정도로 말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1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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