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호스를 틀었더니 물줄기 대신 물안개가 나오고, 그마저 곧 끊겼다.” “산불 대비와 구조작업 예산이 부족하다. 물가 인상 정도에 따라 늘린 게 전부다.” “화재 예방 계획이 적정한지 평가하는 기준조차 없다.”
폐허로 변한 하와이 마우이섬.현지 교민 제공
8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주(州)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최소 93명(13일 기준)이 사망한 가운데 소방당국의 대비 태세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와이 주정부는 “섬의 3분의 2이상이 극도로 건조해 산불 위험이 높고, 대형 산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화재 대비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경고에도 그간 대형 화재에 대한 별다른 준비 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이번 하와이 화재는 ‘미국 내 100년만의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되게 됐다.
● 사전 경고에도 산불 위험성 ‘낮음’ 평가
마우이섬 정책위원회는 2021년 7월 ‘마우이 산불 예방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마우이섬 전체가 가뭄이 심한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는 언급과 함께 근래 발생한 대형 산불 사례들이 적시됐다. 이에 따르면 2019년 10월 서울 여의도(약 2.9㎢)의 6배가 넘는 면적(4600에이커·약 18.62㎢)을 불태운 산불이 났다. 또 2020년 7월과 8월에는 각각 4300에이커(약 17.4㎢)와 1835에이커(약 7.43㎢)가 산불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다.
이 위원회는 마우이섬 당국의 정책과 행정을 검토해 대안을 권고하는 민간 자문기구다. 위원회는 마우이섬 당국의 산불 진화 작업 예산을 검토한 뒤 “예산이 부족하다. 산불 대응에 필요한 비용이 증가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우이섬 소방안전국이 발표한 5개년(2021~2025년) 전략 계획에 대해선 “화재 예방을 위해 해야 할 조치가 어떠한 것도 포함돼있지 않다. 화재 예방계획을 평가하는 기준도 없다”고 꼬집었다.
최근 5년 내 또 다른 보고서에도 “허리케인과 결합된 화재는 특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번 화재에서 허리케인 ‘도라’가 일으킨 바람은 마우이섬의 불길을 부채질 했다.
하지만 하와이 당국은 이 같은 사전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와이주 방재청이 지난해 2월 발간한 종합방재계획에서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 가능성을 ‘낮음’으로 평가했다. 미 CNN은 “하와이 당국이 산불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불의 위험을 과소평가했다”고 분석했다.
● 소방호스 물 안 나와 소방관들 맨몸 구조
AP뉴시스대비 시스템의 부실은 고스란히 처참한 화재 대응 부실로 이어졌다. 특히 마우이섬의 수도 시스템이 화재에 취약해 산불 초기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방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불길이 수도관을 녹이거나 파손시켜 물이 새면서 소방용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것이다. 13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했던 여러 명의 소방대원은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했지만 수압이 너무 약해 불을 끌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소방관들은 소방호스를 내던지고 불에 갇힌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맨몸으로 불길 속을 뛰어들었다. 피해가 가장 큰 라하이나로 출동했던 소방관 케아이 호 씨는 “아수라장이었다. 불이 번지는 와중에 집 안으로 들어가 주민들을 구조했다”고 전했다.
소방 인력도 크게 부족했다. 하와이소방관협회 바비 리 회장은 “마우이와 몰로카이, 라나이 등 3개 주요 섬을 담당하는 상근 소방관이 65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12일 AP통신에 전했다. 그는 “소방차는 13대, 사다리차는 2대에 불과하고 비포장도로용 차량은 전혀 없다. 이는 산불이 인구밀집지역에 도달하기 전에 불길을 잡을 수 없다는 걸 뜻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늑장 대처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NYT는 “주민 1418명이 긴급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등 이재민 수천 명이 발생했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아닌 자원봉사자들이 조달한 식수, 식료품,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사망자 수는 93명이지만 피해 지역의 3%만 수색이 이뤄진 상황이라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14일 하와이에 200만 달러(약 26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식수, 식품, 담요 등 구호 물품을 현지 대형 한인마트 등을 통해 하와이 주정부에 전달하고 현지 구호단체에 기여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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