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자폭드론 ‘배회탄약’으로 우크라이나 허 찌른 러시아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0월 8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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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신형 모델 ‘랜싯’, 저고도에서 300㎞/h 고속 비행해 요격 어려워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9월 19일 충격적인 보고를 접했다. 전선에서 65㎞ 떨어진 우크라이나군의 임시 비행장에 러시아군 드론 여러 대가 날아든 것이다. 러시아군 드론이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내륙 도시 곳곳을 공격하고 있지만, 이번 공습은 그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사례다. 그간 러시아군은 장거리 공격용 드론 샤헤드-136을 운용했는데, 9월 19일 근거리 전술 타격용 드론인 배회탄약(loitering munition: 일명 자폭드론)으로 종심 타격을 처음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 자폭드론 ‘랜싯’. [위키피디아]
러시아 자폭드론 ‘랜싯’. [위키피디아]


이란제 드론 대거 수입한 러시아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샤헤드-136 드론을 대량 수입했고 이제 자체 생산하고 있다. 샤헤드-136은 길이 3.5m, 날개폭 2.5m, 이륙중량 200㎏으로 비교적 덩치가 큰 자폭드론이다. 오토바이용 엔진을 사용해 가격이 저렴한 데다, 동체는 가볍고 연료 탑재량이 많아 2000㎞를 거뜬히 비행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최소 1000대의 샤헤드-136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게란-2(Geran-2)’라는 이름으로 국산화해 하루 20~30대씩 꾸준히 우크라이나 공격에 투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샤헤드-136은 대단히 위협적인 무기다. 비행 고도가 비교적 낮고, 일반 유인(有人) 항공기보다 체적이 작아 지상 레이더로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유럽 일대를 초계 비행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조기경보기가 우크라이나군 방공 작전을 지원하고 있지만, 일선 부대와 실시간 데이터 링크가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샤헤드-136이 비행 중 경로를 약간만 바꿔도 진입 코스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군으로서는 대응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드론인 것이다.

문제는 샤헤드-136보다 대응이 더 어려운 소형 자폭드론이 종심 타격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바로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랜싯(lancet)’ 배회탄약이다. 배회탄약이라는 이름 그대로 작전 지역 상공으로 날아간 뒤 공중을 배회하듯 빙글빙글 돌다가 목표물로 돌진해 자폭하는 무기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자폭드론이라고도 부른다. 랜싯은 AK 소총으로 유명한 러시아 무기업체 칼라시니코프그룹 자회사가 개발해 2019년 처음 공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이렇다 할 주목을 못 받았으나, 올해 6월 우크라이나군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 공세에 러시아군 포병 손실이 급격히 늘자 부족한 화력을 드론이 보충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자폭드론 공격에 파괴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아파트. [뉴시스]
러시아군의 자폭드론 공격에 파괴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아파트. [뉴시스]


랜싯 개량형, 탄두 강화하고 비행 가능 거리 연장


랜싯은 길이 1.6m, 날개폭 1m, 이륙중량 12㎏에 불과하다. 탄두 중량도 샤헤드-136이 50㎏에 달하는 데 반해, 랜싯은 최대 5㎏에 불과해 파괴력도 약하다. 비행 가능 거리도 25~40㎞에 그친다. 이처럼 변변찮은 스펙 탓에 랜싯은 올여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군의 조롱거리였다. 랜싯의 탄두가 엉성하게 설계돼 이 드론에 직격당한 전차와 자주포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우크라이나군이 물고기 잡는 그물로 랜싯을 무력화하는 등 전반적인 성능이 형편없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한 개량형 랜싯을 만들었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철수한 스웨덴 유명 가구업체의 대형 매장을 드론 공장으로 개조해 7월 드론 생산량을 전월 대비 50배 늘렸다.

랜싯 개량형 모델은 ‘랜싯-3’와 ‘이즈델리예-53’ 두 종류다. 크기는 기존과 동일하지만, 탄두 중량이 약간 늘고 자율비행 항법장치와 전자광학유도장치, 데이터 통신 시스템이 강화됐다. 표적 근처에 도달하면 사용자가 전자광학카메라로 드론을 정밀 유도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다. 고정 표적은 물론, 이동 표적에 대한 공격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개량형 랜싯의 비행 가능 속도는 샤헤드-136의 3배인 300㎞/h에 달한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공군기지를 공격한 것은 이즈델리예-53이다. 이 드론은 열압력탄과 대전차고폭탄을 탄두로 쓰는 데다, 60~80㎞를 비행해 우크라이나의 후방 거점을 타격할 수 있다. 피격된 공군기지는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크리비리흐 외곽에 있는 임시 비행장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 공습으로부터 항공기를 보호하고자 전국 각지의 옛 소련 시절 기지를 활용하고 있다. 수시로 거점 비행장을 옮기는 식으로 공군력을 운용하는 것이다. 러시아 드론 공격을 받은 크리비리흐 인근 비행장에는 최근 MIG-29 전투기가 임시로 전개돼 있었다. 가장 가까운 전선에서 직선거리로 65㎞ 떨어진 후방 지역으로, 러시아군 타격 자산 가운데 이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폭격기나 군함에서 발사되는 장거리순항미사일, 샤헤드-136 정도였다. 이런 무기는 러시아 영내에서 발사돼 수백㎞를 날아오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

러시아는 이 같은 우크라이나의 허점을 찔렀다. 러시아 특수부대는 후방인 크리비리흐 인근까지 진출해 소형 드론으로 우크라이나군 임시 비행장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특수부대의 정찰 정보를 바탕으로 러시아군은 헤르손 북동부 드네프르강 인근으로 추정되는 발사 진지에서 이즈델리예-53을 띄웠다. 이 드론은 65㎞ 거리를 빠르게 날아와 우크라이나 MIG-29 전투기에 정확히 명중했다. 일련의 과정을 기지 상공에 떠 있는 러시아군 소형 드론이 녹화하고 있었다. 러시아 특수부대는 임무가 끝난 뒤 소형 드론을 회수해 유유히 작전 지역을 벗어났다.

랜싯이나 이즈델리예-53 같은 소형 배회탄약은 비행 고도가 낮고 크기가 작아 일반 레이더로는 탐지하기 까다롭다. 새떼나 지상 구조물, 비가 올 경우에는 구름과 빗방울에 의한 레이더 반사파가 섞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고도·소형 비행물체를 탐지하기 위한 레이더로는 우수한 정밀도와 처리 능력을 갖춘 고성능 모델이 쓰인다. 우크라이나군에는 이런 고성능 레이더가 많지 않아 일선 군사기지나 야전부대에까지 배치할 여력이 없다. 이에 최근 소형 자폭드론에 파괴되는 우크라이나 장거리 포병 자산과 야전 지휘소가 점차 늘고 있다.
러시아 사라토프 인근 공군기지의 Tu-95 폭격기에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한 타이어들이 올려져 있다. [뉴시스]
러시아 사라토프 인근 공군기지의 Tu-95 폭격기에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한 타이어들이 올려져 있다. [뉴시스]

이런 문제는 우크라이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도 북한의 드론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2014년 북한 소형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 유유히 남하한 뒤 경북 성주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를 촬영하고 돌아가던 중 강원 인제군 한 야산에 추락했다. 한국군 당국은 북한 드론이 우리 영공을 휘저을 동안 제대로 탐지하지 못했다. 당시 북한 드론은 사드 기지는 물론, 청와대 상공을 선회하면서 사진을 여러 장 촬영했다. 경기 파주, 인천 백령도, 강원 삼척 등지에서도 무인기가 발견됐지만 주민들이 신고할 때까지 군 당국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北 무인기 탐지 못 한 한국군 ‘최신’ 레이더


당시 군 당국은 저고도 방공망을 개선하겠다며 TPS-880K 국지방공레이더 도입, 구형 비호 자주대공포 개량, 신형 천호 자주대공포 도입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뒤 한국 방공망은 또 뚫렸다. 지난해 12월 북한 소형 드론이 서울과 수도권 상공을 유유히 비행하는 동안 군 당국은 이를 탐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무사히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그제야 전투기와 공격헬기까지 투입해 요격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한국군 방공망은 2014년 치욕을 겪고도 8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한국군 TPS-880K 국지방공레이더.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군 TPS-880K 국지방공레이더. [방위사업청 제공]

앞서 지적한 것처럼 배회탄약이나 소형 드론은 일반 대공 레이더로 탐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선진국의 드론 대응 작전에는 소형 표적 탐지·추적에 특화된 고성능 위상배열레이더가 필수로 포함된다. 그것도 4면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로 360도 전 방향을 실시간 스캔하고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정밀 레이더다. 여기에 각 군이 보유한 다양한 탐지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동해 표적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지휘통신 시스템도 기본으로 깔린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 사건 당시 한국군은 여전히 드론 대응 작전에서 심각한 한계를 노출했다.

우선 육군의 ‘최신형’ 국지방공레이더는 적 무인기가 서울 상공에 들어올 때까지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지방공레이더는 360도 전 방향을 동시 탐지할 수 있는 4면 레이더가 아닌, 특정 방향만 계속 비추는 1면 고정형이다. 강화도 방면에서는 운 좋게 레이더에 걸린 적 무인기를 AH-1S 코브라 공격헬기가 요격하려 했지만, 근거리에서 100여 발의 기관포탄을 쏘고도 1발도 맞히지 못했다. 무인기를 쫓는 아군 항공기를 해병대 병력이 무인기로 오인해 대공 경계에 돌입하는 황당한 상황도 있었다. 만약 무인기를 발견한다 해도 각 대공초소나 방공진지 병력이 즉각 대응할 권한이 없다. 최일선에서 의심스러운 항적을 발견해도 대대·사단을 거쳐 군단 방공작전통제소(AOC)까지 보고가 올라간 뒤 AOC에서 피아식별 및 대응 여부를 결정한다. 요격 명령이 각 초소나 진지에 하달될 무렵 이미 적 무인기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드론戰 반면교사 삼아야


북한은 한국군의 이런 약점을 파악해 오래전부터 드론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방러 기간 중 자폭드론 5대와 정찰드론 1대를 선물 받았다. 이 중 자폭드론 5대가 앞서 우크라이나 공군기지를 공격한 랜싯 시리즈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 자폭드론을 복제해 대량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소형 드론에 대한 저고도 방공 능력이 형편없는 한국군에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유사시 대량의 소형 드론이 휴전선 각지 방공·지휘통제시설은 물론, 수도권과 강원 일대 주요 공군기지에 파상 공세를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현행 방공작전체계를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저성능·염가형 드론을 만만하게 본 러시아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미사일 합동 공습에 큰 피해를 봤다. 이제 거꾸로 러시아의 자폭드론에 우크라이나가 허를 찔렸다. 미래 전장의 큰 변수로 등장한 드론에 맞서 한국군도 대응 작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0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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