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에 10억 달러짜리 ‘러시아판 사드’ 무력화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0월 2일 10시 16분


크렘린궁 방어에 저고도 방공무기 ‘올인’한 탓… 크림반도 S-400 포대 1곳 남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자국 영토 크림반도를 반드시 탈환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크림반도 전역에서 연일 대규모 폭발이 관측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군의 드론과 미사일이 러시아군 시설을 타격한 것이다.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케르치대교도 파괴돼 차량 및 열차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수행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다. 동쪽으로 러시아 본토 크라스노다르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 헤르손주와 만나는 곳이다.

러시아의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S-400. [뉴시스]
러시아의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S-400. [뉴시스]


위태로운 러시아군 철도 보급선


군수 시스템의 현대화가 더딘 러시아는 아직도 보급을 상당 부분 철도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자포리자 전선에서 방어전을 펴는 러시아군은 크게 2개의 철도 보급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는 러시아 본토 로스토프주에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을 연결하는 내륙 철도선이고, 다른 하나는 본토 크라스노다르주에서 크림반도를 거쳐 헤르손으로 들어오는 크림반도 우회 철도선이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 지역 공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 내륙 철도선이 우크라이나군 재래식 포병의 사정권에 들어가게 됐다. 내륙 철도선이 완전히 막히면 크림반도는 이제 러시아군에 단 하나만 남은 보급선이 된다. 러시아군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군의 맹공에 난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대대적 공세가 시작된 것은 8월 하순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소형 정찰 드론을 여러 대 띄워 러시아군 드네프르강 이남의 헤르손 전역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결과 8월 23일 헤르손 남부 노보페도리우카 인근에 전개된 러시아군의 S-300V 방공 시스템을 찾아냈다. 드네프르강 이북의 우크라이나 장악 지역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47㎞ 정도였다. 우크라이나군은 곧장 하이마스(HIMARS: 고기동성 포병 로켓 시스템)를 동원해 장거리 정밀 유도 로켓 GMLRS를 발사했다. 로켓탄은 물론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요격 능력도 갖췄다던 S-300V 포대 전체가 GMLRS 3발에 초토화됐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군은 넵튠 지대함미사일을 개량해 자체 개발한 신형 지대지순항미사일 여러 발로 크림반도 북서부 올레니우카에 배치된 러시아군 S-400 포대도 공격했다. 러시아는 방공 자산을 총동원했지만 S-400 포대가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방공망의 허점을 찾아내 8월 27일 추가 공습을 실시했다. 결국 헤르손 남부 해안에 배치돼 있던 러시아의 ‘프레델-E’ 초수평선 레이더와 전자전 시스템마저 파괴됐다. 이 시스템은 오데사 방면에서 크림반도로 향하는 저고도 비행 물체를 장거리 탐지하고자 헤르손 지역에 전진 배치한 전략자산이었다. 헤르손의 S-300V와 올레니우카의 S-400에 이어 프레델-E까지 파괴되자 이제 크림반도로 향하는 하늘은 무방비 상태가 됐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는 더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8월 31일 크림반도 남동부 항구도시 페오도시야에 있던 러시아 군항이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았고, 9월 9일에는 크림반도 중심부의 교통 요충지 심페로폴에 있는 군수품 창고가 자폭 드론 공세에 파괴됐다. 러시아는 구형 대공포·기관총으로 드론을 요격하려 했지만 시설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세바스토폴 해군기지 타격


특히 9월 13일은 러시아에 그야말로 악몽 같은 하루였다. 우크라이나는 오데사 방면에서 다수의 자폭 드론을 띄우는 동시에, 크림반도 서부 공해상에서 Su-24 전폭기를 이용해 영국제 스톰 섀도 순항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했다. 이들 무기의 표적은 러시아 흑해함대 심장부인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였다. 우크라이나군이 띄운 미사일과 드론은 세바스토폴 해군기지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제13선박수리소를 강타했다. 도크에서 수리 중이던 4000t급 상륙함 1척, 3000t급 잠수함 1척이 미사일에 맞아 복구 불능 수준으로 파괴됐다. 수리용 도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와 크레인도 파괴됐다. 며칠 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접한 부두에 계류 중이던 호위함 ‘어드미럴 마카로프’도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손상을 입었다. 자력 항해 능력을 상실해 예인선에 끌려가는 모습이 관측됐다.

우크라이나군 당국이 러시아군의 S-400을 파괴했다며 공개한 영상 속 장면. [우크라이나 국방부 제공]
우크라이나군 당국이 러시아군의 S-400을 파괴했다며 공개한 영상 속 장면. [우크라이나 국방부 제공]
이튿날 9월 14일에는 앞서 러시아가 S-400을 잃은 올레니우카에서 동남쪽으로 약 60㎞ 떨어진 예프파토리야 기지의 S-400 진지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됐다. 9월 18일 새벽 크림반도 남쪽 해안 체르노몰스코예 포드보르예 기지에서도 S-400 방공 시스템이 드론과 미사일로 추정되는 공격에 무력화됐다. 당초 러시아는 크림반도 방어를 위해 S-400 시스템 4개 포대를 각지에 배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올레니우카, 예프파토리야, 체르노몰스코예 포드보르예 3곳의 S-400을 파괴하면서 이제 케르치대교를 지키는 페오도시야 주둔 1개 포대만 남게 됐다.

S-400은 국내 언론도 여러 차례 조명한 러시아의 최첨단 방공무기다. 러시아가 미국의 첨단 장거리 유도 무기와 스텔스 전투기에 대응하고자 기존 S-300 시스템을 환골탈태 수준으로 개발한 고성능 전략방공무기다. “미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있다면 우리에겐 S-400이 있다”는 게 러시아 측 선전이다. 2007년 러시아군에 배치되기 시작한 이 시스템은 항공기는 물론, 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는 세계 최강 방공무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가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자 여러 나라가 S-400 도입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은 러시아에 전방위 로비를 한 끝에 겨우 S-400을 도입할 수 있었다. 중국은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 가즈프롬에 4000억 달러(약 531조2000억 원)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권을 부여했는데, S-400 구매를 위한 선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튀르키예는 미국과 관계 파탄은 물론 F-35 스텔스 전투기 100여 대 구매를 포기하면서까지 S-400을 도입했다. 이쯤 되면 S-400이 얼마나 강력한 성능의 무기인지 궁금해진다.

S-400은 여러 종류의 레이더를 통합해 운용하는 시스템이다. 최대 600㎞ 거리에서부터 적 항공기와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공중 표적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개량 이전의 사드보다 우수해 마하(음속) 14 속도로 비행하는 공중 표적도 추적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미사일 발사대를 동시에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최대 36개 표적에 미사일 72발을 날릴 수 있다.

S-400, 저고도 소형 표적에 취약


S-400에 탑재되는 미사일은 크게 3종류다. 48N6 계열은 150~200㎞ 거리에 있는 전투기 크기 표적을, 40N6 계열은 400㎞ 거리에서 수송기·조기경보기 등 대형 표적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 사거리 40~120㎞인 9M96 시리즈는 기동성이 높은 전투기나 순항미사일, 전술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쓰인다. 러시아는 이 미사일들의 명중률이 일반 항공기에 대해 90% 이상, 전술탄도미사일에는 80%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레이더를 잘만 활용하면 원거리에서 미국 B-2 스텔스 폭격기, F-35 스텔스 전투기도 격추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러시아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S-400은 하늘에 떠 있는 모든 물체를 어렵지 않게 요격할 수 있는 최강 방공무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S-400이 우크라이나의 염가형 자폭 드론에 그토록 무기력하게 파괴된 이유는 뭘까.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뉴시스]
S-400은 높은 고도로 멀리서 날아오는 대형 표적은 잘 잡을지 몰라도, 낮은 고도로 접근하는 소형 표적에 대응하기는 힘든 무기다. 순항미사일이나 드론처럼 일반 항공기보다 작은 물체는 레이더 반사 면적도 작기 마련이다. 이런 표적에 대해선 파장이 짧고 주파수가 높은 X밴드나 K·Ku·Ka밴드 대역 레이더를 사용하는 게 탐지와 대응 면에서 유리하다. 이런 레이더의 파장은 0.75~3.8㎝ 이내라서 파장이 긴 다른 레이더와 비교해 정밀한 탐지·추적이 가능하다. 반면 파장이 짧은 레이더는 멀리 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거리 표적을 탐지하려면 L밴드나 S밴드 같은 장파장 레이더가 필요하다. L밴드, S밴드의 파장은 7.5~30㎝로 X밴드보다 상대적으로 길다. 그래서 탐지 정밀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나 적은 전력으로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S-400은 탐지 레이더로 파장이 긴 VHF와 L밴드 대역을 사용하기 때문에 낮게 날아오는 소형 표적을 효과적으로 탐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S-400은 저고도·소형 표적 요격에 특화된 야전 방공 시스템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군이 S-400 1개 포대에 최소 1대의 판치르-S1 시스템을 함께 배치하는 이유다. 판치르-S1은 드론, 순항미사일, 공격헬기처럼 낮은 고도로 바짝 붙어 접근하는 공중 표적으로부터 S-400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S-400은 이동 중 방공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기에 판치르-S1이 바짝 붙어 저고도·근접 방공망을 구축한다.

문제는 최근 러시아가 판치르-S1을 끌어다 엉뚱한 곳에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7~8월 모스크바 일대에 여러 차례 드론을 날려 크렘린궁의 심기를 건드렸다. 러시아 군부는 크렘린궁을 보호하고자 전국 각지의 판치르-S1과 토르 등 저고도 방공 시스템을 긁어모아 모스크바 남쪽에 밀집 방공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교외에 인공 언덕을 만들거나 타워형 거치대를 설치해 판치르-S1 등 저고도 방공 시스템을 고정 설치됐다. 러시아 당국의 이 같은 조치로 모스크바로 날아드는 우크라이나군 드론은 크게 줄었지만 전선 부대에선 난리가 났다. 헤르손과 자포리자 일대에서 S-300V·S-400·스메르치 등 러시아군 전략 자산이 우크라이나군 드론과 유도로켓, 순항미사일에 연이어 파괴되기 시작한 게 이때다. 크렘린궁만 보호하려는 군부의 과잉 충성으로 포대당 10억 달러(약 1조32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치 자산인 S-400 포대 여럿이 몇 주 만에 파괴된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러시아군 방공망의 난맥상을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군은 전국 주요 시설과 공군기지에 서방세계의 최강 방공 시스템이라는 패트리엇과 천궁을 배치해놓고 있다. S-400과 마찬가지로 중·장거리 중고도 이상 표적에 대해선 기막힌 명중률을 자랑하지만, 저고도로 날아오는 소형 드론은 막기 어려운 무기다. 북한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와 수도권 상공을 제집 드나들듯이 활개 친 사실을 상기해보자. 북한 무인기의 비행경로 곳곳에 패트리엇이나 호크, 천궁 포대를 비롯한 다양한 방공 자산이 배치됐음에도 한국군은 이 무인기가 추락하거나 복귀할 때까지 탐지하지 못했다.

북한 무인기에 뚫린 대한민국 영공


한국군의 비호복합 자주대공포. [육군 제공]
한국군의 비호복합 자주대공포. [육군 제공]
한국군은 패트리엇, 천궁 같은 고가치 방공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저고도 근접 방공무기를 배치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건 때 드러난 것처럼 현재 운용 중인 20㎜ 발칸이나 천마·비호·천호 등 대공포는 소형 무인기 대응 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 30년 전 기술로 개발된 천마와 비호의 레이더 성능은 대(對)드론 작전용으로 적합하지 않고, 레이더가 아예 없는 천호는 드론 대응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착오적 무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여러 나라는 21세기 전쟁에서 드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등 서방 군사 강국은 소형 차량에 탑재 가능한 4면 고정형 X밴드 위상배열레이더와 전자전 재머 등 드론 대응 무기를 발 빠르게 개발해 배치하고 있다. 구식 개념의 무기와 전술을 계속 고집한다면 유사시 1개 포대에 수천억 원씩 하는 고가치 방공 자산은 물론, 전국 각지 주요 시설이 북한의 싸구려 드론에 연이어 파괴될 수 있다. 한국군 당국이 러시아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방공작전 전략과 관련 장비 도입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길 바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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