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토론에도 ‘간장공장공장장’이 있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0일 14시 00분


발칙한 공격으로 승부하라
토론의 승자가 되는 비결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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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웃긴 이름의 마른 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민주당전국위원회(DNC) 홈페이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웃긴 이름의 마른 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민주당전국위원회(DNC) 홈페이지


Who the heck is this skinny guy with a funny last name?”
(도대체 이 웃긴 이름을 비쩍 마른 사내가 도대체 누구야?)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들의 첫 TV 토론이 열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8명의 후보가 참가했습니다.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이름도 어려운 비벡 라와스와미 후보. 기업가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없는 그에게 견제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라와스와미 후보가 한 말입니다.

‘heck’은 ‘hell’의 점잖은 표현입니다. ‘도대체’라는 뜻입니다. 볼품없는 외모에 이름도 웃긴다고 자신을 비웃었습니다. 그래도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습니다.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연상됐기 때문입니다. 초짜 정치인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20년 전 비슷한 발언으로 대히트를 쳤습니다. 4년 뒤 정말 대통령이 됐습니다. “a skinny kid with a funny name who believes that America has a place for him”(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웃긴 이름의 마른 아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토론이나 연설을 듣다 보면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skinny kid with a funny name’ 같은 구절입니다. 이런 발언을 ‘sound bite’(사운드 바이트)라고 합니다 ‘sound’(소리)와 ‘bite’(물다)의 합성어로 ‘물고 안 놔주는 소리’라는 의미입니다. 흔히 대선 토론을 ‘sound bite war’(사운드 바이트 전쟁)라고 합니다. 깊이 있는 토론 능력이나 거창한 설교 보다 듣는 사람의 귀에 확 꽂히는 단어나 구절이 승패를 결정짓습니다. 대선 토론 역사에 길이 남는 사운드 바이트들을 알아봤습니다.

1980년 대선 토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악수하는 모습.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80년 대선 토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악수하는 모습.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There you go again.”
(또 그 타령이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입니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라서 대중이 무엇이 원하는지 잘 압니다. 1980년 대선 토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과 레이건 후보가 맞붙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레이건 후보의 약점인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 정책을 공격했습니다. 레이건 후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메디케어를 축소하는 정책으로 논란이 많았습니다.

레이건 후보가 반박한 말입니다. ‘there you go again’(거기 네가 다시 간다)은 어디를 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 시작이냐”라는 뜻입니다. 별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를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레이건 후보의 메디케어 정책을 살펴보면 비판할 근거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공격한 카터 대통령보다 “또 그 타령이네”라는 한 마디로 제압해버린 레이건 후보가 박수를 받았습니다. AP통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Reagan is a master at capturing a debate moment that everyone will remember.”(레이건은 모두가 기억할만한 토론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장인이다)

“there you go again”은 레이건 대통령의 전매특허 발언이 됐습니다. 기자들이 난처한 질문을 하면 이렇게 말하며 살짝 피해갔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you’를 ‘they’로 바꿔 ‘there they go again’(쟤네 또 시작이네)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대선 토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과 밋 롬니 후보(왼쪽). 위키피디아
2012년 대선 토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과 밋 롬니 후보(왼쪽). 위키피디아


Well, we have fewer horses and bayonets.”
(음, 그때보다 말과 총검 숫자는 적죠)
2012년 대선 토론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후보가 맞붙었습니다. 롬니 후보는 오바마 행정부의 군사예산 축소를 지적했습니다. 미군 병력이 계속 줄어 100년 전인 1917년 때보다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론이나 연설에서 비교법을 쓰려면 비교 대상을 잘 정해야 합니다. 군사처럼 기술 발전이 빠른 분야에서 과거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웃었습니다. 기억도 까마득한 20세기 초반과 비교를 하니까 그 시절 주요 병력인 ‘horse’(말)와 ‘bayonet’(총검) 얘기를 꺼내며 군사기술의 현대화를 알려준 것입니다. “horses and bayonets”는 유행어가 됐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두 후보가 말을 타고 총검을 겨루는 밈(짧은 동영상)들이 쏟아졌습니다. 언론은 롬니 후보가 “KO패를 당했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We have these things called aircraft carriers, where planes land on them. We have these ships that go underwater, nuclear submarines.”(지금 시대에는 전투기가 착륙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라는 게 있거든요. 물속으로 들어가는 핵잠수함이라는 게 있거든요)

1992년 대선 토론이 끝난 뒤 대화를 나누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로스 페로 후보, 빌 클린턴 후보(왼쪽부터). 조지 H W 부시 도서관센터 홈페이지
1992년 대선 토론이 끝난 뒤 대화를 나누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로스 페로 후보, 빌 클린턴 후보(왼쪽부터). 조지 H W 부시 도서관센터 홈페이지


I don’t have any experience in running up a $4 trillion debt. I don’t have any experience in gridlock government.”
(나는 4조 달러의 국가 빚을 만든 경험이 없다, 교착상태의 정부를 만든 경험도 없다)
1992년 대선 토론은 양자 대결이 아니라 3자 구도였습니다.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 제3의 후보인 기업가 로스 페로가 나왔습니다. 페로의 등장이 못마땅한 두 후보는 그를 집중 공격했습니다. 특히 페로 때문에 보수 표가 분산될 것을 우려한 부시 대통령은 그의 정치 경력 부족을 문제 삼았습니다.

페로 후보는 ‘experience’(경험)를 반격의 단어로 활용했습니다. 4조 달러의 국가 채무와 대치 정국이 경험 많은 기존 정치인들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페로는 토론의 승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3당 후보로서 18%의 표를 얻는 전례 없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페로는 다음 대선에 또 출마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재치 있는 말솜씨를 다시 한번 기대했지만 실망스러웠습니다. 자꾸 얘기를 길게 늘어놓으며 토론 제한 시간을 어기는 바람에 눈총만 받았습니다. 그가 연발한 “can I finish?”(발언을 끝내도 되겠느냐)는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명언의 품격
1960년 대선 토론에서 존 F 케네디 후보(왼쪽)와 리처드 닉슨 후보(오른쪽).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60년 대선 토론에서 존 F 케네디 후보(왼쪽)와 리처드 닉슨 후보(오른쪽).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60년 미국 대선 TV 토론이 처음 열렸습니다.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부통령의 대결이었습니다. 토론 전 관측은 ‘닉슨 우세’였습니다. 닉슨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내며 외교 전문가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모스크바에서 벌인 맞장토론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토론 실력도 입증받았습니다. 반면 케네디 후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기는 하지만 상원의원으로서 뚜렷한 업적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었습니다.

토론은 총 4차례 열렸습니다. 1차 토론은 젊고 패기 있는 케네디 후보의 압승이었습니다. 닉슨 부통령은 하루 전날 무릎을 다쳤습니다. 핼쑥한 모습에도 무대용 화장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했습니다. TV 매체의 영향력을 몰랐던 것입니다. 반면 케네디 의원은 메이크업 담당에 코디까지 데리고 다닐 정도로 준비성이 철저했습니다. 패인을 분석한 닉슨 부통령은 2차 토론부터 달라졌습니다. 화장하고 양복 색깔을 바꿔 입으며 외모적 격차를 줄여나갔습니다. 케네디 의원은 초조해졌습니다. 토론 내용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Our high noon is in the future.”
(미국에 최고의 순간은 이제 올 것이다)
케네디 후보의 진가는 뉴욕에서 열린 4차 토론에서 입증됐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냉전 경쟁에서 소련에 뒤지는 것에 초조해하고 있었습니다. 케네디 후보가 ‘high noon’(하이눈)이라는 단어를 통해 미래를 낙관하자 국민들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high noon’(하이눈)은 ‘정오’를 뜻합니다. ‘최고의 순간’ ‘전성기’를 말합니다. 1952년 개봉한 ‘하이눈’이라는 영화도 있어서 대중에게 친숙한 단어였습니다. 이후 ‘하이눈’은 케네디 연설의 단골 단어가 됐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화제가 됐습니다. 댈러스에서 암살당한 것은 정오를 막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댈러스의 하이눈’은 ‘케네디 암살’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실전 보케 360
2021년 워싱턴 의사당 난입 사태 주모자 중 한 명으로 17년형을 선고받은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의 리더 조 빅스(오른쪽). FBI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른 극우단체 리더들에게 잇따라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프라우드 보이즈’의 지도자 조 빅스는 최근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나온 빅스는 눈물을 흘리며 형량을 줄여줄 것으로 호소했습니다.

My curiosity got the best of me.”
(호기심 때문에 벌인 일이었다)
‘curiosity’는 ‘호기심’을 말합니다. ‘curiosity got the best of me’는 ‘호기심이 나의 최고를 얻었다’가 됩니다. 쉽게 말해 ‘호기심에 굴복했다’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호기심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때 흔히 하는 변명입니다. 일상대화에서 자주 쓰니까 통째로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best’ 대신에 ‘better’를 써도 합니다. 자신은 폭력사태의 주모자가 아니라 군중에 휩쓸려 행동한 것뿐이라고 것이 빅스의 변명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7월 1일 소개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토론 실력에 관한 내용입니다. 말실수는 잘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선 토론은 넘어야 할 큰 산입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몇 차례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성적은 언제나 중하위권이었습니다.

▶2019년 7월 1일 PDF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701/96260722/1

2020 대선 민주당 후보들이 TV 토론에서 인사하는 보습. 위키피디아.
최근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1, 2차 TV 토론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조 바이든 후보는 토론에서 죽을 쒔습니다.

This isn’t Winston Churchill we are dealing with.”
(윈스턴 처칠도 아니잖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와중에 이번 토론을 열심히 시청한 듯합니다. G20 폐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바이든 후보의 토론 실력에 관해 묻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에 비교하며 조롱했습니다. 처칠 총리는 역사에 길이 남는 명연설가입니다. ‘deal with’는 ‘다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처칠 총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처칠과는 비교 대상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What she said was so out of the can.”
(그녀가 말하는 것을 보니까 정말 술술 쏟아져 나오더라)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의 토론 실력을 흉보는 데 열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진짜 의도는 바이든 후보를 맹공격한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비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음료수 캔을 열면 음료가 쏟아집니다. ‘out of the can’은 분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리스 후보가 바이든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오랫동안 치밀하고 작전을 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술술 말을 잘했다는 겁니다.

Please, Media, Give Joe Biden Some Slack!”
(제발 언론이여, 조 바이든을 조금 봐주자)
바이든 후보의 답변 스타일은 동문서답이 많았습니다. 토론하는 모습이 너무 생기가 없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은 별명 ‘Sleepy Joe’(졸린 조)와 질 맞아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졸전을 벌인 바이든 후보를 향해 비난이 쏟아지자 한 매체는 “인격 모독이 지나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의 기사 제목입니다. ‘give some slack’은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slack’은 ‘느슨한 부분’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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