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 나치가 훔친 에곤 실레의 명화가 약탈된 지 85년 만에 원소유주이였던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반환됐다. 작품을 갖고 있는 기관과 개인이 작품 반환에 공감한 데다 미 수사당국이 끈질기게 도난된 작품을 추적한 결과였다.
AFP 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은 20세기 초반 활동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실레의 그림 7점이 나치가 약탈한 장물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돼 소장 기관과 개인이 이를 자발적으로 돌려줬다고 밝혔다.
반환된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A)에 전시된 ‘매춘부’(1912) ‘구두를 신는 소녀’(1910)와 각각 모건 박물관과 샌타바버라 미술관이 소장한 ‘자화상’(1910) ‘예술가의 아내 에디트의 초상’(1915)을 포함, 총 7점이다.
도난 사건을 수사한 맨해튼 지방검찰은 작품 한점당 가치는 78만~275만 달러에 달하며 이를 모두 합한 가치는 900만달러(약 120억)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7점의 작품은 모두 생전 소유주였던 오스트리아의 공연가 프리츠 그륀바움의 상속인들에게 전달됐다.
이날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열린 반환식에서 “아름다운 작품과 그림을 정당한 소유자 가족들에게 돌려주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그륀바움의 상속인 중 한 명인 티모시 레이프는 “80년 전 자행된 범죄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며 검찰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미술계에서 이번 반환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NYT는 짚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유족들이 제기한 예술품 반환 소송 중 사건 종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생전 미술품 수집가이자 나치 정권에 반대했던 오스트리아 국적의 유대인 그륀바움은 살레의 작품 80여점을 소장했지만 1938년 나치에 체포돼 독일 다하우 수용소에 감금되는 과정에서 이를 배우자에게 넘긴다는 위임장을 작성했다.
나치는 이후 그륀바움의 배우자마저도 수용소로 강제 이송했고 그의 작품을 모두 국고로 압수한 뒤 해외 경매에 부쳐 나치당 운영 자금으로 탕진했다. 그륀바움과 그의 아내는 1941년과 그 이듬해에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해외로 팔려간 그륀바움의 작품 상당수는 미국으로 반입됐다. 2018년 실레 작품 2점을 판매하려던 수집가를 상대로 뉴욕 주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한 그륀바움의 상속인들은 법원으로부터 반환 판결을 받아냈다. 그륀바움이 작성한 위임장은 강압에 의한 것으로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 판결에 힘입어 상속인들은 그륀바움이 소유했던 실레 작품 중 뉴욕에 있는 작품들에 대해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도난 신고를 접수했다. 이후 작품을 갖고 있던 뉴욕현대미술관 등 기관과 개인은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에 대한 일체의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합의서에 흔쾌히 서명했다. 개인 중에는 로널드 로더 세계유대인회의 의장도 있었다.
맨해튼 검찰은 나치의 약탈품 중 뉴욕을 경유해 미 전역에 밀매된 그륀바움 소유 실레 작품이 최소 12점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주 맨해튼 검찰은 시카고 미술관, 피츠버그 카네기 박물관, 오하이오주 오벌린대 앨런 기념 미술관에서 실레의 그림 세 점을 압수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