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앞두고 경제노선 수정
지지율, 집권 보수당에 크게 앞서
“번영의 길, 세금으로 열리지 않아”
블레어 前총리의 ‘제3의 길’ 연상
영국 제1야당 노동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보유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당의 전통적인 경제 노선 수정에 나섰다. 집권 보수당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흔들리는 가운데 과거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을 연상시키는 규제 개혁과 경제 성장 우선주의를 통해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 노동당 “건설 규제 완화-경제 성장”
영국 노동당 그림자 내각(집권에 대비한 예비 내각)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 의원은 26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소득세나 양도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면서 “(초고소득층을 겨냥한) 부유세나 값비싼 부동산을 겨냥한 (추가) 세금도 도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부 진보 진영에서 제기한 초고소득자 대상 부유세 신설에 반대하면서 현행 연 소득 12만5140파운드(약 2억800만 원) 초과분에 매기는 45% 최고세율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리브스 의원은 “번영의 길이 세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나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텔레그래프는 “부는 악이며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야 한다는 이념을 단호히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0년부터 야당 신세인 노동당은 사회주의 노선을 주장한 제러미 코빈 전 대표가 물러나고 2020년 키어 스타머 대표가 취임하면서 당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스타머 대표는 당의 대학 등록금 폐지 공약을 폐기하고 범죄에도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린벨트 토지에 대한 건설 규제 완화 등 주택 경기 부양 법안도 준비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9∼2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노동당 지지율은 45%로 보수당(28%)을 크게 앞섰다. 지난달 21일 보수당 텃밭으로 꼽히는 3개 지역구 보궐선거에서도 보수당은 1곳에서만 승리했다. 스타머 대표는 “야심 차고 실용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변화된 노동당을 유권자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책 전환은 보수당 정권에서 유럽연합(EU) 탈퇴 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낮은 0.4%로 예상했다. 올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은 0.2%에 그쳤고, 6월 기준 물가상승률은 7.9%로 여전히 높다. 고물가 억제를 위해 중앙은행이 14차례 연속 금리를 올려 기준금리는 5.25%에 달한다.
● 또 다른 ‘제3의 길’ 걷나
노동당의 노선 전환을 두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을 통해 정권 교체에 성공한 블레어 전 총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당 정책의 대명사였던 국유화 강령을 당헌에서 삭제하는 등 실용주의 노선으로 파격적 변화를 시도했고 1997년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18년 만의 노동당 집권을 이뤄냈다. 이어 평등과 약자 보호라는 진보적 가치에 더해 세계화와 경제 성장,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수정 노선으로 2005년까지 3번의 총선을 내리 이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당 총리 중 3번 연속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가 유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소득세 증세를 통한 재정 확보에 나섰던 보수당도 감세 정책을 내걸며 맞서고 있다. 지난달 리시 수낵 총리는 32만5000파운드(약 5억4000만 원) 이상 자산을 상속받을 경우 초과액의 40%를 세금으로 내는 현행 상속세 폐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무부에서 재정 부족을 이유로 상속세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보수당 내각 안에서도 의견이 충돌하고 있어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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