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늦추고 드론 공격 나선 까닭은?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0월 21일 1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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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드론으로 하마스 지도부 핀셋 제거, 비밀 땅굴 파괴… 시가전 부담 최소화 전략

이스라엘군이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군이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된 배경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상군 투입 지연은 정치·외교·군사적으로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다만 이스라엘이 개전 초 하마스가 벌인 만행에 이를 갈고 있다는 점에서 군사 전략 차원의 냉정한 고려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소말리아, 이라크전쟁 시가전의 참상
객관적 군사력만 놓고 보면 일개 무장정파인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징집병과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상비군은 개전 초 대응 임무가 주된 역할이다. 이스라엘의 진짜 전력은 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역 당시 계급과 병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스라엘 예비군은 한 해 30~45일 이상 복무하고, 3년에 한 번은 가자지구나 레바논 국경 지역에 투입돼 실전 임무를 수행한다. 20대 초반에 전역한 이후 45세까지 예비군으로 복무하는 내내 한 부대에서 친구, 선후배와 함께 근무하기에 유대감이나 팀워크가 탄탄하다. 이스라엘군 병사의 개인 화기와 총기 부착 광학장비, 방탄복, 통신장비 성능은 상당히 뛰어나고 일선 부대의 지휘통제통신체계도 우수하다. 반면 하마스 조직원은 제대로 된 군사훈련도 못 받은 채 조악한 무기로 싸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로 밀고 들어갈 경우 하마스 따위는 단번에 소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진입을 망설이는 이유는 지상군이 들어가는 순간 펼쳐질 시가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전 참상은 이미 여러 전쟁에서 증명됐다. 시곗바늘을 돌려 1993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전투를 떠올려보자. 당시 미군은 모가디슈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를 잡기 위해 최정예부대를 동원했다. 이때 투입된 부대 면면을 보면 미 육군 제75레인저연대와 일명 ‘델타포스’로 불리는 제1특수부대작전분견대,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빈 라덴 사살 작전으로 유명한 해군 특수전개발단 ‘데브그루’, 공군 제24특수전술대대 등 화려했다. 이들 부대는 당시로선 최첨단 특수전 장비를 갖췄고, 대원 개개인의 전투 능력도 가히 일당백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디드가 동원한 무장 전투원, 즉 군사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도 없는 무장 갱단을 상대로 고전했고 큰 피해를 입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당시 전장 상황을 그 나름 잘 묘사했지만, 그마저도 당시 미군 대원들이 겪은 참상을 전부 그려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다.

갱단 수준의 허접한 전투원도 시가전에서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은 이라크전쟁 당시 팔루자·모술 전투에서도 드러났다. 수없이 들어선 건물과 골목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도심 지역 전투는 천하의 미군도 쩔쩔맬 수밖에 없는 지옥과도 같은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어디서 총알과 로켓탄이 날아오거나 급조 폭발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파에서 누가 적군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분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방패’ 내세운 테러집단에 속수무책
시가전은 공격자보다 방어자가 유리한 싸움이다. 방어자는 어디서 싸울지 결정할 수 있고, 전투 지역의 지형을 활용해 미리 함정을 파놓기도 한다. 심지어 자기네가 통제하는 도심에서 민간인을 방어 작전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나 자칭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이런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민간인 사이에 숨어들어 상대의 눈을 피하다 기습하거나, 아예 여성과 어린이에게 폭탄조끼를 입혀 자살폭탄 공격 수단으로 삼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적대 행위에 동원된 민간인이 사망하면 그 시신을 선전 자료로 뿌리면서 상대방의 잔혹함을 비난하고 반전 여론을 만들어낸다.

이런 조건에선 이스라엘군이 아니라 미군, 심지어 각국의 잘나간다는 특수부대를 전부 끌어와도 작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정규군은 국제법과 국내법을 준수하는 정공법을 펴지만, 피란 가는 주민을 ‘인간방패’로 쓰는 하마스 같은 테러집단에는 금기(禁忌)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이런 자들과 수십 년 동안 싸워왔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하면 하마스가 어떤 전술로 싸울지 잘 알기에 그에 맞는 ‘플랜 B’도 준비하고 있을 테다. 따라서 이번 가자지구 시가전은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 방식의 도심 점령 작전은 매우 단순하다. 우선 적이 어디에 방어선을 쳤는지 확인해 집중 폭격·포격을 가한다. 그 후 전차와 장갑차, 보병을 투입해 건물을 하나하나 수색하고 소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가전 전술은 적의 부비트랩 공격에 대단히 취약하다. 건물 하나를 장악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우크라이나군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건물 기둥에 폭탄 여러 개를 은밀히 설치하고 러시아군이 건물 안에 들어와 휴식을 취할 때 그것을 터뜨렸다. 이 일로 러시아군 1개 중대 규모 병력이 일거에 생매장됐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에 앞서 다양한 유형의 ‘드론’을 전개한 것이 주목된다. 이스라엘군이 현재 가자지구에서 운용하는 드론은 어른 주먹만 한 소형부터 큰 것은 휴대용 가스레인지만 하다. 이 드론들은 가자지구 곳곳을 날아다니며 출입문과 창문을 통해 건물 내부에 진입해 사람 대신 수색 작전을 수행한다. 전자광학·열영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촬영한 영상은 후방 드론통제소로 실시간 전송된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하는 드론 종류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자지구 수색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된 모델은 미국 스카이로드가 개발한 ‘엑스텐더(Xtender)’와 이스라엘 IAI사가 만든 ‘로템-L(Rotem-L)’ 두 종류다. 이들 드론이 종횡무진 활약한 덕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고위 정치 지도자와 항공전사령관, 특수부대사령관, 여단장급 고위 지휘관 여러 명을 성공적으로 제거했다.

이스라엘 드론 공격으로 하마스 고위 인사 제거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군은 소형 드론으로 하마스 지도부와 주요 군사시설을 잇달아 파괴하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군은 소형 드론으로 하마스 지도부와 주요 군사시설을 잇달아 파괴하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정찰용으로 사용하는 엑스텐더는 소음을 거의 내지 않고 건물 곳곳을 수색할 수 있다. 지하에서 통신이 끊기는 상황에 대비해 자율비행기능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탑재됐다. 탐색한 실내 모습을 매핑(mapping)하고 해당 정보를 사용자에게 전송할 수도 있다. 건물 내부 또는 지하시설에 무장한 적이 있는지 확인해 정밀유도폭탄으로 공격하거나, 다른 자폭 드론을 보내 소탕할 수 있다. 한국 육군특수전사령부가 ‘참수작전’ 용도로 소량 구매해 사용하는 로템-L도 대단히 효과적인 시가 전용 드론이다. 전체 중량 6㎏이 채 되지 않는 이 드론은 전자광학·열영상 카메라를 탑재했으며 1㎏ 폭발물도 실을 수 있다. 최대 45분간 비행하다가 발견한 적과 충돌해 큰 피해를 입히곤 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 다음 날인 10월 8일 이미 소형 드론을 가자지구에 투입했다. 드론을 운용하는 이스라엘군 부대들은 가자지구 내부 하마스 병력의 배치 및 이동 상황, 민간인 거주 여부는 물론, 2014년 이후 거의 업데이트되지 않은 가자지구 지하 터널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고 있다. 드론 정찰 임무의 주축은 이스라엘군 최정예인 사이렛 매트칼(Sayeret Matkal), 제5515부대(Unit 5515), 해군 사이렛 13(Sayeret 13) 등이다. 이들은 작전 개시 후 가자지구 전역에 숨어 있는 하마스 비밀 시설과 요인을 찾아내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드론 작전은 하나 둘 성과를 내고 있다. 주민 속에 숨은 하마스 고위 간부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의 위원이자 내무장관 격인 자카리아 아부 마아마르와 경제장관 격인 조아드 아부 슈말라가 이스라엘군의 드론 정찰로 위치가 탄로나 공습으로 폭사했다. 이번 이스라엘 공격을 총지휘한 하마스 무장조직 알 카삼여단의 사령관 모하메드 데이프도 공습으로 일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목숨을 건져 탈출했다. 개전 첫날 음악축제 행사장을 공격해 대학살을 저지른 항공시스템 책임자 무라드 아부 무라드, 사보타주 특공대 사령관 알리 카디 역시 드론 추적에 걸려 사살됐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전역에 광범위하게 구축한 비밀 군사 시설도 잇달아 파괴되고 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북부와 가자시티 일대에 거미줄 같은 땅굴을 구축했다. 땅굴과 이어진 주택이나 공터에 작은 출입구를 내고 여기서 사제 로켓을 이스라엘에 발사하는 것이다. 이런 출구는 상당히 작은 데다 수없이 많아서 일일이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스라엘군은 고해상도 광학·열영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좁은 골목과 건물을 이 잡듯 뒤져 하마스의 비밀 땅굴 입구를 찾아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발견하는 족족 2000파운드에 달하는 대형 폭탄으로 폭격해 땅굴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전술이 효과를 거둬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발사되는 하마스의 로켓 수는 매일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드론, 일선 부대 ‘범용 장비’ 돼야
가자지구에 대규모 땅굴 시설을 구축한 하마스가 북한으로부터 관련 기술 및 장비를 전수받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북한이 대남 침투를 위해 팠다가 발각된 강원 양구군 제4땅굴. 양구군 제공
가자지구에 대규모 땅굴 시설을 구축한 하마스가 북한으로부터 관련 기술 및 장비를 전수받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북한이 대남 침투를 위해 팠다가 발각된 강원 양구군 제4땅굴. 양구군 제공
한국군은 고성능 소형 드론, 특수부대, 공습자산이 거의 실시간 연동되는 이스라엘의 시가전 수행체계를 유심히 살피고 배워야 한다. 유사시 한국군은 한반도라는 좁은 전장,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에서 시가전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거대한 지하시설에 쌓아둔 대량살상무기도 회수하거나 파괴해야 한다. 특히 하마스가 파놓은 지하시설은 북한의 기술과 장비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기 전 실시한 선행 작전의 교훈은 한국군에 대단히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한국 육군 드론봇전투단이 훈련하고 있다. 육군 제공
한국 육군 드론봇전투단이 훈련하고 있다. 육군 제공
한국군은 일명 ‘드론봇전투단’이라는 부대를 만들어 미래 드론 전쟁에 대비한다고 한다. 드론봇전투단은 공중정찰대대·특수임무대대·전자전대대·로봇중대 등 기능별 부대를 만들어 여러 종류의 드론을 시험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방향이라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자칫 실전보다 ‘보여주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드론은 별도 부대를 만들어 운용하는 ‘특수 장비’가 아닌, 보병분대 같은 최하급 제대에서도 정찰·타격 등 여러 임무에 자유자재로 쓰는 ‘범용 장비’가 됐다. 이른바 군용 규격이라며 대당 몇억 원씩 줘야 하는 값비싼 드론이 아닌, 시중에서 쉽게 구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백만 원짜리 상용 드론이 대세가 됐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이다.

이스라엘군의 지상군 투입 전 선행 작전은 소형 염가 드론으로 시가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고, 효과적인 도심·지하 작전을 수행하는 모범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디 한국군이 이런 선례를 적극적으로 연구해 드론 전력의 편제와 장비를 과감히 개혁하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11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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