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로 취임 2주년을 맞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경제단체장, 경제부처 장관 등이 참가한 민관 연계 회의를 열었다. 일본 정부는 이 자리에서 반도체 공장 토지 이용 규제 완화책을 내놨다. 취임 후 반도체 산업 육성을 핵심 산업 정책으로 추진해온 기시다 총리가 취임 2주년을 맞아 한층 강력한 ‘반도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연내에 반도체 등 ‘경제 안보’ 중요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은 농지, 임야에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할 방침을 내비쳤다. 북쪽 홋카이도부터 남쪽 규슈까지 일본 국토 전체를 ‘실리콘 아일랜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세금을 깎아주고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토지 규제를 풀어주는 ‘반도체 지원 3종 세트’를 완성해 한국 등 경쟁국을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일본 정보기술(IT) 업계(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가 정부에 “일본 반도체 부활은 2025~2030년이 최후이자 최대 기회”라고 호소한 것에 다양한 지원책으로 적극 화답하는 모양새다.
● ‘도장은 한꺼번에’ 토지 규제까지 확 푼다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에 더해 일본 정부가 토지 이용 규제까지 풀기로 한 것은 현 제도로는 반도체 공장 증설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 분양할 수 있는 산업 용지는 지난해 기준 100㎢ 정도에 불과하다. 2011년의 3분의 2 수준에 그쳐 반도체 공장 증설이 활발한 일본에서는 벌써 땅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질서한 도시 개발을 막기 위해 낙후 지역에나 녹지에 공장을 건설할 때 일부 규제를 해왔다. 이제까지는 식품이나 물류 시설 등만 개발을 허용했지만, 앞으로는 보다 유연하게 법을 해석하기로 했다. 반도체, 배터리 등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사업에 대해선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환경 보호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지금까지 1년 이상 걸린 토지 용도 지정 변경을 4개월 만에 끝낸 뒤 공장 건설을 독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계부처(경제산업성, 농림수산성, 국토교통성)가 연계해 개발 허가 절차를 한꺼번에 진행하기로 했다. 각 관청이 ‘원스톱’으로 도장을 찍어주면 곧바로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 반도체 지원 대거 담길 日 경제 대책
일본 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마련해 발표할 경제 대책은 사실상의 반도체 종합 지원 대책이나 마찬가지다. 토지 규제 개선책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본은 반도체 등의 자국 내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 우대 혜택을 주는 ‘전략물자 생산 기반 세제’ 창설을 검토 중이다. 기존에는 설비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 일부를 법인세에서 깎아주는 정도였지만, 앞으로는 생산 비용에 대해서까지 세금을 깎아줄 계획이다. 단기적 지원에 그치지 않도록 세제 혜택 기간을 5~10년 단위로 설정해 투자, 정비, 생산 전 과정에 세제 혜택을 준다는 계획이다.
막대한 보조금도 일본의 무기다.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 TSMC를 비롯해 일본 대기업 연합 라피더스(3300억 엔), 미국 마이크론(1920억 엔) 등이 수조 원 규모의 일본 정부 보조금을 받아 설비 확충에 나서고 있다. TSMC가 들어서는 구마모토현을 포함한 규슈 지역에서는 소니, 도쿄 일렉트론, 미쓰비시전기 등이 잇따라 반도체 공장 신축 또는 증설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의 연계도 강해지고 있다. 양국 경제계 모임인 ‘미일 재계인 회의’는 4일 도쿄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양국 정부가 제휴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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