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이 아프리카 최초로 국가 부채와 자연 보호를 맞바꾸는 ‘환경 스와프’를 체결했다. 부채 일부를 탕감받는 대신 멸종위기에 처한 흑동고래를 보호하는 내용으로, 개발도상국의 자금조달 비용을 줄이면서 기후 위기를 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로이터 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 국가 가봉은 15일(현지시간)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와 ‘환경-채무 스와프’(Debt for nature swap)를 체결했다. 지난주 가봉 정부가 발행한 4억3600만달러 규 국채를 이날 BofA가 5억달러(약 6700억원)에 매입해 해양 보존을 위한 ‘청색 본드’(Blue Bond)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 만기는 2·8년에서 15년으로 연장됐으며 이자율은 6%대로 하락했다. 채권 전환을 통해 빚 부담을 덜고 기한 이익(빚 갚는 기한까지 빚 독촉을 받지 않는 이익)을 얻는 가봉은 대신 상환 기간 동안 해양 생태계 보호와 어업 규제 강화에 1억6300만달러(약 2200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환경-채무 스와프는 개도국 부채를 은행이나 전문투자사가 매입해 더 저렴한 형태의 대출로 전환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개발금융기관의 위험 보증을 통해 조달 비용을 낮춘다. 이번 거래에는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가 위험 보증을 서줬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해당 채권에 Aa2를 부여했는데, ‘정크’ 수준이던 기존 신용등급(Caa1)보다 무려 14단계 높다.
이렇게 마련된 부채 절감액은 해양기금으로 적립돼 가봉 대서양 연안에 사는 멸종위기종인 혹등고래와 장수거북를 비롯해 매너티와 톱가오리 등을 보호하는 데 사용된다. 가봉 정부는 연간 500만달러(약 67억원)를 조업 단속에 사용해 연안 해역의 30%를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가봉 정부에 자문을 제공한 미국 비영리단체 네이처컨저번시 관계자는 이번 환경 스와프를 통해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 개도국 부채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5월에도 에콰도르가 16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를 체결해 갈라파고스 제도 보호기금 1800만달러를 확보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벨리즈·바베이도스 등 카리브해 국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확보한 채무 변제금을 환경에 재투자했다.
그러나 환경 스와프가 지속 가능한 형태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신흥시장 전문 투자사 ‘Abrdn’의 앤드류 스태너스 이사는 “이번 채권 이자는 6.09%로 8~10%에 거래되는 가봉 국채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정부 재정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조치”라면서도 “가봉의 생태계 보존 약속이 어떻게 지켜질지, 가봉이 이행 불능에 빠졌을 때 DFC의 위험 보증이 어떤 식으로 작동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가봉이 공공 재정 관리가 취약하고 외부 채권에 대한 지속적인 연체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점은 부정적으로 봤다. 또한 정부 수입의 3분의 1을 석유 산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봉이 친환경 투자와 관련해 앞으로 시장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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