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방안을 포함한 재정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최근 좀처럼 속도를 못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기에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위기 우려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어 시급해진 EU의 전력시장 개혁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EU의 경제정책이 삐걱거리는 데는 EU의 두 경제 대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불협화음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의 수장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개인적인 스타일이 너무 달라 소통이 잘 되질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크라에 절실한 EU 예산 논의 ‘수렁’
우선 EU에서는 예산안을 확정짓는 문제가 시급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의 6년 공유예산에 대한 추가 협상이 필요한데 논의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특히 EU가 예산으로 우크라이나의 내년도 예산 수요에 대응해 신속히 지원하려면 연말까지 예산안이 합의돼야 한다. 게다가 미국 의회에서 지난달 30일 통과된 임시 예산에는 우크라이나 지원액이 포함되지 않아 EU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더욱 다급해졌다.
EU에선 예산안 합의에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의 이견이 장애가 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EU의 한 고위 관계자는 FT에 “두 사람이 한 방에 앉아 정리하면 될 일”이라며 “그렇지 못하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EU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도 “두 사람이 더 큰 그림을 보지 않으면 일(예산안 합의)을 끝낼 수 없다”고 우려했다.
EU의 전력시장 개혁 정책도 정체돼 있다. 주요 에너지원인 원자력발전을 두고 양국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원전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반면 독일은 정책적으로 반대 입장이 확고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숄츠 총리 내각의 ‘탈원전’ 방침에 “역사적인 실수”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양국은 EU의 원전에너지 소비에 대한 지원을 두고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카리스마형 마크롱 VS 과묵한 숄츠
내연기관 차량 정책을 두고도 양국은 얼굴을 붉혔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독일은 올 3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자’는 EU 합의문에 서명하기 전 ‘e퓨얼(합성연료)’을 쓰는 내연기관 차량은 계속 판매를 허용하자고 주장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기업계의 압박에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클레망 본 프랑스 교통부 장관은 “독일이 반란을 주도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양국이 경제 정책을 두고 사사건건 격돌하는 이유는 양국 정상의 ‘케미 부족’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9일부터 1박 2일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양국 정부 간 대화에서 불협화음이 나올 것을 우려하며 “양국 국회의원과 외교관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마크롱 대통령과 입을 다물고 있는 숄츠 총리 간의 ‘케미 부족’으로 양국 정부가 차이점을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폴레옹을 닮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반면 숄츠 총리는 비교적 조용한 스타일이다. 나이도 마크롱 대통령이 46세, 숄츠 총리가 65세로 둘은 거의 아들과 아버지 격이다.
이날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양국 정부 간 대화는 양국이 새로운 정책 성과를 도출해내기 보단 우호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목표다. 이 때문에 숄츠 총리는 2011~2018년 시장을 역임해 애착이 남다른 북부 항구 도시 함부르크의 휴양지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맞았다. 이에 독일 기독민주연합(CDU) 소속 데틀레프 세이프 의원은 로이터통신에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면 둘 다 손해를 볼 뿐만 아니라 EU도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침 이번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함부르크에 도착하기 직전 함부르크 공항 운항이 1시간 반가량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양국은 바짝 긴장했다. 이란 테헤란에서 이륙해 함부르크로 향하던 항공기에 대해 ‘테러 공격’을 암시하는 e메일이 독일 경찰에 발송됐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양국이 우호를 되찾는 데는 난항이 예상되지만 양국이 결국엔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며 긍정하는 시각도 있다. FT는 “양국은 험난한 상황을 극복하고 EU를 이끌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이어온 역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스벤 기골드 독일 경제기후보호부 장관도 “유럽의 핵심은 프랑스와 독일 갈등을 포함해 (갈등을 푸는) 협상의 공간을 찾는 것”이라며 “현 관계가 지난 수십 년보다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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