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병원이 공습을 당해 수백 명이 죽었다는데 아무리 전쟁이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요. 이건 정말 미쳤습니다.”
18일(현지 시간) 이집트 북부 도시 이스마일리아에서 만난 호셈 압둘라 씨는 “어젯밤 공격으로 가자지구에 구호품이 더 다급히 필요할 텐데 큰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스마일리아는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품을 가득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는 트럭들이 1차로 집결하는 곳이다. 줄지어 늘어선 트럭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찍혀 있었다. 운전사로 일하며 트럭들이 집결하는 것을 도왔다는 압둘라 씨는 “구호품이 계속 이곳에 와도 가자지구로 넘어가는 국경 앞에서 막히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 구호품 쌓이는데 굳게 닫힌 국경
가자지구와 접경한 이집트 쪽 라파 국경검문소에서 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져 있는 이스마일리아에는 가자지구로 보낼 이집트 전역의 구호물자가 모인다. 이날도 전국에서 모인 물품 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끼고 있어 육로, 해로를 통해 이곳으로 전달되는 구호품은 전 세계의 구호물자가 모이는 이집트 ‘엘 아리시’ 공항으로 보내진다. 최종 목적지는 가자지구다. 그러나 이집트는 테러리스트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우려해 피란민 출입을 막고 있고, 이스라엘은 하마스 압박을 위해 물자 반입을 막고 있어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가 날로 심각해져 구호품 지원을 위해 뜻을 모으려던 이집트 등 주변국들은 전날 밤 병원 폭격 사태로 크게 당황한 분위기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으로 구호품 전달 계획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더욱 격화하는 가운데 이집트 당국은 18일 구호품을 실은 트럭 주변을 더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경비대원들은 일대를 지나는 거의 모든 차량을 멈춰 세우고 “외국인은 통제하고 있다” “어떤 목적으로 여기 있는 것이냐”며 차량들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보냈다.
라파 검문소 앞에는 여전히 구호품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무기한 대기 중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마일리아를 거쳐 가자지구와 맞닿은 코앞까지 트럭들이 도착해 있는데 여전히 국경이 열리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집트 적신월사(이슬람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아미르 씨는 “구호품이 가자지구까지 전달될 것이란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 이집트 개입 수위 놓고 민심 갈려
구호품 전달 통로는 막혀 있지만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국에선 민간 기부금을 모금하며 추가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스마일리아 현지 구호단체에 가자지구를 위한 기부금을 냈다는 무함마드 씨는 “병원 공습으로 가자지구는 최악의 상황이다. 금액은 1000이집트파운드(약 4만 원) 정도지만 구호품 전달이 시급하다고 생각해 기부했다”고 말했다.
국제 구호단체들도 일단 구호품을 실어 가자지구 앞까지 나르느라 분주하다. 카이로에서 활동하는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며칠 전 첫 번째 구호 트럭을 이스마일리아로 보냈다. 지금도 이집트 전역에서 물품이 들어오고 있다”며 “예기치 못한 인도주의적 위기에도 이집트에 있는 구호단체들은 도움을 이어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했다.
다만 이번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이집트 정부의 개입 수준을 두고는 민심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집트 국민들은 인접국의 전쟁이란 악재까지 겹치면서 ‘지원은 하되 정부가 너무 나서면 안 된다’는 의견과 ‘정부가 적극 개입해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시각이 팽팽히 갈려 있다. 특히 불안한 정세에 이집트가 휘말릴 경우 경제난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이스마일리아의 한 식당 주인은 “정부가 적극 나서면 우리 국민들까지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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