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주민 110만명에 대피 통첩
현지언론 “이르면 14일 진입 가능성”
이란-레바논 등 중동전쟁 확전 우려
유엔 “파괴적 결과 초래” 철회 촉구
이스라엘군이 “며칠 내로 가자지구에서 중요한 작전을 벌이겠다”며 가자지구 북부 주민에게 24시간 안에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7일(현지 시간)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공습 위주로 전개되던 중동전쟁의 지상 전면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란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투입을 사실상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어 중동전쟁 확전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3일 0시 직전 성명을 발표해 “며칠 내로 가자시티(가자지구 북부 최대 도시)에서 대규모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면서 “가자시티 등 주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중부) 와디가자의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통보했다. 유엔도 이날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가자 북부 약 110만 명의 주민들이 향후 24시간 이내에 남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언제 가자지구에 진입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는 이날 “여러 소식통들이 14일 당일 또는 직후에 지상군이 진입할 것이라고 (본보에) 전해 왔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이 명령이 “매우 파괴적인 인도주의적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미 비극적인 (가자지구) 상황이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를 철회해 달라”고 촉구했다.
하마스는 이날 주민 대피를 저지하는 ‘맞불 성명’을 냈다. 살라마 마루프 하마스 미디어 책임자는 이스라엘의 대피령이 “허위 선전을 퍼뜨려 주민들 사이에 혼돈을 일으켜 내부 결속을 해치려는 심리전”이라면서 주민들에게 “집에 그대로 남아 있으라. 점령자(이스라엘) 측이 촉발한 이 역겨운 심리전 앞에 굳건히 버티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에 나서면 민간인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란의 불길이 중동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 레바논, 시리아 등 이슬람 ‘시아파 벨트’ 국가를 찾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은 12일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공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새로운 전선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마스 외 다른 세력이 가세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12일 하마스 대원들에게 살해된 영유아 시신 사진을 공개하며 지상군 투입에 앞서 국제사회 지지를 호소했다. 이스라엘에 급파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관련 사진을 기자회견에서 공개하며 “인류 최악의 타락이다. 지금은 도덕적 명확성을 위한 순간”이라면서 이스라엘에 힘을 실었다.
이스라엘 “가자 주민 24시간내 대피하라”… 하마스 “집에 있어라”
[중동전쟁]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앞두고 초긴장 이, 영유아 등 민간인 피살사진 공개 …지상전 명분 쌓은 뒤 진입 명령 대기 하마스, ‘민간인 인간방패’ 우려 커져…美 국방장관, 이스라엘서 작전 논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면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미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된 이스라엘 예비군 30만 명과 장갑차, 탱크 등은 진입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주민을 향한 24시간 내 대피 권고는 지상작전 돌입 전 마지막 단추를 끼우는 격이다. 하지만 하마스 지도부는 “점령자 측이 촉발한 역겨운 심리전”이라며 대피령에 따르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마스가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이스라엘이 작전을 강행하면 가자지구 내 대규모 인명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
● ‘영유아 시신’ 사진 공개 뒤 전격 결정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이날 0시 직전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 북쪽) 가자시티 등 주민들은 와디가자 이남으로 대피하라”고 통보했다. 대피 시한은 24시간으로 제시됐다.
앞서 12일 이스라엘 총리실은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에 하마스 대원들의 잔혹한 이스라엘 민간인 살상 사진 3장을 공개했다. 한 사진에는 피로 흥건한 침대가 보이고 다른 사진에는 기저귀를 찬 아기 시신이 비닐백에 담겨 있는데 머리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다. 또 다른 사진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아기 시신이 담겨 있다. 설명이 없으면 아기라고 알아보기 힘들 만큼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총리실은 게시물에서 “하마스 괴물들이 살해하고 불태운 아기들의 끔찍한 사진”이라며 “하마스는 인간이 아니다.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다”라고 주장했다. 그간 말로만 전해진 하마스의 민간인 살상 의혹을 뒷받침할 사진을 공개하며 지상작전의 명분을 쌓은 뒤 몇 시간 만에 전격 가자지구 주민 대피 명령을 내린 것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선전전’에 넘어가지 말라며 피란을 막아섰다. 하마스 지도부는 13일 성명에서 “이스라엘은 본토(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시민들을 추방하기 위해 심리전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을 향해 대피령에 따르지 말고 집에 머물라고 촉구했다. 또 최근 24시간 새 가자지구 곳곳에서 외국인을 포함한 인질 13명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주민과 인질들이 거점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 “서로 작별인사” 대형 무덤 우려
가자지구는 이집트와 맞닿은 남부 라파에서 북부 베이트하눈까지 거리가 41km로, 차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라 총 230만 인구의 절반가량인 북부 주민 110만 명이 하루 만에 남부로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엔 스테판 뒤자리크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이미 비극적인 상황이 ‘재앙’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피 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 네발 파르사크 대변인도 “약 110만 명이 안전하게 대피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패닉’ 상태다. AP통신은 주민들이 공포에 질려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쓸어담고 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인터넷과 전화 통신망이 붕괴돼 대피 명령조차 듣지 못한 주민들이 많다. 현재 북부 거리는 텅 비었다”고 전했다.
이미 도로와 건물이 폭격당하고 부상자도 6000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대규모 대피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가자지구 최대 의료기관인 알 시파 병원의 원장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병원은 대형 공동묘지가 돼버릴 것”이라며 참담함을 나타냈다. 파르사크 대변인은 “많은 의료진이 부상자를 두고 떠나길 거부하며 이미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며 흐느꼈다. 로이터통신은 12일 병원 전력이 끊겨 영안실 냉각기조차 멈춰 유족들이 유해가 부패될세라 맨손으로 이들의 시신을 운반하고 있다고 참혹한 광경을 전했다.
● 美 “이스라엘 지지”, 英도 병력 지원
이스라엘에 급파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2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직후 기자회견에선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 사진을 공개하며 “하마스의 만행은 인류 최악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13일 이스라엘을 찾아 작전 계획 및 목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도 P8 해상초계기와 함정 두 척, 헬리콥터 3대, 해병대 1개 중대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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