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가 중국과 밀착관계가 커지고 있는 중동에 대해서도 핵심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개발 길이 막힌 중국이 제3국에서 기술 개발을 시도할 여지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중동에 대한 AI 칩 수출 통제는 엔비디아가 28일(현지시간)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를 통해 알려졌다. 세계 AI 핵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공시에서 “미국 정부는 2024년 회계연도 2분기(5월~7월) 기간에 특정 고객과 중동 일부 국가를 포함한 기타 지역에 A100 및 H100 제품 판매시 추가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A100과 H100은 지난해 미국 정부가 중국 수출을 금지한 첨단 반도체다. 챗GPT처럼 대용량 언어모델 AI 등을 개발하는데 필수적인 반도체로 꼽힌다. 미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AI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중동에도 AI 수출 통제를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공시에서 중동 어느 나라에 판매가 금지됐는지 언급하진 않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엔비디아 반도체를 수천 개 무더기 구매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달 중순 사우디아라비아가 공공 연구 기관인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카우스트)를 통해 엔비디아의 H100 칩을 최소 3000개 구매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하나에 4만 달러(5300만 원)짜리로 대학이 AI 칩 구매에 약 1600억 원을 쓴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AI 개발은 첨단 군비 개발 뿐 아니라 중국과의 기술 제휴 가능성으로 서방의 우려를 사 왔다. FT는 두 명의 카우스트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국적 AI 전문가들이 미국에서 연구할 곳을 찾지 못해 카우스트로 넘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AI 협력 강화를 논의한 바 있다.
미국의 한 무역 전문 변호사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미국은 중국 기업이 중국 밖에서 AI를 훈련시켜 중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중동 수출 통제가 엔비디아의 실적에는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의 주요 판매국인 미국과 중국, 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비중은 약 13.5%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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