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지진 현장
“구도심 빠르게 활기 찾아… 낯설다”
국왕 뒤늦은 위로 행보 비판 쏟아져
“여기 쇼 보고 가세요. 보고 사진 찍었으면 돈 내고 가시고.”
12일 오후 8시경, 나흘 전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많은 건물이 무너진 모로코 중부 도시 마라케시의 구(舊)도심 제마 엘프나 광장. 지진으로 안식처를 잃거나 여진 공포에 집을 뛰쳐나온 이들이 집단 노숙하던 광장에 거리 공연가, 기념품 판매상, 야시장 상인, 외국인 관광객 등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기념품 노점상은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관심 끌어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불과 20∼30m 곁에선 여전히 이재민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고 100m 남짓 떨어진 곳의 허물어진 유적 벽돌들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사망자가 2901명으로 집계된 이날 시간을 다투는 수색 및 구조 활동이 벌어지는 아틀라스산맥 산간 마을들과 달리 마라케시 구도심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약 50km 떨어진 산간지대에서는 여전히 수천 명이 무너진 건물 밑에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광장에 펼쳐진 임시 야시장은 흥겨운 노랫가락과 호객꾼들의 외침이 가득했다. 서늘한 날씨를 즐기러 가족 단위로 온 이도 적지 않았다.
어두운 광장 한구석에선 이재민들이 얇은 이불을 깔고 누워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가족과 함께 있던 이르함 씨는 “지진 당시 생각 때문에 어제도, 그제도 한두 시간 자다 깨곤 했다”며 “넓은 광장에 나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가족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집 천장과 벽 타일들이 다 떨어져내렸고 내부 계단도 부서졌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웃들도 피해가 있었고 산 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이렇게 지진 전으로 돌아가는 광장 모습이 조금 낯설고 이상하다”고 했다.
모하메드 6세 국왕은 이날 마라케시의 병원을 찾아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부상자 치료에 필요한 헌혈 운동에도 동참했다. 하지만 참사 당시 파리 초호화 저택에 머물면서 인명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왕의 ‘보여 주기’식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다.
외신들은 모로코가 국가 주요 수익원인 관광산업에 해를 끼치는 대외 이미지 실추를 막기 위해 피해 규모나 실상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모로코 국민은 국왕이나 정부 대응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은 국왕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광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국왕과 정부의 지진 대책을 묻는 질문에 “왕에 대해선 언급하기 어렵다. 큰일 난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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