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스라엘국방군(IDF)은 미군에 버금가는 강군(强軍)의 상징이었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 투쟁 끝에 자리 잡은 나라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정예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0월 7일(이하 현지 시간) 팔레스타인의 일개 군벌 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을 압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하마스의 공격은 삽시간에 이스라엘 남부 각지 도시와 마을은 물론, 군사기지를 타격했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이 자랑하는 첨단 기갑장비를 대거 파괴하고 노획까지 했다. 하마스는 10월 7일 하루에만 25㎞ 넘는 거리를 진격하면서 이스라엘군을 격파했다.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군이 무서운 기세로 반격에 나서긴 했지만, 개전 초 하마스의 기습이 성공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개전 첫날 25㎞ 진격한 하마스
하마스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운동) 당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분파가 떨어져 나와 설립한 조직이자 정당이다. 팔레스타인의 여러 정파 중 ‘이슬라믹지하드’와 더불어 극단적 폭력 노선을 걸었다. 하마스가 이번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북한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북한은 3대 세습독재와 극심한 경제난의 책임을 모두 ‘미제’ ‘남조선’에 전가하고 있다. 하마스도 마찬가지다.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지구에는 이렇다 할 부존자원이 없는 데다, 각종 인프라도 낙후됐다. 세종시보다 약간 넓은 가자지구의 주민은 약 200만 명으로, 대부분 이스라엘, 유엔, 유럽연합(EU)의 인도적 지원과 인근 아랍 국가들의 물밑 지원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다.
문제는 사실상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자원 대부분을 틀어쥔 채 불법 무기를 만들거나 구입하는 데 악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손에 쥔 무기로 ‘독립운동’이라는 미명 하에 야만적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당초 하마스의 폭력 투쟁에 통쾌함을 느끼며 동조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많았다. 그러나 하마스가 죄 없는 민간인, 심지어 여성과 어린이 등 노약자까지 공격하자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추락했다. 하마스의 폭력 투쟁이 심해질수록 국제사회의 지원은 줄고 이스라엘의 억압은 강해진 탓에 가자지구 주민의 삶은 더 황폐해졌다.
가자지구에서 기반을 잃어가던 하마스로선 권력을 유지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때마침 4~5월 이슬람 성지인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을 둘러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갈등으로 긴장이 고조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른바 ‘사법개혁’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극한 내분도 하마스 입장에서는 기회로 보였을 테다. 그간 하마스 배후에는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자리했고, 헤즈볼라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하마스는 자기네가 이스라엘에 치명타를 입히면 ‘뒷배’가 함께 싸워줄 것이라 믿고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마스는 침공 첫날 같은 편조차 눈감아주기 어려운 끔찍한 범죄를 너무 많이 저질렀다. 게다가 범죄 현장을 제 손으로 촬영해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엽기적 행각까지 벌였다. 이제 하마스는 권력 유지는 고사하고 존립 기반 자체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지상·해상·공중 아우르는 입체 기동전
개전 초 하마스는 일개 군벌이라도 작심하고 준비하면 이스라엘 같은 군사강국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에 하마스가 벌인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핵심 표적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데 이어, 7개 축선으로 지상·해상·공중을 아우르는 입체 기동전을 펼쳤다. 물론 하마스의 기동전은 단발성 공격에 가까웠지만 국토 면적이 적은 이스라엘에는 대단히 치명적이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몇 시간 만에 사상자 수백 명과 100명 넘는 피랍자를 냈다.
특히 이번 로켓 공세는 그동안 하마스가 벌인 어떤 공격보다도 규모가 컸다. 하마스가 얼마나 많은 로켓을 발사했는지 분석이 분분하지만, 공격 개시 시각인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2200여 발이 거의 동시에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하루 동안 적게는 4000여 발, 많게는 7000여 발에 달하는 각종 발사체가 이스라엘 전역으로 발사됐다. 하마스가 쏜 발사체는 일명 ‘카삼 로켓’으로 불리는 로켓탄과 가짜 탄두를 단 미끼탄, 박격포탄, 유탄 등 온갖 종류가 섞여 있었다. 이 로켓들은 이스라엘 각지를 타격해 안식일 새벽 단잠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군과 시민을 살상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간 무적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돔’이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아이언돔은 그동안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슬람 테러조직의 로켓 공격에서 평균 90% 넘는 요격 성공률을 보였다. 이름 그대로 이스라엘 하늘의 ‘강철 지붕’으로 명성을 날렸다. 하마스는 여러 차례 로켓 공격이 실패했던 것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진짜 로켓과 ‘미끼’를 섞어 대량 발사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아이언돔의 최대 방어 능력을 아득히 넘어선 물량 공세에 이스라엘 하늘이 뚫린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10개 포대의 아이언돔이 배치돼 있다. 아이언돔 포대는 20발의 ‘타미르’ 요격미사일이 들어 있는 발사차량 3~4대와 작전통제소 1곳, 사격통제용 EL/M-2084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 1대로 구성된다. 아이언돔 작동 방식은 이렇다. 우선 적이 로켓 또는 포탄을 발사하면 레이더가 이를 탐지해 예상 낙하 코스를 계산한다. 만약 주거지나 군사시설이 공격받을 것으로 예상되면 적 로켓을 표적으로 지정해 각 발사기에 분배한다. 작전통제소가 찍어준 표적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은 적외선 유도 방식으로 날아간다. 이론적으로 아이언돔 1개 포대는 표적 60~80개를 동시에 요격할 수 있다. 10개 포대의 아이언돔이 최대 800개에 달하는 각종 발사체를 한꺼번에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마스가 10월 7일 새벽 동시에 쏜 로켓 수는 이스라엘이 보유한 아이언돔 요격 역량의 3배에 달했다. 모든 아이언돔이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된 것도 아니기에 이스라엘 남부는 방공 능력의 4~5배에 달하는 공격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 기갑차량의 취약성도 노출됐다. 세계 최강 맷집을 자랑한다던 이스라엘 신형 전차와 장갑차가 RPG-7에 무참히 파괴됐다. 하마스가 선전 차원에서 공개한 영상 속 이스라엘 기갑부대의 모습은 처참했다. 집채만 한 덩치의 메르카바 Mk.Ⅳ 전차와 나메르 장갑차가 하마스 대원이 쏜 RPG-7에 장갑판이 관통됐다. 피격 후 무력화된 전차와 장갑차에 하마스 대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부상당한 이스라엘 병사들을 끌어낸 뒤 무참히 살해했다. 이 모습은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됐다.
이스라엘 기갑차량 격파한 신형 RPG-7VR
이스라엘군의 신형 전차와 장갑차에는 ‘트로피’라는 능동방어장치가 탑재된다. 트로피 시스템은 대전차미사일이나 로켓탄을 레이더로 감지하고 요격탄으로 방어해 차체가 피격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이번에 파괴된 메르카바 Mk.Ⅳ 전차와 나메르 장갑차는 트로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둔지가 기습 공격을 받을 당시 트로피 시스템의 요격탄이 장전돼 있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트로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도 이들 기갑차량은 대전차무기인 RPG-7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자체 장갑판을 갖췄다. 하마스는 RPG-7VR이라는 신형 로켓을 사용해 이스라엘 기갑차량의 장갑판을 뚫은 것으로 보인다. RPG-7이 최대 300~350㎜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신형 RPG-7VR은 이중탄두 구조 덕에 750㎜ 관통력을 발휘한다. 피격된 메르카바와 나메르는 취약 부위인 엔진룸 측면이나 측후방을 얻어맞았고, 이 때문에 전투력을 상실하고 무력화됐다.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된 이번 분쟁은 결국 이스라엘 승리로 귀결된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개전 초 이스라엘이 겪은 참극은 한국에도 여러 교훈을 준다. 우선 하마스의 로켓 물량 공세는 대량으로 투발된 로켓무기가 개전 초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스라엘 아이언돔은 중과부적이었을 뿐, 이번 분쟁에서도 90% 이상 요격률을 보였다는 점이다. 하마스의 주도면밀한 기습 공격에 방공망이 허점을 드러냈지만 아이언돔은 무기체계로서 문제가 없다.
문제는 유사시 북한의 대규모 미사일과 장사정포 공격에 노출될 한국 방공망이다. 국방부는 아이언돔 대신 사거리, 요격고도, 동시 교전 능력이 모두 떨어지면서도 값비싼 한국형 아이언돔을 자체 개발해 10년 후 배치할 계획이다. 한국형 아이언돔 사업에 책정된 3조 원을 아이언돔 구매 비용으로 사용하면 이스라엘군 조달 가격 기준으로 발사기 4대 편제의 아이언돔 포대 37개를 구입할 수 있다. 각 포대의 동시 교전 능력을 80개로 가정할 경우 동시에 날아오는 2960발의 각종 로켓탄과 장사정포탄을 막을 수 있는 규모다. 아이언돔의 타미르 요격미사일은 사격통제레이더로 표적만 지정하면 알아서 유도되는 ‘파이어 앤드 포겟(fire-and-forget)’ 방식이다. 작전통제소의 데이터 처리 용량과 발사기 수를 늘리면 동시 대응 능력도 강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군 당국은 ‘국산화’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지 굳이 자체 개발을 결정했고, 그마저 10년 후에나 배치하겠다고 한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 상황을 고조할 때마다 군 당국이 외치는 ‘파이트 투나이트’ (상시 전투 태세) 정신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이번 기회에 한국군 기갑차량의 방어 능력도 점검해야 한다. 이번에 하마스가 쓴 RPG-7VR 같은 이중탄두 구조의 대전차무기는 북한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군보다 방어력이 훨씬 떨어지는 한국군 기갑장비는 이중탄두 버전이 아니더라도 북한군이 보유한 구형 대전차무기에 종잇장처럼 파괴될 수 있다. 동급 서방제 전차보다 가볍고 장갑도 얇은 한국군의 K1 계열 전차와 K2 전차는 차체·포탑 전면을 제외하면 어느 방향에서도 RPG-7을 막을 수 없다. K2 전차 개발 과정에서 트로피 같은 능동방어장치도 함께 개발됐다. 하지만 우리 군은 세트당 10억 원에 달하는 가격과 능동방어장치에 맞는 교리 및 전술이 없다는 이유로 도입을 미뤘다.
이스라엘 고전(苦戰), 한국군도 교훈 삼아야
한국군 장갑차의 방호력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등장하는 보병수송용장갑차나 보병전투장갑차는 RPG-7과 대전차지뢰, 급조폭발물(IED)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고자 복합·증가장갑과 능동방어장치가 장착된다. 반면 한국군의 현용 주력 장갑차 K200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돼 RPG-7은 물론, 중기관총탄에도 뚫리는 실정이다. 최신형 장갑차라는 K808, K806도 북한이 보유한 대전차무기나 중화기에 제압될 수 있다. 비교적 장갑이 두꺼운 보병전투장갑차 K21도 자력으로 강을 건너야 한다는 조건 탓에 방어력이 취약한 편이다. RPG-7 로켓탄 1발이 100달러가량인데, 북한은 모든 보병분대에 RPG-7을 배치하고 있다. 한국군 장갑차 1대에 9명 또는 12명이 탑승하니, 북한은 단돈 100달러 정도로 우리 군 1개 분대를 제압할 수 있는 셈이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개전 초 이스라엘이 겪은 고전을 한국군도 눈여겨봐야 한다. 중동과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다르다며 현실을 외면한다면 유사시 한국군은 이번에 이스라엘군이 당한 것보다 몇 곱절 더 끔찍한 참극을 겪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