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극심한 가뭄으로 올리브유 생산 줄어 비상
가뭄 피해 적었던 중동산 올리브유 확보에 총력
중동 국가들, 올리브유 수출 늘었지만 국내 소비용 부족해질까 우려
중동에서 올리브유는 생필품…부족해지거나 가격 급등하면 민심 악화돼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동에서 ‘기름 전쟁’이 터졌다. 정확히는 ‘기름 확보 전쟁’이 한창이다.
갑작스러운 기름 생산 부족으로 기름을 확보하려는 나라 간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적으로 기름이 넉넉해 이를 수출하려는 나라들은 외화를 벌기 좋은 기회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소비용 기름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우려한다.
이 기름은 석유가 아니다.
중동과 남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초록색과 검정색 나무 열매에서 추출하는 ‘식용 기름’이다. 이 지역에선 요리할 때 ‘필수품’으로 쓰인다. 또 주식인 빵을 찍어 먹을 때도 자주 쓰인다. 열매 절임은 중동과 남유럽에선 기본 반찬으로 여겨진다. 다른 야채를 절일 때도 이 기름을 많이 사용한다. 말 그대로 ‘국민 먹거리’이며 ‘필수 요리 재료’다.
바로 올리브유다.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더위와 가뭄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주요 국가의 올리브 수확에 비상이 걸렸다. 심한 가뭄으로 올리브 생산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도 크게 줄었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MEE)와 미들이스트모니터(MEMO),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올리브유 생산에 ‘빨간불’이 켜진 남유럽 국가들이 올리브유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가뭄 피해가 적은 중동 국가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 스페인 식품업계, 튀니지와 레바논 올리브유 싹쓸이 중
올리브 수확이 줄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 이 나라는 세계 1위 올리브유 생산국이다. 국제올리브협회(IOC)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62만t의 올리브유를 생산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 통상 150만t의 올리브유를 생산했던 예년과 비교할 때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비상이 걸린 스페인 식품 업계는 최근 중동에서 부족한 올리브유를 확보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는 튀니지다. 그동안 아랍권에서 가장 많은 올리브유를 생산해온 나라다.
스페인을 중심으로 남유럽 국가 식품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올리브유를 구입해 튀니지의 올리브유 수출량은 예년보다 30% 늘었다. 튀니지는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올리브 나무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지 올리브 수출업자인 파하드 벤 아메르는 MEE에 “튀니지의 올리브 나무들이 스페인산보다 가뭄에 강했다”고 말했다.
레바논도 유럽 식품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다. 레바논은 전체 농경지의 23% 정도가 올리브 나무 경작지. 최근 스페인 식품 기업들은 레바논 현지 생산업자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올리브유를 대거 구입 중이다. 레바논에선 ‘도매상들이 보유 중인 올리브유를 사실상 모두 스페인 식품 기업들이 사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워낙 유럽 식품 기업들이 활발히 올리브유를 구입하다 보니 레바논에선 향후 자국 소비용 올리브유가 부족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또 레바논 식품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는 올리브유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바논 역시 올리브 나무들이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덜 입었다. 현지에서 4대째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아사드 사아데흐는 “레바논의 올리브 나무 품종은 강하고 기후변화에도 잘 적응했다”고 말했다.
올리브유 품질은 좋지만 그동안 국내 판매에 집중했던 요르단의 식품 기업들도 최근 유럽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다.
● 튀르키예, 올리브유 수출 늘었지만 ‘수출 규제’ 마련
올리브 농업이 발달한 튀르키예도 유럽발 올리브유 특수를 누렸다. IOC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지난해와 올해 올리브유 생산은 예년보다 약 62% 늘었다. 튀르키예 무역부는 지난해 11월부터 7월까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수출된 올리브유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배와 44배 늘었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이즈미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게해 올리브와 올리브유 수출협회’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올해 올리브유 수출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3100억 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사상 최대치다. 외화 벌이 측면에서는 분명한 호재다. 지난 20년 간 튀르키예에서 재배되는 올리브 나무 규모가 9900만 그루에서 1억8900만 그루로 두 배 가까이 늘은 덕을 톡톡히 본 결과다.
하지만 지난달 튀르키예 정부는 11월까지 약 3달간 올리브유 수출과 관련된 긴급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올리브유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무역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이 나라의 올리브유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2%나 올랐다. 올리브 수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82%), 그리스(72%), 이탈리아(58%)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튀르키예 정부는 자국 내 올리브유 부족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식품업계가 국내 시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해외로 수출되는 올리브유에 1kg당 0.2달러(약 262원)의 추가 세금을 매기기로 결정했다.
또 튀르키예 정부는 올리브유 생산 및 가격 변화에 따라 추가 수출 규제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일단 11월까지를 규제 적용 기간으로 삼은 건 이 시기에 올리브 수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올리브 수확이 적을 경우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올리브유 가격 오름 현상은 튀르키예뿐 아니라 레바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DW)에 따르면 최근 레바논에선 1리터 당 5달러(약 6540원) 정도하던 도매상 판매 올리브유가 10달러(1만3080원)로 두 배나 올랐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레바논에서 생활필수품인 올리브유 가격 상승은 더욱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올리브유보다 저렴한 식용유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올리브유 생산이 많고, 품질도 좋은 것으로 유명한 레바논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현지에서 컨설팅업을 하는 한 레바논인은 “올리브유 가격이 계속 빠르게 오르고 있고, 이제는 매우 비싸다”며 “레바논에서 올리브유가 비싸다고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 올리브유 등 생필품 부족은 민심 폭발시키는 계기 될 수 있어
‘올리브유 확보 전쟁’과 ‘올리브유 가격 상승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리브유 가격 상승은 남유럽 국가들의 올리브유 생산에 문제가 없었더라도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피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지금처럼 올리브유 생산이 불안정하고, 인플레이션도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레바논처럼 정국이 불안한 나라는 더욱 그렇다. 이슬람교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 간 종교 갈등이 심한 레바논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970달러(약 650만원‧2021년 세계은행 기준) 밖에 안 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중동 비산유국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안 좋아졌고, 국민 생활도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며 “올리브유를 비롯해 빵과 양고기 같은 생활필수품 부족 혹은 가격 폭등 현상은 정부에 대한 극심한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로 확산됐던 ‘아랍의 봄(아랍권의 민주화 운동)’도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면서 민심이 폭발한 게 원인이었다. 당분간 ‘중동의 올리브유 문제’가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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