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으로 북-러 간 밀착이 본격화된 이후 중국이 분주해졌다. 중국 외교사령탑인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이 미국, 러시아 측 카운터파트와 잇따라 고위급 회담을 연 데 이어 다음달 중-러 정상회담, 11월에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反)서방 전선에 앞장서며 북-중-러 연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의 일정 정도 관계 개선을 통해 북-러를 제어하는 역할을 택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린다.
● 북-러 회담 이후 분주해진 中
미국 백악관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 부장이 16, 17일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전격 회동했다. 왕 부장이 러시아를 찾아 중-러 외교장관 회담을 벌이기 하루 전날 미중 외교안보 수장이 먼저 만난 것이다. 이번 만남은 5월 오스트리아 회동 이후 넉 달 만이다.
백악관은 이틀간 12시간에 걸쳐 이뤄진 회동에 대해 “미중 관계의 주요 현안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 등 역내 안보 현안을 논의했다”며 “양측은 이 전략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향후 몇 개월간 추가 고위급 접촉을 추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이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의 레드라인”이라고 밝힌 점을 강조하면서도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미중 외교안보사령탑 간 회동으로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 간 만남도 다시 추진동력을 찾는 모양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연내에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특히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불참하면서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13일 북-러 정상회담 이후 중국에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왕 부장은 설리번 보좌관과의 회동 직후 1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하기 위해 곧바로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당초 왕 부장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할 계획이었지만 북-러 정상회담 이후 이를 급히 취소하고 러시아로 행선지를 바꿨다. 왕 부장의 방러는 10월로 예상되는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북-러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공유도 이뤄질 전망이다.
● 북-러 밀착으로 딜레마에 빠진 中
왕 부장의 분주한 행보에서 드러내듯 북-러 정상회담이 중국에 딜레마를 안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으로서는 북-러 밀착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견제에 나쁠 것은 없지만 동시에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나 북한의 독자성이 커지는 대목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향후 중국의 행보에 주목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러의 밀착으로 미중 간 접점이 생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은 (‘국제적 왕따’인) 러시아, 북한과 동급 취급을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면서 “중국이 북러 연대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이 북-중-러 삼각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면서 여전히 이를 미국을 견제하거나 동북아 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 CNN 방송은 “중국은 미중 경쟁구도를 고려했을 때 새로 떠오른 북-러 축에서 위험보다는 이점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도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을 지지할 수도 없고,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할 수도 없다”면서도 “미국의 대만 지원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으로 북-러와의 협력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