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폭격 뚫고 국경 왔지만 가자 유일 탈출구 막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8일 03시 00분


[중동전쟁]가자-이집트 접경지 르포
이집트, 가자 피란민 입국 차단
이스라엘, 구호품 가자반입 봉쇄

16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집트로 향하는 국경이 개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라파=신화 뉴시스
16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집트로 향하는 국경이 개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라파=신화 뉴시스
타바=김기윤 특파원
타바=김기윤 특파원
17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부 도시 타바에는 좁게는 4, 5km 간격으로 검문소가 설치돼 차량 행렬이 수시로 멈췄다. 이 도시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피란민들이 탈출하고 외부 구호물자가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라파 국경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다. 라파 국경검문소 쪽으로 민간인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이집트 당국은 국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외교 및 군사 목적의 통행을 제외하고는 차단했다.

가자지구는 물, 연료, 의약품이 바닥나고 유엔 등의 구호도 끊긴 상태다. 피란민들은 하마스 궤멸을 위한 이스라엘의 지상전 개시 전 탈출하기 위해 라파 국경으로 몰려들었지만 이날도 탈출로는 열리지 않았다. 라파 국경검문소에서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하델 다우드 씨는 16일 로이터통신에 “라파 검문소까지 오는 길에 수차례 폭격을 당해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가자에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라파 국경에 접한 이집트에서는 식량과 의약품, 연료 등을 실은 대형 트럭 수십 대가 줄지어 입경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는 “몇 km만 가면 닿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구호물자가 국경 인근에 쌓여 가고 있다”고 카타르 공영 알자지라 방송에 말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라파 국경 개방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집트는 테러리스트 등이 난민에 섞여 입국할 경우 분쟁에 휘말릴 수 있어 피란민 입국을 막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구호물자의 가자지구 진입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마스가 인질들을 석방하지 않는 한 봉쇄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이스라엘 등 중동 지역을 찾는다. 이스라엘에 ‘하마스는 제거하되 가자지구를 점령해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관련국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가자 식량 바닥나”… 바이든, 오늘 이스라엘 찾아 ‘봉쇄 해제’ 설득


가자-이집트 접경지 르포
이집트 등에 난민입국 허용 촉구
국경앞 난민들 “이곳엔 생명 없어”… 이집트 국경에 구호품 쌓여 있어
WHO “가자 임산부 8만여명 위험”

“같은 이슬람 형제로서 전쟁은 안타깝지만 만약 테러리스트가 이집트로 들어오면 지금보다 장사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이집트 시나이반도 타바에서 식당을 하는 압델할림 씨는 17일 기자에게 말했다. 인근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베니프 씨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지만 그간 시나이반도 북부에서 테러 등 사건이 많이 발생해 난민을 다 받는 것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라파 국경검문소는 가자지구 피란민들의 해외 탈출로이자 국제사회 구호품이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 통로다. 이집트는 무분별한 난민 유입 우려에 피란민 입국을 막은 데 이어 타바와 같은 인근 도시에서 들어오는 민간인까지 통제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구호물자 운송을 막고 있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18일 이스라엘을 찾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측에 라파 국경 개방을 집중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 피란민들 “이곳엔 생명 없다”
병원 달려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서 16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병원으로 몰려오고 있다. 이스라엘 지상군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남쪽으로의 피란이 여의치 않은 
상당수 주민은 사실상 피란을 포기했다. 가자시티=AP 뉴시스
병원 달려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서 16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병원으로 몰려오고 있다. 이스라엘 지상군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남쪽으로의 피란이 여의치 않은 상당수 주민은 사실상 피란을 포기했다. 가자시티=AP 뉴시스
16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가자지구 쪽 라파 검문소 앞에는 피란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미국-팔레스타인 이중국적자인 자카리아 아라바슐리 씨(62)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도 음식이 바닥났다. 하마스든 아니든 상관없이 죽어 나간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말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통역사인 제이슨 샤와 씨(55)도 부인과 두 딸을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그는 “외국인을 위한 안전 통로도 없어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이 이어지면서 이날 라파 검문소 근처에도 포탄이 떨어져 건물 한 채가 무너졌다.

이집트 쪽 라파 검문소 앞에는 가자지구로 들어가야 할 식량과 의료품 등을 가득 실은 트럭 수십 대가 늘어선 채 입경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적신월사(이슬람 적십자사)는 “지난 며칠간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튀지니로부터 비행기 8대 이상이 구호품을 싣고 왔다”고 16일 알자지라에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들어온 30만 명분 필수 의료품 등 구호물자도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WHO 관계자는 “가자지구에 원조가 끊겨 임산부 8만4000명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병원 44곳이 공격받은 것으로 집계돼 지원이 시급하다”고 17일 CNN에 밝혔다.

● 이집트는 피란 막고, 이스라엘은 물자 막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5시간에 걸쳐 회동한 뒤 “미국은 이스라엘과 인도적 지원이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도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합의했다”며 알맹이 없는 발표를 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500∼600명의 출국과 구호물자 공급 등을 이스라엘, 이집트와 협상해 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 난민들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하마스 대원들이 섞여 들어와 분쟁에 휘말릴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국경을 접한 요르단도 난민 수용 거부 입장을 표명했다. 구호품의 가자지구 반입은 이스라엘이 막고 있다. ‘가자지구 봉쇄’를 카드로 하마스에 인질 석방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18일 이스라엘 등 중동 지역을 찾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풀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방문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인도적 지원 허용 약속을 요구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요르단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대통령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도 만난다.

#중동전쟁#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가자지구#이집트#국경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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