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저금리 지속 믿음이 유발한 ‘뱅크런’… 연준, 정책 불확실성으로 대응
매년 8월 말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미국 와이오밍주 휴양지 잭슨홀에 모여 갖는 중요 회의를 ‘잭슨홀 콘퍼런스’라고 부른다. 지난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은 잭슨홀 콘퍼런스에 참석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제성장 둔화를 인내하겠다”고 밝혀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그해 하반기 주식은 물론, 채권과 외환시장까지 모두 연준의 금리인상 충격으로 ‘트리플 약세’를 겪었고, 한국 국민연금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 연기금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과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런 아픈 기억이 있기에 2023년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파월 의장이 과연 무슨 말을 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파월 의장은 기조 연설문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화된 것은 환영할 만한 부분이지만 여전히 너무 높다”고 지적하는 한편, “발표되는 경제지표를 평가하면서 금리인상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밝혀 시장금리 하락을 유발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전부라고 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이를 짚어보고자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래프1’은 미국 주요 품목별 인플레이션 동향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택 서비스로, 전체 물가지수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핵심 부문이다. 미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지난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 주택시장도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뒤늦게 주택 서비스 물가하락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상품 물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이 조금 완화되면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 인플레이션 압력은 주택 서비스 및 상품 물가의 안정 덕분에 매우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세계 중앙은행이 직면한 3가지 도전
물론 ‘주택과 에너지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의 불안이 지속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호텔업이나 요식업은 인건비 비중이 큰 노동집약적 산업이기에 임금이 서비스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파월 의장은 발표 자료를 통해 “25~54세 근로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하고, 이민이 다시 늘어나면서 노동력 공급 부족 현상이 완화됐다”고 지적한다. 즉 파월 의장 스스로 “임금인상 위험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물가안정을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분석가들로부터 수시로 조언을 받는 연준 의장이 이렇게 모순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힌트를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임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는 올해 펴낸 이 책에서 전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들에게 3가지 도전이 찾아왔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도전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관계가 뒤틀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인상되고 이것이 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최근에는 정반대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미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 억제에 성공했는데 실업률 또한 1969년 이후 최저 레벨로 떨어졌다. 그러나 연준 입장에서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실업을 유발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버냉키가 생각하는 두 번째 도전은 균형 이자율의 장기적 하락이다. 여기서 균형 이자율이란 시장에서 수요-공급이 일치되는 수준의 이자율을 뜻한다. 지난 10년간 선진국의 균형 금리는 은퇴 연령에 진입한 베이비붐 세대가 지속적으로 저축을 늘린 데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마이너스 레벨까지 떨어졌다. 균형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특히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려는 것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다. 최근 미국의 실질 시장 이자율은 거의 2%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버블 일소로 금융시스템 불안전성 해결 목표
버냉키가 지적하는 마지막 도전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 문제다. 중앙은행이 설립된 목적은 금융시스템을 안정화하고 경제를 위협하는 패닉, 특히 뱅크런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은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뱅크런, 2023년 지방은행 뱅크런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해답은 바로 경제 내 ‘버블’을 일소하는 것이다. 최근 발생했던 지방은행 뱅크런의 근본적 원인은 국채시장에 거품이 형성된 데 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안정적인’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면 결국 수익이 나게 된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진 탓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국채금리가 급등해 채권의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고객들이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연쇄적인 뱅크런이 발생했다(그래프2 참조).
다행히 JP모건이 5월 초 위기에 빠진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하면서 연쇄 인출 사태가 진정되기는 했지만, 이는 연준 관계자들에게 아주 큰 교훈을 줬다. 즉 “어떤 자산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확신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 위험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버블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을 해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연준 입장에서는 지금 시장 참여자들에게 어떤 금리정책 방향을 알려주지 않고 정책 불확실성을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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