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팔 분쟁)으로 정세가 불안한 이스라엘이 최근 또 다른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이스라엘 역대 최장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74·사진)가 지난달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등 주요 도심의 시위가 매우 격렬합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네타냐후는 6년간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복무한 기간을 제외하면 정계 진출 전까지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명한 역사가이자 시오니즘(유대인들이 고대 유대국가가 있던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려는 민족주의 운동) 추종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보입니다. 정치적으로 매우 강경한 입장과 보수적인 노선을 고집합니다.
네타냐후는 1980년대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의 주권과 안보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국민적 신임을 얻습니다. 1996년 처음 총리가 되지만 본인의 부패 혐의와 당시 안 좋았던 이스라엘의 경제 상황이 겹치면서 1999년 총선과 총리 선거 모두 대패합니다. 하지만 2년 뒤 소속 정당인 리쿠드의 아리엘 샤론이 총리가 되고 2003년 총선까지 리쿠드당이 승리하면서 네타냐후는 외교장관으로 발탁됩니다.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난 거지요.
이때부터 ‘보수 투사’라는 네타냐후의 이미지가 굳어집니다. 온건파로 돌아서 팔레스타인 유화책을 펼치는 샤론 총리와 사사건건 대립합니다. 이 때문에 결국 소속 정당이 쪼개지고 총리가 당을 나가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합니다. 네타냐후가 남아서 이끌던 기존 당은 2006년 총선에서 12석밖에 못 얻으면서 다시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다시 반전이 일어납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 카디마당에 실망한 우파 지지자들이 ‘이란 핵 기지 선제공격’ 등 강경발언을 이어 나가는 네타냐후를 지지하기 시작한 겁니다. 2009년 총선에서 우파 연합에 성공한 네타냐후는 다시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후 5선 연임에 성공합니다. 2021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못 얻어 연정 구성에도 실패해 결국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때까지요.
그런데 참 오뚝이 같은 인물입니다. 2021년 총선 실패 후 정계에서 영영 사라지나 했는데, 지난해 조기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우파 계열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화려하게 총리로 복귀합니다.
네타냐후는 이미 초강경 외교로 이-팔 관계를 최악으로 만든 지도자라는 평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까지 무시하고 사법부 무력화를 시도함으로써 이스라엘을 혼돈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는지 모르지만 네타냐후가 집권한 이후 이스라엘은 조용한 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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